먼 옛날,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모험 이야기
까모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까모의 탈출』이 출간되었다. 여기 나오는 까모는 ‘열병 같았던 영어 공부’와 ‘호된 중학생 실습’과 ‘지독한 크라스탱 공포증’을 다 경험하고 어느 새 청년이 되려 하는 다 큰 소년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까모 시리즈에서 늘 꿈 이야기를 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꿈 말이다. 『까모의 탈출』에서도 ‘꿈 이야기’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빠졌을 리 없다. 이번에는 꿈을 통해 ‘전생’ 이야기를 들려 준다. 우연한 자동차 사고로 의식을 잃게 된 까모가 자신과 엄마의 뿌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읽을 때는 퍼즐을 맞춰 가는 것처럼 궁금증이 커지고, 다 읽고 나면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까모 시리즈. 이번에도 작가는 특유의 재치와 치밀함으로 우리를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역사의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까모가 자신과 엄마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인만큼 먼저 까모의 혈통을 알아보자.
까모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까모 엄마의 혈통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아줌마의 할머니(까모의 외증조할머니): 그리스 인
아줌마의 할아버지(까모의 외증조할아버지): 그루지야 인
아줌마의 어머니(까모 외할머니): 그루지야와 그리스의 혼혈아
아줌마의 아버지(까모 외할아버지): 유대계 독일인
이렇듯 다양한 혈통을 이어받은 까모의 엄마는 아들 까모를 친구 집에 맡겨 놓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발칸 반도 전역을 돌고, 다음엔 러시아까지 가는……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맡겨진 까모는 유난히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한다. 세상에 두려울 거라곤 하나도 없는 까모가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하다니!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까모는 비로소 그 두려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병실에 누운 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만 내뱉는 까모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걸까?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런 의문 속에서 랑티에와 나는 까모가 살아나기만을 바라며 까모가 뿌리를 찾아 떠나는 힘겨운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때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 그루지야 인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혁명가였던 까모의 증조할아버지는 세상을 다시 세우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온갖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멋지게 탈출한다. 까모는 마치 자기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처럼 랑티에와 나에게 그 때의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채로. 까모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80여년 전의 시대로 들어가 혁명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랑티에와 나는 그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까모 증조할아버지의 이름도 까모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괴상한 이름은 그루지야 말로 ‘꽃’이라는 것도. 증조할머니의 이름은 멜리시. 그리스 말로 ‘꿀벌’이란 것도. 멜리시와 까모…… 꿀벌과 꽃의 사랑. 하지만 혁명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말았다.
마침내 까모 할아버지는 얼음으로 된 커다란 위장 같은 시베리아 탈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행 기차만 타면 되지만 죽음을 방불케 하는 굶주림과 추위가 그를 가로막고 있다. 과연 까모 할아버지는 시베리아를 탈출해 우리 까모를 구해 줄 수 있을까?
까모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싸우고 있을 때 드디어 까모 엄마가 돌아왔다. 그것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우연의 일치일까? 까모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엄마와 자기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게 된다. 까모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 옮기고 나서
이 책을 끝으로 까모 시리즈 네 권의 번역을 마무리짓게 되어 뿌듯하다!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 하게 되었나?』 『까모, 세기의 아이디어』 『까모와 나』 『까모의 탈출』 이 네 권의 출간 순서는 까모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까모의 탈출』에 등장하는 까모는 ‘열병 같았던 영어 공부’와 ‘호된 중학생 실습’과 ‘크라스탱 공포증’을 다 경험하고 어느 새 청년이 되려 하는 다 큰 소년이다.
『까모의 탈출』에서 우리는 비로소 ‘까모’라는 괴상한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유별나게 설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또 먼 옛날,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가 우리를 정신 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까모 이야기들의 매력이라 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이 작품에서도 빠졌을 리 없다. 여기선 ‘전생’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아마 여러분은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난 뒤에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숙제로 떠안은 듯한 즐거운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랑티에’라는 소년이다. 그는 평소 어리석은 소리를 잘 해서 친구들한테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그 책임을 뒤집어쓰는, 이를테면 못난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는 자신의 성품답게 아주 단순한 방안을 내놓는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친구를 살려 내기 위해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친구 생각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적에 대한 이 무조건적인 믿음! 이건 자신이 쏟은 노력과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미리미리 계산하는 자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방안이다. 맑은 물 한 대접 떠 놓고 자식 위해 무조건 빌고 또 빌었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 같은 우직한 정이다. 랑티에의 그 소박함이 부러워지며, 그를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으로 대접해 주고 싶다.
까모 시리즈를 마감하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다. 작가는 왜 화자인 ‘나’의 이름을 끝내 안 밝히는 걸까? 이 물음을 독자 여러분에게도 던져 본다.
2003년 1월 조현실
영웅의 자전거
까모와 멜리시
비극
죽음처럼 하얀
까모, 까, 모, ㄲ, ㅏ, ㅁ, ㅗ……
자바이르!
까모와 까모
시베리아의 늑대
시계 바늘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옮기고 나서
다니엘 페나크와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