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가상 공간cyberspace은 있었다. 본래 사람 속에는 온갖 것을 다 그리고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컴퓨터가 없는 사람도 그 공간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까지 마음껏 떠올리고 상상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밖에만 있지 않고, 그것을 보는 눈 또한 얼굴에만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람 속의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아주 활발하게,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문학 작품을 읽을 때이다. 시, 소설 등을 이루고 있는 말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모습이나 상황을 ‘그려내고 만들며,’ 그 허구 세계 혹은 가상 현실에 ‘들어가,’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온갖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얻는다. 문학 작품의 독서는 이렇게 종합적으로, 또 독자가 참여하므로 매우 재미있게 이루어지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요 체험이다.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 깊어지고 예민해짐을 느낀다든가, 소설을 읽고 나면 어떤 인물과 그의 환경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현상은(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따라서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은, 아주 유익하고 중요하다. 그 자체가 요긴한 공부, 지식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답고 세련된 정서와 사고 능력을 ‘체험을 통해’ 기르는 학습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저 재미만 맛보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좀 더 느끼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서 차원 높은 재미를 맛보는 학습이 되려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읽고 감상을 주고받으며, 제재가 비슷한 여러 작품을 겹쳐서, 서로 비교하며 읽어보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이 ‘제재문학선’은 바로 거기에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총서이다.
제재(題材)란 중심된 이야깃거리 혹은 소재(素材)로서, 주제(主題)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이자 바탕이다. 그것은 주제를 형성하기 위해 작품 구조의 핵심적 부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소재와 구별된다. 또 작품 전체 구조의 작용으로 생성되는 어떤 관념, 사실, 분위기, 이미지 등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생성하는 데 쓰이는 재료이자 바탕이라는 점에서 주제와 구별된다. 예를 들어 작가는 가족 혹은 어느 가족의 하루 일과라는 제재를 가지고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까지 상품으로 만들기 쉽다’는 주제를 표현할 수도 있고, ‘가족은 안식처이자 굴레이다’라는 주제를 제시할 수도 있다. 제재와 주제를 구별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둘을 구별하면 작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된다.사람의 욕망과 삶의 모습 자체는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므로 작품들에 공통된 제재는 크게 나누면 그 수가 많지 않다. 이 총서는, 한국 작품이므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면서, 그런 제재를 다룬 작품들을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기존의 전집에서 추려내는 관습을 버리고 문예 잡지와 작가들의 작품집까지 폭넓게 뒤져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찾고자 힘썼다. 그리고 장르별 특성에 맞는 읽기 원리를 바탕으로, 책머리에는 ‘감상의 길잡이,’ 각 작품들 뒤에는 ‘생각할 문제’들을 마련하고, 말미에 ‘생각할 문제 해설’을 붙여서, 스스로 읽는 힘을 기르는 동시에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다. 가치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은, ‘인간답고 세련되게 느끼고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안다. 이 제재문학선 한권 한권이 문학을 통해 그 힘을 기르며, 사람의 보편적 관심과 고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바란다.
기획의 말
감상의 길잡이: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1부_가족이라는 고향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떼-박기동
생각할 문제
열 줌의 흙_주요섭
생각할 문제
2부_가족이라는 사회
생일 전날_김남천
생각할 문제
돌다리_이태준
생각할 문제
처세술 개론_최인호
생각할 문제
환각의 나비_박완서
생각할 문제
3부_역사 속의 가족
탈출기_최서해
생각할 문제
오발탄_이범선
생각할 문제
황혼의 집_윤흥길
생각할 문제
‘생각할 문제’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