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해설]
19세기 낭만주의를 이끈 여성주의 소설
“『코린나』는 지금까지 씌어진 소설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이다. 사건의 전개가 부드럽지 못하고, 신경질적이며, 가소롭다는 의미에서 낭만적이다.”마담 드 스탈의 전기를 쓴 크리스토퍼 해롤드가 1960년에 한 이와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1805년에서 1807년 사이에 집필된 이 책을 오늘날 번역하여 펴내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나오는 다음의 말은 이 책의 간행을 정당화한다.“이 점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비상한 정신과 기질의 소산이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투명하고 어떤 때에는 독자를 혼동시키며, 그 작품의 의도를 분석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매혹적인 미궁에 빠지게 한다.”이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한 전제는 세계적인 문학 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작품을 적절한 역사적 문맥 안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담 드 스탈은 프랑스 혁명 후 제정기(帝政期)의 주요 작가의 한 사람이다. 프랑스 제정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시대의 문학과 철학은 그 중요성에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독일론』(1810)을 써서 독일의 문학과 철학을 예찬한 마담 드 스탈은 독일과 전쟁을 치른 프랑스인들의 민족적인 감정과 자존심이 개입되어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것은 『독일론』이 나오기 전의 여러 저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공격적이며 논쟁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관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이 작가에 대하여 이전보다 공정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따라서 마담 드 스탈이 문학사에서 점차로 정당한 위치를 찾게 된 것은 근래 30년 정도의 일이다.안느 루이즈 제르멘 네케르는 1766년 4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자크 네케르는 스위스 제네바 출신으로, 이미 30세에 텔뤼송 은행의 부행장이 되었고, 3년 후에는 행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동인도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곧 정치에 뛰어들어, 1777년부터 4년 간 프랑스의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1764년에 쉬잔 퀴르쇼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스위스 목사의 딸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불안정한 시기에 그는 여러 번 부침을 거듭하여 때로는 몰락을 맛보았지만 다시 왕에게 불림을 받기도 하였다.마담 드 스탈은 이러한 아버지를 거의 미신적으로 사랑하였고, 이는 이 소설에서 오스왈드를 통해 형상화되어 있다. 마담 드 스탈은 어려서부터 정신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아버지를 닮고 싶은 욕망에 의해 자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가정 이외에는 뚜렷이 설 곳을 찾지 못하던 당시 여성의 위치 때문에 그녀 역시 다른 여성들처럼 남자를 통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마담 드 스탈은 당대에 파리에서 제일 큰 살롱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모범을 좇아 자신이 직접 살롱을 열었다. 스웨덴의 주프랑스 대사 에릭 마그누스 드 스탈 홀스타인 남작과의 결혼(1786년 1월 14일)은 그녀로 하여금 상류 사교계로의 진출을 허용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지위를 이용하여 여러 정치가와 사상가, 문인을 자신의 살롱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직접 집필 활동을 하였는데, 작가로서 그녀는 『루소론』(1788)으로 시작하여 20여 편의 광범위한 문학 작품을 남겼다. 여기서 번역된 소설 『코린나』는 1807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탈리아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탈리아를 다룬 소설이다. 사실 그녀는 『문학론』(1800) 이후에 집필한 소설 『델핀』(1803)의 출간으로 말미암아 나폴레옹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파리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이 소설이 반사회적이고 반도덕적인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추방 명령으로 그녀는 1803년에 프랑스 국경을 넘었고 독일 땅에 체류하였다. 그 후 그녀의 독일 체류는 1808년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그녀의 이탈리아 여행과 『코린나』의 집필은 크게 보아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 중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녀가 이탈리아를 찾게 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동기는 부친의 죽음이다. 그녀는 1804년 4월에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베를린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가 운명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그녀의 슬픔은 광적이었다. 그리하여 마담 드 스탈의 건강은 악화되었고, 의사들은 그녀에게 이탈리아에서 요양할 것을 권하였다.이탈리아에 가기 전에 마담 드 스탈은 당대의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의 작가와 예술가를 통하여 이탈리아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차차 르네상스 시대의 저서들을 탐독하게 되었고, 아리오스토, 타소,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읽으며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갔다. 그녀의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은 이미 『문학론』에서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수준은 보통 이상을 넘지 못하였고,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단테를 부각시킬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그녀는 또한 이탈리아의 음악을 좋아하였으나, 그 경치나 역사적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미처 눈뜨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는데, 예를 들면 샤를 빅토르 드 본스테텐과 독일 출신의 덴마크 여류 시인 프리데리케 브룬의 작품들, 드 크류드넬 부인의 『바레리』, 샤토브리앙의 『퐁탄느의 편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 등이었다. 