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도움말]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에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라는 자전거 경주가 있습니다. 번역하면 ‘프랑스 일주’가 되죠.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에 걸쳐서 약 25일 간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프랑스 전국을 달리는 경기입니다. 참가자들은 하루에 시속 70km로 9~10시간 자전거를 타는데, 식사는 물론 물 공급도 모두 자전거 위에서 해결합니다. 그들은 빗속을 달리거나, 살인적인 여름 태양 밑을 달리는가 하면, 피레네 산맥 중턱의 영하의 날씨도 헤치고 달려야 합니다. 이처럼 ‘프랑스 일주’는 상상을 초월한 용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힘든 경기입니다. 프랑스의 각 도시와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이 그 해의 ‘프랑스 일주’ 통과지로 선정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선수들이 지나갈 때 도로에 나와 열심히 응원합니다. 1903년부터 시작된 이 경기는, TV 보급이 일반화된 1960년대부터 생중계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풍경들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합니다.
몇 해 전부터는 경주의 마지막 도착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는 샹젤리제의 개선문 앞으로 정해졌습니다. 1등을 한 선수는 국적을 막론하고 프랑스인들의 영웅이 됩니다. 그가 보여준 자기 극복의 정신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용기에 프랑스인들은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아스테릭스의 ‘골 일주’는 바로 이 ‘프랑스 일주’를 연상시킵니다.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경쟁해야 할 상대가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골 곳곳에서 우리의 친구들을 체포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로마군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루어낸 우리 친구들의 승리는 바로 ‘프랑스 일주’ 우승자의 그것입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골 각 지방의 다양한 특산물과 요리, 그리고 골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맛있는 요리와 휴가, 사실 이 두 가지는 전세계 사람들이 프랑스 하면 떠올리게 되는 항목들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또 한가롭게 시골이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생각한답니다. 프랑스인들은 음식을 먹는 것을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삶의 기술로 올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온화한 기후와 넓고 비옥한 토지 덕분에 풍부한 곡식과 해산물이 생산되며,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급의 술이 생산되는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음식 문화를 발달시켜왔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프랑스 어린이들은 음식의 중요성과 식탁 예절, 그리고 어떻게 음식을 즐기는지를 배운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미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미각수업’을 실시하고, 일 년에 한 번 ‘미각주간’을 지정해 매일 먹는 음식이 어느 지방의 것인지, 그 재료가 어느 지방에서 생산되는지, 또 좋은 음식이란 어떤 것인지 등등을 배우게 되고 직접 시장에 나가 좋은 재료를 구하는 방법도 알아본답니다. 맛좋고 질 좋은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고 함께 먹는 것이 삶을 즐기는 소중한 기쁨임을 알게 되죠.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모험이 항상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 앞에서 끝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랍니다. 여러분이 프랑스인의 초대를 받아 식탁에 앉았을 때, 할 수 있는 찬사는 무엇일까요? 바로 멧돼지 구이 냄새를 맡으면 오벨릭스가 어김없이 던지는 말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Ca sent bon!”이에요. 여러분,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란 단어가 바로 프랑스어라는 것 알고 계시죠? 현재 프랑스는 세계 제 4위의 경제 대국이고, 프랑스인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출·퇴근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전세계 사람들의 머리 속에, 프랑스인들의 생활은 일하는 모습보다는 휴가를 즐기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에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자들은 귀족이나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입니다. 모든 고용주들이 노동자에게 반드시 2주일의 유급 휴가를 주도록 하는 법이 1936년에 통과되었고, 마침내 사람들은 2주라는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일과 구별되는 전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법적 유급 휴가는 점점 늘어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긴 5주의 유급 휴가를 프랑스인들은 즐기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 중순이 되면 남부 지중해 연안이나 스위스, 이탈리아 등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휴가를 떠나는 자동차로 붐빕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프랑스인들의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조금 꼬집고 있죠. 하지만 단조로운 노동의 일상을 벗어나 일 년에 한 번 긴 휴가를 해변에서 지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불편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하는 듯합니다. 비록 운전자들 사이에 심한 말들이 오고가긴 하지만, 이 또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처럼 즐거운 소음이죠. 프랑스인들은 휴가를 새롭게 힘을 충전하기 위한 시간으로 간주하기보다는, 노동의 시간과는 전적으로 별개인 시간으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기는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삶의 태도는 인간을 돈 버는 기계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현대 산업 사회의 윤리에 해독제 구실을 하고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프랑스가 많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도 바로 프랑스인들의 삶을 즐기는 능력, 삶의 질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