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솔직히 말하는 일상의 성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솔로몬의 노래」
여기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밀의 동산에 들어가 그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실과를 따먹는 것을 그린 만화가 있다. 다운이와 겨운이 두 남매를 키우고 있는 부부, 정보통과 생활미가 사랑하는 모습에 대한 솔직한 만화이며, 연애시절 머릿속을 가득 채운 놀라운 성적 판타지에 대한 만화이고, 중학생 정보통이 어떻게 성에 눈을 떴는가를 보여주는 만화이자, 초등학생 보통이가 왜 운동장에 있는 높다란 철봉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만화다. 『야야툰』에서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그동안 우리 만화가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거나 담아내었다 해도 솔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우리 만화는 성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 1972년 일간 스포츠에 연재되기 시작한 고우영의 「임꺽정」과 1974년 『선데이 서울』에 연재되기 시작한 박수동의 「고인돌」에서부터 성에 대한 메타포가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1970년대 강철수, 손의성, 정한기, 이재학, 정운경 등이 성인만화를 그렸으며 각각 작품에 성에 대한 에피소드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만화에 등장하는 성에 대한 에피소드는 내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성에 대한 농담 정도의 수준이었고, 공감보다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박수동의 「고인돌」은 ‘정력’에 대한 농담이나 ‘성’ 자체에 대한 농담이 많았다.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는 청춘의 이야기에 한발 걸쳐 있는 성이었다. 정운경의 「가불도사」 역시 훔쳐보기나 노출하기와 같은 성적 해프닝에 대한 것이 많았다. 이후 1980년대 김수정은 「신인부부」에서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젊은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생활 속의 성’을 처음으로 만화에 등장시켰다.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두 부부의 발을 통해 성행위와 그 뒤의 만족감을 성을 드러내는 만화다운 방식으로 표현한 에피소드는 인상적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성적 메타포는 만화마다 차고 넘치기 시작했다. 소년만화는 귀여운 얼굴과 거대한 가슴을 자랑하는 히로인들을 일본에서 경쟁적으로 수입했고, 남성들이 꿈꾸는 성적 판타지는 만화를 통해 하나씩 재현되었다. 여성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연재하는 도중에 작품의 전체 틀을 깨면서까지 이른바 ‘두근두근’ 장면들이 등장하곤 했다.
만화에서 그리는 성은 늘어나고, 장면마다 짙은 에로틱의 감성이 담겨 있지만 일상에서 내가 즐기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들 남의 이야기만 했고, 환상만 이야기했지 내 이야기, 내 일상은 드러내지 않았다. 『야야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감추고 감추어진 일상의 성에 대해 선보이는 만화다.
처음으로 자위하기
아마 작가 홍승우와 나는 비슷한 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갔으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야야툰』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과도 같았는데, 이러한 ‘경험의 동시대성’은 이 땅의 평범한 30대들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정보통과 생활미를 통해 더욱 확대되어간다.
『야야툰』은 크게 몇 개의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학생 보통이의 성생활에 대한 만화는 총 3편이 수록되었다. (페이지 분량도 꽤 많다!) 1982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나도 ‘중(中)’이라고 쓴 교포가 붙은 교복을 입고 초록색 가방을 들고 목까지 단추를 채운 교복을 입었다. 보통이는 중학교에 가 ‘딸딸이’라는 낯선 언어를 접하고 한밤중에 비누를 묻힌 손으로 시행에 옮긴다. 불타오르고, 비가 내리고, 맑아졌다가 바람이 불고, 거세게 바람이 불다 마침내 온통 꽃이 휘날리는 환상의 세계에 도달해 버린 뒤 시원하게 터져 바다로 가라앉는 보통이. 그리고 퀭한 눈으로 “하나님, 지금 세상보다 더 기쁜 세상이 있다는 거…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한다. 나는 이 만화에 등장한 보통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표정은 ‘남의 성’의 세계에서 ‘나의 성’의 세계로 들어선 능동성의 표정이자 깨달음과 환희의 표정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의 집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보았지만, 그것은 ‘남의 성’에 불과했다. 나 역시 ‘남의 성’이 ‘나의 성’이 되었던 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불에서 뒹굴다 우연히 깨달아버린 황홀의 세계. 아침에 일어나 젖어 있는 팬티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경험. 그 뒤로 한동안 왕성한 상상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야야툰』이 초등학생 보통이에서 시작해, 이야기 도중 중학교 1학년 보통이를 그리는 이유는 ‘나의 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스크린, 비디오, 만화책, 잡지 등에 넘쳐나는 남의 성이 아닌 나의 성은 아름답고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후줄근하고 지겹고 유치하기도 하며, 채 삽입하기도 전에 사정해버리고 마는 허무함도 함께 존재한다. 일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일상은 멋진 판타지의 대척점에 존재한다. 눈을 뜨면 신기루 같은 판타지가 사라진 자질구레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함께 생활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그림의 진실
『야야툰』을 꼼꼼하게 읽다 보면, 세밀한 부분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먼저 프롤로그격인 옷 벗는 정보통과 생활미 시퀀스를 보자. 웃옷을 벗으며 마음대로 일그러지는 주름도 다른 만화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무렇게 옷을 벗어두는 정보통과 반듯하게 정돈해놓는 생활미의 모습이다.
처음으로 자위하던 날 보통이의 얼굴 표정도 압권이다. 아이 둘을 낳아 힘이 없어진 생활미의 가슴도 세부묘사의 진실성이다. 보통이의 늘어진 배도 마찬가지고. 흥분된 부부가 아이들 때문에 꼼짝 못하는 것도 진실이다. 처음으로 여관에 가던 날 흥분을 참지 못해 생활미의 손길에 그만 사정하고 만 정보통의 성기도 역시 진실이다. 『야야툰』은 작은 그림의 진실이 모여 큰 상황의 진실이 된다.
이 만화에 성기가 등장한다. 오럴 섹스도 나온다. 중간에는 오해를 살 만한 정보통의 분신과 정보통이 서로 사랑을 하는 이른바 ‘남색장면’도 나온다. 어떤가? 노인들의 성행위가 나오고, 오럴 섹스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영화 「죽어도 좋아」에 상영불가의 철퇴를 내렸던 나라가 아닌가? 아마 『야야툰』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금지에 금지가 덧붙여질 것이다.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면서도 걱정이 된다. 만화는 한 칸 만화가 아닌 이상 칸과 칸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작화 스타일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시각적 판타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만화와 일상의 동일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만화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야툰』은 후자에 속하는 만화다. 매우 쉽고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은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통, 생활미와 경험을 공유한다. 비스듬한 사선을 얼굴에 그리면 독자들은 그것이 부끄러움의 표시라는 걸 단박에 깨닫는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상징을 공유할 수 있는 원천은 작가-만화-독자가 동일한 생활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부묘사의 진실은 판타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일상으로 귀환한다. 아무리 성기를 그려도, 아무리 가슴을 그려도 야하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건 내 생활이기 때문에 그렇다.
홍승우는 『비빔툰』에 이어 『야야툰』을 통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일상을 드러내는 만화의 두번째 장을 열었다. 우리 만화의 소중한 진보이며, 유럽이나 미국의 젊은 작가들과 공유하는 창작의 방법이기도 하다.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성에 대해,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라고 노래했다. 어떤가? 내 성에는 이런 즐거움이 있는가? 일상의 힘겨움에 갇혀 허덕이고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야야툰』을 보고 ‘나의 성,’ 더 나아가 ‘우리의 성’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권한다.
박인하 _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