마담 드 스탈의 이탈리아 여행에는 슐레겔과 시스몽디가 동반하였는데, 슐레겔은 문학과 예술 일반에 관한 전문가였고, 시스몽디는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전문가였다. 시스몽디는 후에 마담 드 스탈의 권유로 『중세 이탈리아 공화국 역사』(1807)를 출간하기도 하였다.마담 드 스탈은 1804년 12월 초에 이탈리아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녀의 세 자녀, 즉 오귀스트(14살)와 알베르(12살), 알베르틴(7살)을 데리고 갔으며, 몇 명의 하인도 동반하였다. 여행의 처음부터 그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든 것을 관찰했고, 그것은 모두 수첩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녀의 이탈리아 여행 수첩을 보면 기후까지도 소설의 그것과 일치한다. 예를 들면 오스왈드와 루실이 몽스니 고개를 넘는 것은 마담 드 스탈 자신이 알프스를 넘던 때의 경험으로, 시간상으로 1년이 다를 뿐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 역시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794년 가을에서부터 1804년 겨울까지이므로, 이 기간의 이탈리아 정치 상황을 간략하게 개관하여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탈리아는 여러 작은 나라들, 즉 피에몬테, 사르디니아,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바티칸 공국, 제노바, 파르마와 모데나 공국, 시칠리아의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1792년에 프랑스 혁명군은 사부아를 점령한 후 나폴리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1794년에는 혁명군이 제노바까지 침입하였으나 오스트리아, 사르데냐, 나폴리의 연합군에 의해 다시 한번 쫓겨났다. 나폴레옹은 1796년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이 되었고, 1797년에는 밀라노, 만투아, 파르마와 모데나의 일부로 세잘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1798년에는 바티칸 공국이 로마 공화국이 되었으며 제노바는 리구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프랑스에 점령되었다.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제2동맹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했기 때문에 프랑스는 다시 쫓겨났다. 나폴레옹은 1800년에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하였고, 이어 다른 부분도 정복하였다. 아미앵 강화 조약에 의해 프랑스는 나폴리, 로마, 엘바 섬을 포기해야 했다. 1802년 1월에는 세잘피에서 이탈리아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나폴레옹은 통령이 되었다. 1805년에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 왕국을 세우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마담 드 스탈의 여행은 튜린 지방에 1주일 머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804년 12월 28일이나 29일쯤에 밀라노에 도착하여 시인 몬티를 방문했는데, 그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문인 중 한 명이었다. 몬티는 이탈리아의 자유를 노래하였고, 나폴레옹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마담 드 스탈은 그와 친분 관계를 유지했고,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마담 드 스탈은 이미 코페에서부터 이탈리아어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여행하는 동안 어학 실력이 점차 늘어 다양한 사투리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담 드 스탈은 볼로냐에서 도메니키노의 시빌라 그림을 직접 보았고, 그것은 소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으면서 기후가 좋아졌는데, 이것 역시 소설에 나타난 그대로이다. 그 후 마담 드 스탈은 로마로 직행하여 1805년 2월 3일부터 2월 17일까지 그곳에 체류하였다.마담 드 스탈이 로마를 방문하였을 당시 교황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파리에 가고 없었다. 교황은 5월 16일 파리에서 돌아왔는데, 그녀가 이미 두번째 로마 체류를 마친 후였기 때문에,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교황의 모습은 실제로 그녀가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에서 그녀가 체험한 많은 사건들은 그대로 소설에 재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코린나』에 나오는 사육제의 광경이나 카노바의 아틀리에 방문 등은 실제로 그녀가 겪은 것이다. 또한 소설에서 코린나가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대관식을 하는 장면은 마담 드 스탈이 아르카디아 회합(1690년에 만들어진 예술 아카데미)에 참가하여 민초니의 소네트를 직접 번역하여 낭송하였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1805년 2월 17일에 마담 드 스탈은 나폴리로 떠났다. 그녀는 이곳의 자연에 매우 큰 감동을 받아, 나중에 「나폴리에 관한 서간」이라는 글까지 썼을 정도이다. 3월 13일 그녀는 다시 로마로 돌아왔는데, 그때 마담 드 스탈을 안내한 사람은 포르투갈의 젊은 외교관 동 페드로였다. 그 역시 마담 드 스탈처럼 아버지를 여읜 참이어서 그들은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들의 만남은 감상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소설에서 코린나의 안내로 오스왈드가 로마를 구경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의 소산이다.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담 드 스탈은 피렌체를 거쳐, 파두아에서 시인 체사로티를 만났다. 그외에도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많은 시인·화가·건축가를 만났고, 또 프로페르티우스, 티불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타키토스 등을 탐독하였다. 그 결과로, 그녀는 이탈리아에 관한 본격적인 소설의 틀을 짜나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또 베네치아의 역사에 대해서는 시스몽디의 안내를 받았으며, 그 내용은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녀가 밀라노에 닿았을 때에 세잘피 공화국은 이미 왕국으로 변해 있었고, 나폴레옹이 등극한 후였다. 마담 드 스탈은 밀라노에서 튜린을 거쳐 다시 친정집인 스위스 제네바 호반의 코페성으로 돌아왔다.코페성에서 그녀는 1807년까지 『코린나』를 거의 다 완성하였다. 그녀는 파리로부터 40리유(약 160킬로미터) 이내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추방 명령을 어기고, 파리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마담 드 카스텔란의 집에서 그 책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인기도를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 또한 그녀는 정치와는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소설의 출간이 나폴레옹의 적개심을 가라앉혀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기대는 무산되었다. 