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 글]
비평을 쓰기 시작한 지 7년 만에 펴내는 책이다. 자잘한 글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비평의 꼴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12편의 글을 모았다. 글을 쓸 때는 마치 죽을 것처럼 고민하고 몸부림쳤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비평가의 본령은 작품의 현장성을 읽어내는 일에 있다는 믿음과 태도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다는 데서 약간의 자기 위안을 찾고자 할 따름이다. 비평이란 작품을 앞에 두고 벌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도박이며, 그 자체로 시대와 세대의 내밀한 흐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텍스트이며, 해석의 장을 확대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축적해가는 운동성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1990년대 중반에 문학 비평을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문학의 내적 근거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전 시기처럼 문학이 이념과의 근접성 속에서 계몽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문학이 내가 살고 있는 삶과 세계를 전체적으로 재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학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주변화되는 과정과 문학이 새로운 양상으로 기능 분화되는 과정은 둘이면서 하나였다.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았던 것은, 아마도 문학의 내적 근거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소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학이 주변의 문화적·매체적 타자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인접한 문화 영역이나 문학적 하위 양식들과 소통해나가는 과정에서, 달리 말하면 문학의 바깥에 놓인 타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경계에 대한 감각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하위 문화에 눈길을 던져보거나 작품에 내재된 문화적 함의에 주목하고자 했던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문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탐색은 다른 글과 책을 통해서 계속될 것이다.대학에서 문학을 배우던 시절부터 비평집을 내는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와 사고는 지극히 냉소적이다. ‘문학 나부랭이’라는 말은 수업 시간에 지겹도록 들은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미 나의 무의식 속에 언제나 잠재되어 있던 문학의 근원적인 이미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문학 나부랭이를 되뇌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몸은 문학에 점점 더 밀착해가고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랬을까. 작품을 읽고 비평을 쓰는 과정에서 몸으로 경험했던 그 어떤 매혹이 아니라면 달리 근거를 찾기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냉소적이며, 냉소적인 만큼 그 어떤 매혹을 갈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목은 『냉소와 매혹』으로 붙여놓았지만 책을 내는 지금의 심정은 소박하다. 모든 글에는 글쓰기와 관련된 텍스트의 무의식과 자기 반영적인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는 생각만이라도 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기를, 이 책 어딘가에 매혹의 지점들이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랄 따름이다.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비평가의 태도와 대중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던 김윤식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던 등단 때부터 여전히 아는 게 없는 지금까지 줄곧 아끼고 보살펴주셨던 『문학동네』의 선배들과 관계자들, 천둥벌거숭이를 동인의 품으로 안아주셨고 오가는 술잔 속에서 문학하는 사람의 태도를 알려주셨던 『문학과지성』 선생님들과 『문학과사회』 동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팔리지 않을 책을 선뜻 맡아주신 문학과지성사의 채호기 사장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교정 작업을 맡아주었던 조형옥 씨와 이선경 씨, 표지 디자인 때문에 밤잠을 설쳤을 조혁준 형에게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이 책이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2년 가을 김동식
책머리에
글쓰기의 우울 ― 신경숙론벗어남과 돌아감의 잠재적 공존에 관하여 ― 윤대녕론
배신의 수사학, 둔갑의 상상력 ― 김영하 소설집 『호출』
연기(演技/延己)하는 유전자의 무의식에 대하여 ― 은희경 소설집 『상속』
운명이 되려다 만 것들에 대하여 ― 함정임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
느슨한 역설의 언어를 위하여 ― 이영유 시집 『홀로 서서 별들을 바라본다』
버티고 서 있는 자의 현기증vertigo ― 김영현론
‘발견’으로서의 몽골: 환멸과 초절(超絶)의 낭만주의 ― 이인화 소설집 『하늘꽃』
우리 시대의 공주를 위하여 ― 배수아론
코믹하면서도 비극적인 괴물의 발생학 ― 백민석론
비평가 tympan씨의 하위문화 만유기(漫遊記)
전기(電氣)와 문학적 무의식: 젊은 작가들의 상상 세계에 대한, 지극히 시험적인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