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 글]
유성룡(柳成龍)은 『징비록(懲毖錄)』에서 “왜(倭)와는 평화의 관계를 잃어버리지 말라(勿失和於倭)”는 신숙주(申叔舟)의 말을 화두로 삼았다. 신숙주의 교훈적 가르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같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뒤의 조선 조정은 어떠했는가? 그처럼 뼈아픈 역사적 대가를 치르고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결과 우리 조상들은 성(姓)과 이름까지 바꾸어야 했던 치욕적인 일본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두루 알다시피 신숙주는 세종 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을 다녀왔고, 왕명으로 『해동 제국기(海東諸國記)』라는 책을 썼다. 여기에서 해동은 일본의 혼슈(本州)와 규슈(九州), 이키(壹岐), 쓰시마(對馬), 류큐(琉球) 등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책에는 이들 지역의 지세와 국정(國情), 국교(國交)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당시의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데 기본 사료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이다.하지만 이러한 일본 연구의 전통은 그후에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관념론적인 성리학을 앞세운 조선의 지배 계층은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위선적인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우리보다 못한 면을 들추어내는 데 급급하였다. 숱하게 남긴 통신사(通信使)들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들어 일본에 다녀온 유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일본 연구도 다소 활력을 찾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을 연구하는 변변한 국책 기관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임기 응변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작금(昨今)의 처지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바로 이와 같은 예의 전형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갑자기 매스컴이 문제를 제기하면, 양은 냄비 들끓듯이 와글와글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흐지부지 수그러들고 만다. 그러니까 자꾸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으려면, 일시적이 아니라 상시적(常時的)으로 그것을 연구하는 기관과 인력이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대응 논리를 부단히 개발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우리와 처지가 사뭇 다르다. 일제의 한국 침략과 더불어 시작된 그들의 한국 연구는 그동안 상당한 성과가 축적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최근에는 연구 인구도 그 저변이 확대되어가고, 연구 대상도 다양화되어가고 있다.지금이라도 때는 늦지 않다. 연구 인력을 키우고, 그들을 후원해줄 기관을 만들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일본 연구는 얼마든지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남재단의 동양학 학술 지원은 참으로 뜻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본 연구가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겉치레로 하는 인사말이 아니다. 모두가 서양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우리의 뿌리와 관계가 있는 동양학을 지원한다는 사업 목표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본 연구는 1997년에 계획되었다. 당시에 필자는 1년 간 말미를 얻어, 요코하마(橫浜)에 있는 가나가와 대학(神奈川大學) 일본 상민문화연구소(日本常民文化硏究所)에서 한·일 세간화(世間話)의 비교 연구를 하고 있었다. 모처럼 강의와 잡무에서 해방되었던 터라, 유학 시절에 교과서처럼 읽었던 김석형(金錫亨) 선생의 『고대 조일 관계사(古代朝日關係史)』를 정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카마노하라계(高天原系)와 이즈모계(出雲系)로 구분되는 일본의 신화 체계가 한국의 동·서해안 문화와 유기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설을 세웠다. 그후에 귀국하여 서남재단의 지원을 받아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와 같은 가설의 증명이 간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역사학적인 자료와는 달리, 신화나 설화의 연구에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획된 작업을 수행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두 차례나 일본에 건너가 자료를 수집해오기도 하였다.자료를 수집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일본 신화의 연구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기존의 연구 업적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모두 다 검토할 수 없었으며, 필자가 세운 가설을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집필을 미루게 되었고, 그 사이에 몇 번이나 연구 결과의 제출을 늦추었다. 그런데도 서남재단의 관계자들은 무던하게 기다려주었는데, 이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표한다.이렇게 하여 작성된 본 연구의 결과는 아주 국소적인 일본 연구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수행했던 한국 신화에 대한 왜곡된 연구를 바로잡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연구 방법에서 밝혔듯이 역사 민족학의 문화사론적인 연구 방법론을 원용하였다. 곧 여러 가지 문화 현상들의 상관 관계를 구명하여 그 문화들을 가지고 있는 집단들 상호간의 문화적인 관련 양상을 해명하였다. 오늘날 신화나 설화의 연구에서는 구조 분석이나 기호학과 같은 다양한 이론들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 방법론을 원용하려는 것에 대해 학계의 새로운 흐름을 간과하였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문화적 접촉 또는 신화들의 관련 양상을 해명하는 데는 이것이 그 어떤 방법론보다도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여러 곳에서 논리의 비약이나 모순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이 방면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선배와 후학들의 기탄 없는 비판과 질책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본 신화의 연구도 더욱더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마지막으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원고를 교정해준 문학과지성사의 김선혜 과장님과 연구실의 김미정군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제1장
서론
1.연구의 목적
2. 연구 방법
3. 일본 신화 자료집의 검토
Ⅰ.『고사기』
Ⅱ.『일본서기』
Ⅲ.『풍토기』
4. 기존 연구 성과의 검토
Ⅰ.일본의 일본 신화 연구
Ⅱ.한국의 일본 신화 연구
제2장 일본 신화의 분류 체계
제3장 이즈모계 신화
1. 스사노오노미고토의 양면성
2. 스사노오노미고토의 출자
3. 이즈모 신화의 농경 문화적 성격
Ⅰ.시체 화생 신화와 농경 문화
Ⅱ.출현 신화와 농경 문화
4. 이즈모와 신라의 관계
Ⅰ.국토 끌어당기기 신화
Ⅱ.아메노히호코 설화
Ⅲ.연오랑 세오녀 설화
5. 요약
제4장 다카마노하라계 신화
1. 최고 신격의 이원성
2. 최고 신격의 출자
Ⅰ.다카미무스히노카미의 출자
1) 천손 강림 모티브
2) 수렵·유목 문화적 성격
Ⅱ.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출자
1) 태양 여신 모티브│212
2) 신맞이 제의와 곡모신적 성격
3. 국가 인수 신화
4. 천손 강림 신화
5. 요약
제5장 결론과 전망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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