나폴레옹은 그 책에서 마담 드 스탈이 그에 대해 언급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단 한마디도 황제의 이야기를 적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부터 나폴레옹은 마담 드 스탈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자기 편과 적의 진영 모두를 한군데에 모이도록 하는 그녀의 살롱에 대하여 경계심을 품었다. 두 사람의 대립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갔고,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그는 그녀를 항상 감시하는 한편으로, 그녀의 작품을 반감을 가지고 읽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주위에 자신의 반대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코린나』에 대해서 이렇게 평하였다.“나는 그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도망가고 싶어서 책을 집어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책은 흥미있는 작품이었다.”이 책은 즉각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우선 소설로서, 나아가 이탈리아의 위대한 문화의 충실한 그림으로서, 또 그것이 표현하는 미학적 사상에 의해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임을 알아차렸고, 마담 드 스탈을 코린나라고 불렀다. 마담 드 스탈은 여행 일정뿐 아니라. 소설의 인물 역시 자신의 주변의 인물에서 따왔다. 오스왈드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거의 예측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에게 로마를 안내하였던 동 페드로와 옛 애인 뱅자맹 콩스탕의 결합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카스텔 포르테 공의 모델이 된 사람은 이탈리아 여행에 동행하였던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마티유 몽모랑시라고 할 수 있다. 델푀유 백작은 클로드 오셰의 성격에서 따온 부분이 많다. 말티그 씨는 탈레랑에 해당하고 레이몽 백작은 분명히 네케르의 자취를 담고 있다. 그러나 네케르는 분명 오스왈드의 부친 넬빌 경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있는데, 그의 저술 『종교도덕강의』의 긴 문장이 소설의 몇 군데에서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인용될 정도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소설 『코린나』의 집필 배경을 작가의 체험과 관련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것은 이 글의 처음에 제기한 질문, 즉 ‘우리는 왜 오늘날 이 소설을 읽는가?’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하나의 문학 작품은 그것이 산출된 시대와 공간, 작가를 떠나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학 작품을 작가가 우리에게 호소해오는 정신의 산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수사학적인 형식으로 축소시킬 때 가능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이 내적 구조의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사상만을 담고 있다면, 그것 역시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담 드 스탈의 소설에 대하여 우리가 내려야 할 평가는 결코 쉽지 않다.우선 마담 드 스탈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시대적으로 세기의 전환기를 살았을 뿐 아니라 문학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 이미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버린 낡은 고전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외국의 사조인 낭만주의를 들여옴으로써 프랑스 문학에 젊음과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담 드 스탈의 이러한 업적은 나폴레옹이 내린 추방 명령의 결과 독일 땅을 밟게 되었기 때문에 얻어진 소득이다. 할 수 없이 넘게 된 라인 강 너머에서 그녀는 독일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였고, 특히 독일 낭만주의라고 하는 보화를 건져올린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은 독일 체험을 전후로 하여 그것이 표방하는 이념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소개하는 『코린나』는 『독일론』과 더불어 그 이후의 작품으로 낭만주의 문학의 중요한 소개서로서, 또한 스스로 낭만주의 소설의 전형을 보이는 훌륭한 예로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코린나』에 나타나는 ‘무한(無限)과 절대(絶對)’의 주제는 이미 루소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한 시기에 잃게 된 감성의 복구라는 측면과 더불어 낭만주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요소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마담 드 스탈의 문학사적인 위치나 비평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던 평자들도 그녀의 소설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을 하지 않았고, 또 비교적 관대한 평을 내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소설을 가리켜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소설” 이라고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물론 이 작가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의 부족, 그 중에서도 특히 소설에 대한 연구의 미흡함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아마도 처음의 크리스토퍼 해롤드의 지적대로 “사건의 전개가 부드럽지 못하고 신경질적”이라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위에 언급한 그 많은 실제 상황과 허구의 일치는 작가의 창조적인 재능을 의심하게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담 드 스탈이 사용하고 있는 빈약하고 제한된 어휘는 한없이 풍부하고 세련된 어휘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현대의 독자에게 자유로운 상상의 부유(浮游)를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코린나』가 계속 읽힐 수 있는 이유는 특히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근대적인 특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우선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이 소설이 세계주의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탈리아·영국·프랑스가 등장한다. 