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매씨서평

정약용 지음|이지형 역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2년 12월 27일 | ISBN 9788932013794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1056쪽 | 가격 60,000원

책소개

[내용 소개]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저술인 『매씨서평梅氏書平』을 역주한 것이다. 유교(儒敎)의 경전(經典) 가운데 중요한 전적으로 오늘까지 전해오는 『상서尙書』에 대해, 그 일부분이 위작(僞作)임을 구체적인 고증을 통해 밝혀놓은 것이 『매씨서평』이며, 다산의 저술 가운데에서도 그가 심혈을 기울여 이룬 역작이다. 여기에는 청대(淸代) 고증학자들을 능가하는 그의 이론이 담겨 있고, 조선 왕조 후기의 실학(實學)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는 논지가 많다.
다산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다. 조선 왕조 후기의 봉건 사회 붕괴기를, 한 사상가로서 한 학자로서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생은 만인의 귀감이 된다. 일반적으로 다산을 거론할 때에는 으레 그의 실학을 말한다. 조선 왕조 후기의 실학을 집대성(集大成)했다고 할 만한 그의 실학은 정치·경제·사회적인 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유교 경전(儒敎經典)을 연구하고 주석하는 학문인 경학(經學)에 있어서도 다산의 경학은 실학에 바탕을 둔 경학이다. 특히 『매씨서평』에는 실학의 학문적 성격의 하나인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다산 경학(茶山經學)의 면모로 전개되어 있다.
유교의 경전에는 십상경(十三經)이 있다. 이들 경전 가운데 『효경孝經』도 그러하지만, 특히 『상서』 58편 가운데 25편은 위고문(僞古文)이다. 다산은 이 25편의 경문(經文)이 위작임을,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실사구시의 자세로 일일이 고증하였다. 청대의 고증학적 학풍을 받아들여 세밀하게 논거를 대어 고거(考據)해놓은 정치한 논지는 그의 학문 토대의 논리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흔히들 말하지만, 논문 몇 편보다 충실한 역주본이 학계와 공부하는 사람을 위해 그 역할이 크다고들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다산의 여러 경전 주석서 가운데에서도 『매씨서평』을 꼭 역주하여 책으로 내고 싶엇다. 그러나 요즘 출판계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일반적인 교양 서적과는 그 질(質)을 달리하는 이러한 역주서를 출간하기란 심히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서남재단에서 동양학자료총서로 이 책을 선정하여 출판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심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매씨서평』을 역주하면서 대본으로 사용한 규장각(奎章閣) 필사본과 신조선사(新朝鮮社) 활자본에 탈자·오자·오식이 많아 이에 대한 교감에 진력하였고, 곳에 따라 난해한 원문도 오역이 없도록 힘닿는 데까지 치력하였다. 그러나 미진한 곳도 있을 것이다. 사계와 동학의 질정을 바란다.

목차

서남 동양학자료총서 간행사

책을 내면서

일러두기

해제『매씨서평』에 대하여

[역주본]

매씨서평 1

매씨서평 2

매씨서평 3

매씨서평 4

매씨서평 5

매씨서평 6

매씨서평 7

매씨서평 8

매씨서평 9

매씨서평 10

염씨고문소증초

[원문(原文) 교주본(校註本)]

梅氏書平 一

梅氏書平 二

梅氏書平 三

梅氏書平 四

梅氏書平 五

梅氏書平 六

梅氏書平 七

梅氏書平 八

梅氏書平 九

梅氏書平 十

閻氏古文疏證抄

작가 소개

정약용 지음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

정약용은 1762년,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83년 진사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1789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정조 즉위 중에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순조가 즉위하면서 일어난 신유사옥과 황사영 백서 사건에 얽혀들어 유배를 가게 된다. 1801년부터 1818년까지 강진에 유배되었으나 이 시기에 경세학과 더불어 경학 연구에 집중하여 큰 결실을 이룬다. 1818년 해배되어 집으로(능내) 돌아와서는 자신의 학문을 다시 연마하고 살펴보는 데에 힘쓰다가 1836년 사망하였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가 배출한 최고의 학자로 꼽힌다. 경학, 법률, 경제, 국방, 지리, 음악, 의학에 이르는 각 분야에 걸쳐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았으며 그 견해들을 모두 훌륭한 한문 문장으로 서술하여 논리 정연한 주제별 저술로 정리하였다.

대표적인 저술로 『매씨서평』 『논어고금주』 『맹자요의』『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이 있다. 그의 저술들은 필사본 형태로 흩어져 있다가, 1934년부터 1938년에 걸쳐, 한용운, 김성진, 정인보, 안재홍 들의 노력으로, 교감, 교열을 거친 연활자본 『여유당전서』가 신조선사를 통해 간행되었다. 현재 흔히 보는 영인본들은 대개 이 연활자본을 재영인한 것이다.

이지형

역주자 이지형은 1931년 밀양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교수와 같은 학교 사범대학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유학 경전 및 경학 관계 문헌을 정리하였다. 특히 역대 우리나라의 경학 자료를 집대성한 『한국경학자료집성』의 해제 및 정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편 이지형은 평생을 두고 정약용 연구에 집중하여 『맹자요의』 『매씨서평』 등을 역주하였고 연구서 『다산 경학 연구』로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1회 다산학술상 학술 대상을 수상하였다. 성균관대에서 퇴임한 뒤에는 개인 연구실 죽부지실(竹夫之室, ‘竹夫’는 이지형의 아호)에서 정약용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은 정약용의 또 다른 중요한 경학 관계 저술인 『논어고금주』를 역주하고 있으며, 오류가 많은 기존의 『여유당전서』를 바로잡아 정약용 전집을 다시 확정, 출간하기 위해 『여유당전서』 및 기타 정약용 저술 전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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