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소개]
이 책은 우리 능금 산업에 관한 여러 의문들을 역사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하려는 첫 시도이다. 아울러 이 책은 우리 능금의 기원과 기술 혁신 과정을 둘러싼 수많은 의문들에 답하려 한다. ‘능금’이 토종을 지칭하는 사투리라면, 과연 ‘사과’는 어원에 맞는 바른 말일까? 과연 서양 능금은 누가 최초로 도입하였고, 일제는 능금을 앞세워 어떠한 식민지적 목적을 추구하였을까? 식민지 말의 능금 산업이 침체의 늪을 벗고 전후 재건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우리는 아직 주식인 쌀의 역사조차 정리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농업 사상 최초로 한 품목의 역사를 정리해낸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에]
그 많던 능금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가지가 부러질 듯 주렁주렁 매달렸던 그 시절의 새빨갛던 홍옥. 움 속에서 갓 꺼내먹던 시원한 국광, 맨 먼저 수확하였던 축, 달고 컸지만 비쌌던 언제나 푸른 인도, 그리고 봉지에 싸인 진노란 골덴. 탄저 걸린 흠과나 까치 먹은 놈만 골라 먹던 나의 어린 시절. 긴 장화에 전정용 톱과 가위로 무장하신(?) 아버지를 따라 능금밭을 뛰놀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해본다. 유황 달이던 매캐한 냄새처럼 그날의 기억들은 아직도 가슴에 촉촉이 녹아 있고, 농약 치고 물 퍼올리던 원동기 소리도 두 귀에 쟁쟁하기만 하다.능금과 적지 않은 인연을 가진 나지만, 늦게 시작한 능금사 연구는 여전히 어렵기만 한데, 능금 농사도 예전 같지 않아 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소식들이다. 국민 경제를 코에 걸고서 WTO 협상이나 한·칠레 자유 무역 협상에 앞장서려는 사람들은 과연 우리 능금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고 있을까? 아스팔트 농사로 인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보다 냉철하게 우리 능금을 사랑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알의 능금에 새겨진 진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음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산업으로서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다 긴 안목에서 우리 능금을 역사와 문화의 훈기로 포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파고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의 활동 무대였던 만주와 한반도의 깊은 산속에는 아직도 야생 능금이 살아 숨쉬고 있다. 기후와 생육 환경이 능금에 알맞는 원산지라지만 우리의 능금사는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 혁신, 식민지 개발과 그에 대응한 주체적 개발이 교차된 고난의 나날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서양 능금의 사례만 보아도 이를 처음 도입한 서양 선교사들 역시 수입한 접수(接樹)를 기존의 토종 능금나무에 접붙이는 방식으로 이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후 일어난 주산지의 형성도 냉철히 따져보면 철저히 토종 능금의 전통과 맥이 닿아 있다. 1920년대 이후 새로운 주산지로 부상한 서북부 지역이야말로 19세기에 『임원경제지』나 『규합총서』에서 토종 능금의 주산지로 지적된 곳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사정이 식민지 농업 개발의 일환이었던 능금 산업을 스리랑카의 차(茶) 플랜테이션과는 달리, 한국인들에게 재빠른 압축 성장의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었을까?그런 시각에서 이 책은 우리 능금 산업에 관한 여러 의문들을 역사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하려는 첫 시도이다. 아울러 이 책은 우리 능금의 기원과 기술 혁신 과정을 둘러싼 수많은 의문들에 답하려 한다. ‘능금’이 토종을 지칭하는 사투리라면, 과연 ‘사과’는 어원에 맞는 바른 말일까? 과연 서양 능금은 누가 최초로 도입하였고, 일제는 능금을 앞세워 어떠한 식민지적 목적을 추구하였을까? 식민지 말의 능금 산업이 침체의 늪을 벗고 전후 재건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우리는 아직 주식인 쌀의 역사조차 정리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농업 사상 최초로 한 품목의 역사를 정리해낸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우리 능금사의 복원은 가능할까? 