그외에도 구체적인 인물로서 형상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철학과 문학 이념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독일을 포함시킨다면, 유럽의 네 나라가 배경인 셈이다. 마담 드 스탈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미 『문학론』에서부터 그녀가 지속해온 인류학적 고찰과 예술론을 매우 훌륭하게 종합하고 있다. 북방 민족과 남방 민족의 분류에서 시작하여, 각 나라의 역사와 정치 형태, 사회 제도가 예술에 미치는 효과, 나아가 그녀가 독일에 가서 발견한 낭만주의 문학 이론의 소개 등을 주인공의 대화를 통하여 실제의 작품을 예로 들어가며 생생하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담 드 스탈이 다루는 작가나 예술가 또는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이 매우 높은 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험난한 산의 등반을 즐기듯이 쉽지 않은 독서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소설 안에 포함된 그 풍부한 읽을거리에 벌써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 『코린나』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개되는 예술 논쟁은 비단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유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이 땅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특히 세계화라는 말이 전혀 생소하지 않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1807년에 씌어진 이 소설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문제, 개별적 가치와 전체화의 문제를 우리에게 새삼 제기하며, 과연 강대국 중심의 전체화가 인류 문명의 앞날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오기 때문이다.둘째, 『코린나』는 진정한 여성주의를 내세우는 소설이다. 여기에서 ‘진정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여성의 권리를 단순히 사회적인 역학 구도 안에서 신장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의 페미니즘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린나』는 뛰어난 여성이 그 능력 때문에 남자로 대표되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통상의 여성주의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코린나』의 여성주의는 여성에 대한 좀더 본질적인 성찰과 그로 인해 여성성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옹호로 이어진다.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 내에 설정된 오스왈드와 코린나의 갈등에서 현실적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코린나 쪽이지만, 결국 마담 드 스탈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죽음으로써 승리하는 코린나의 예술혼임을 알 수 있다. 마담 드 스탈은 이 예술의 세계를 여성의 범주에 넣음으로써 남성의 범주인 정치적인 힘과 대결시키고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대립은 오스왈드/코린나, 영국/이탈리아, 정치/예술, 남성/여성으로 분류된다. 오스왈드가 속한 세계인 영국은 부권(父權)이 지배하는 나라로서, 군사 강국, 정치적 선진국이다. 그곳에서는 사회 제도에서부터 가정의 규율까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여권(女權)을 존중하는 나라로서, 모든 것이 무질서하며 민중은 계몽되지 않았고 통일된 나라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마담 드 스탈이 이탈리아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 영국을 그 상대역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고 자란 그녀에게 영국은 언제나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념적으로 동조한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변함없이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지지하였다. 그런 그녀가 『코린나』를 집필하면서 영국으로 대변되는 ‘힘’의 세계에 드디어 반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반격은 같은 힘으로써가 아니라, 힘없는 예술과 여성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 코린나와 이탈리아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코린나』의 이러한 면모는 오늘날 페미니즘을 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성주의의 새로운 차원의 지평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한다.셋째, 이 소설은 매우 시적인 소설이다. 언뜻 보기에 이 책은 매우 감상적인 여행 안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간이나 눈에 보이는 것의 묘사가 지나치다. 만약 누군가 한 손에 이 책을 펼쳐 들고서 로마의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말한다고 해도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소설의 묘사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보다는 소설의 인물들의 심상을 대변하고 있다. 로마와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의 묘사는 매우 의도적으로 오스왈드와 코린나의 사랑과 이별, 죽음 등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사물조차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기까지 한다. 이쯤 되고 보면 이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로 둔갑한다. 마담 드 스탈이 인용하고 있는 그 많은 예술품·유적·폐허와 자연의 묘사도 그 장소에 당연히 있기 때문에 행해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의도 아래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고 스토리의 전개를 암시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마치 현대 소설이 그렇듯이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양해진다. 이러한 풍요로움에 이탈리아의 유적과 예술품에 묻어 있는 역사적 의미까지 중첩되어 있어서, 『코린나』는 우리에게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이 달리 보이는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되는 것이다.
제1부 오스왈드
제2부 카피톨리노 언덕의 코린나
제3부 코린나
제4부 로마
제5부 묘지·교회·저택
제6부 이탈리아인의 생활과 기질
제7부 이탈리아 문학
제8부 조각과 회화
제9부 민중의 축제와 음악
제10부 성주간(聖週間)
제11부 나폴리와 산 살바토레 수도원
원주
옮긴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