사실 이 작업은 항상 자료 부족과 주변 관련자들의 인식 부족 때문에 지난한 과제였다. 조선 시대 능금에 관한 연구는 이미 『경제사학』 제24호에 「조선 후기 능금 생산의 발전」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글을 새로운 자료를 더하여 재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아울러 개화기의 능금 자료는 대구 지역의 장로 교회사와 개화기의 서양인과 일본인들의 기록에 주로 근거하였다. 그렇지만 식민지 시대의 능금에 대해서는 경북 능금 농협의 내부 자료(『경상북도 과물 동업 조합 사업 성적서』)들과 아오모리현 히로사키(弘前)시 농업 협동 조합이 일본 능금사 연구를 위해 수집하였던 방대한 자료관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었던 시기의 자료는 태부족이어서, 이는 당시 신문 자료와 독농가들의 작업 일지 등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 현장과 지도 기관들, 그리고 능금 농협들을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도 우리 능금사의 복원을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문헌과 자료의 수집이 필요하다. 결국 더욱 완벽한 우리 능금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이 책의 저술은 실로 많은 이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경북 도청 이태암 농정과장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연구를 위한 단서를 제공해주었으며, 경북 능금 농협 정윤수 이사는 식민지 시대의 희귀한 사진을 제공해주시는 등 누구보다 자료 수집에 큰 도움을 주셨다. 또한 오사카 경제대학의 도쿠나가(德永光俊) 교수의 소개로 만난 이와테 대학(岩手大學連合農學硏究科)의 타마(玉眞之介) 교수, 그리고 기쿠치(菊池卓郞) 학장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타마 교수의 소개로 어렵게 만난 『아오모리현 능금 백년사』의 공동 저자였던 사이토(齊藤康司) 씨는 친구 아카이시(赤石宏)를 설득하여, 고서점 가격으로 10만 엔이 넘는 그의 방대한 저서를 무상으로 생면부지의 나에게 증정해주셨다. 실로 능금사를 매개로 새로운 한일 협력이 시작되는 순간들이었다. 그 밖에 경북 도청의 최웅 과장과 기획실의 석태문 박사는 예리한 안목으로 집필에 충실한 자문역을 담당해주셨고, 아울러 경북대 농업경제학과의 최수영 조교는 어렵기만 한 원고 정리와 편집 작업에 남다른 진가를 발휘하였다. 끝으로 수준 높은 안목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게 도와주신 서남재단과 문학과지성사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이 책은 전근대 시대 이래 우리 능금이 끈질긴 기술 혁신의 생명력을 앞장서서 펼쳐왔음을 밝힌 최초의 전문 연구서다. 식견 있는 치안판사로서 뒤늦게 농협 운동에 매진하셨다가 중년 이후 능금원을 가꾸시며 학처럼 일생을 마감하신 우리 아버지. 신교육을 받은 대갓집 종부로서 만여 평의 능금밭과 함께 격동의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그리고 우리 능금의 근대화를 향해 노력해온 무수한 선각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2년 5월 가지산방(可止山房)에서
이호철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책머리에
서장 능금의 역사와 문
1. 우리 능금의 이지러진 초상
2. 우리 토종 능금을 찾아서
3. 서양 능금과 식민지적 플랜테이션
4. 이 시대의 우문우답, 능금일까? 사과일까?
5. 잃어버린 우리 능금사를 찾아서
제1장 우리나라 능금의 기원
1. 우리 능금의 유래
Ⅰ. 우리 능금의 기원
Ⅱ. 중국 능금의 기원
Ⅲ. 우리 능금의 유래
2. 조선 전기 능금의 존재 형태
3.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사과와 능금
4. 우리 토종 능금의 존재 형태
제2장 조선 후기 능금 생산의 발달
1. 조선 후기 능금의 존재 형태
Ⅰ. 능금 주산지의 형성
Ⅱ. 중국 신품종 능금의 출현
Ⅲ. 조선 후기 능금 생산의 변화
2. 조선 후기 능금 생산의 발전
Ⅰ. 중국 신품종 능금의 도입과 전파
Ⅱ. 조선 후기 농서의 능금 생산 기술
Ⅲ. 조선 후기 능금 생산 기술과 그 발전
Ⅳ. ‘사과’라는 속칭, 그 시대사적 의미
3. 조선 후기 능금 생산의 발달
제3장 개화기 서양 능금의 도입
1. 서양 능금의 도입
2. 서양 능금의 도입 과정과 서양 선교사
Ⅰ. 서양 능금의 도입 과정
Ⅱ. 서양 선교사들의 과수원 경영
Ⅲ. 한국인에 의한 과수원 경영
Ⅳ. 1900년대 일본인 농업 이민자들의 과수원 경영
3. 서양 선교사와 대구 능금의 기원
Ⅰ. 1905년경 대구 지역의 과일 모습
Ⅱ. 플레처일까? 애덤스일까?
Ⅲ. 1892년 기원설은 사실일까?
Ⅳ.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
Ⅴ. 1905년 이후 대구 능금의 발달상
제4장 일제 침략과 능금원 개발
1. 일제 침략과 능금 플랜테이션
Ⅰ. 원예 모범장의 설치
Ⅱ. 플랜테이션 농업과 일제의 능금원 개발
2. 기후와 토종 과일에 대한 평가
Ⅰ. 기후와 풍토의 유리성
Ⅱ. 토종 과일의 종류와 그 평가
Ⅲ. 토종 능금의 평가와 개발 전망
Ⅳ. 토종 능금의 개량
3. 서양 능금 개발의 경제성
Ⅰ. 서양 능금의 경제성
Ⅱ. 해외 시장의 개척
4. 능금원 조성과 능금 생산 기술의 보급
Ⅰ. 상업적 능금원의 조성
Ⅱ. 능금 생산 기술의 보급
Ⅲ. 품종에 대한 평가와 그 이식
Ⅳ. 1900년대의 병충해 방제
5. 일본인 농업 이민의 능금원 경영 사례들
제5장 식민지 초기의 한국 능금, 1910~17
1. 식민지 능금의 새로운 출범
Ⅰ. 시대사적 의미
Ⅱ. 농사 시험 기관의 정비와 생산 기술의 보급
2. 식민지 초기의 능금 정책
Ⅰ. 조선 총독부의 능금 정책
Ⅱ. 지방 정부의 능금 정책
3. 식민지 초기의 능금 생산
Ⅰ. 능금 재배 기술의 보급
Ⅱ. 병충해 방제 대책의 수립
Ⅲ. 시비법과 윤비법
4. 식민지 초기의 능금 유통
Ⅰ. 판로 확대를 위한 조사 실시
Ⅱ. 식민지 초기의 능금 검역
5. 식민지 초기의 늠금 수출과 국제 교류
6. 식민지 초기의 생산자 단체
Ⅰ. 경북 왜관 지역의 능금 사정
Ⅱ. 대구 지역의 능금 사정
Ⅲ. 충주 지역의 능금 사정
Ⅳ. 기타 지역의 능금 사정
Ⅴ. 생산자 단체의 출범
7. 식민지 초기의 능금 연구
Ⅰ. 연구 기관의 개편
Ⅱ. 지역 연구와 그 문화
제6장 성장기의 한국 능금, 1917~30
1. 성장기 능금 정책
Ⅰ. 시대사적 의미
Ⅱ. 성장기의 능금 사정
Ⅲ. 성장기의 지역 능금
2. 성장기의 능금 생산
Ⅰ. 능금 생산과 그 기술
Ⅱ. 새로운 농약과 농기구의 투입
3. 성장기의 능금 유통
Ⅰ. 능금 판매와 그 가격
Ⅱ. 능금 검사와 유통 문제
Ⅲ. 성장기의 능금 수출 문제
제7장 대공황기의 한국 능금, 1931~37
1. 대공황기의 능금 정책
Ⅰ. 시대사적 의미
Ⅱ. 능금 생산의 약진과 주산지 이동
2. 대공황기의 능금 생산
Ⅰ. 능금 생산과 그 기술
Ⅱ. 병충해 방제와 시비법
Ⅲ. 능금의 품종 구성과 경영 방법
3. 번영기의 능금 유통
Ⅰ. 능금 판매와 그 가격
Ⅱ. 능금 유통과 가공 및 포장 문제
Ⅲ. 능금 수출 상황과 능금 검사
4. 국내와 해외의 능금 소비
5. 번영기의 생산자 단체와 국제 교류
Ⅰ. 번영기의 능금 연구와 국제 교류
Ⅱ. 번영기의 국제 교류
제8장 침체기의 한국 능금, 1938~53
1. 식민지 말기의 능금 사정
Ⅰ. 시대사적 의미
Ⅱ. 생산자 단체의 연합과 그 저항
Ⅲ. 지역 능금 정책의 전개
Ⅳ. 능금 산업의 미약한 전진
2. 해방 직후의 한국 능금(1945~53)
Ⅰ. 시대사적 의미
Ⅱ. 해방 직후의 능금 생산 및 유통
Ⅲ. 지역 능금과 생산자 단체의 존재 형태
제9장 재건기의 한국 능금, 1954~60
1. 재건기의 능금 사정
Ⅰ. 시대사적 의미
Ⅱ. 재건기 능금 산업의 역사적 의의
Ⅲ. 재건기 능금 산업의 변화
2. 능금 정책
Ⅰ. 1950년대 능금 정책의 흐름
Ⅱ. 외화 획득을 위한 능금 수출 정책
Ⅲ. 국내 소비 정책과 물가
3. 능금 생산
Ⅰ. 능금 생산과 증산의 과제
Ⅱ. 병충해의 발생과 기상 재해
Ⅲ. 능금 생산 자재의 공급 사정
4. 능금 유통
Ⅰ. 능금 가격과 거래
Ⅱ. 능금의 유통과 수출
Ⅲ. 능금 등급화와 포장
5. 1950년대의 능금 연구와 문화
Ⅰ. 능금 연구와 그 경향
Ⅱ. 능금 문화와 능금 노래
6. 지역 능금 산업과 능금 경영인
Ⅰ. 대구 능금의 사정
Ⅱ. 경북 능금 협동 조합의 출범
Ⅲ. 경북 능금의 사정
Ⅳ. 충남 예산군 능금
Ⅴ. 충북 충주 능금
한국 능금사 연표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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