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관과 근대화론 : 양계초를 중심으로

이혜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2년 3월 30일 | ISBN 9788932013251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68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작품 소개]
이 책은 명말 청초(明末淸初)의 진보적 지신인들의 활동부터, 천하관(天下觀)이 붕괴되는 격변기의 개혁론자들의 분투, 이후 천하주의,세계주의의 비현실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국가주의를 제창했던 양계초의 대동(大同) 세계에 대하여 꼼꼼하게 탐색하고 있는 저서이다.

이 책은 근대 서양의 등장에 의해 일견 붕괴한 듯이 보였던 천하관이 정치 엘리트의 도덕주의를 유지하는 데 봉사하기 위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구명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관으로서는 여지없이 붕괴했으면서도 포기될 수 없는 도덕주의에 봉사하기 위하여, 나아가 엘리트 독재에 대한 의지 관철에 봉사하기 위하여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아 있는 모습을 추적하려 한다.―「서론」 중에서

제1부 「명말 청초의 유토피아」에서는 천하관이 지배적인 시대에 그 중심에 있었던 고염무(顧炎武, 1613∼1682),황종희(黃宗羲, 1610∼1695),왕부지(王夫之, 1619∼1692)가 제시하는 이상 사회에 대하여 깊이 있게 살핌으로써 천하관이 동요하기 시작했던 청말(淸末)과의 차이를 밝히고 있으며, 제2부 「청말 민국초」에서는 장지동(張之洞, 1837∼1909),강유위(康有爲, 1858∼1927),담사동(譚嗣同, 1865∼1898)을 통하여 기존의 중국 중심 세계관의 동요와 분투, 굴절에 대해서 살피고 있다. 저자는 장지동의 개혁 이론 구조, 강유위의 보편 원리의 세계, 기철학적 비판 작업을 통해 수행되는 담사동의 과거의 청산 작업 등을 반영하고 있는, 당시 경악과 절망의 시대를 맞았던 중국의 세계관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제3부 「양계초의 대동과 도덕주의」에서는 천하관의 붕괴에 대하여 분명하게 자각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적극적인 국가주의에 주목한다. 양계초는 격변하는 시대에 조응하여 격렬한 사상 변화를 펼쳐 보였는데, 저자는 양계초의 계몽 사업 안에 혼재되어 있는 전통 해석의 변화와 더불어 그의 정치적 입장의 변화까지 치밀하게 탐색하고 있다.

[책머리에]
공자는 너무 위대하다 보니 죽어도 죽지 못하고 몇천 년이 지나도록 몇천 번이고 무덤에서 다시 불려나와 온갖 영화와 오욕을 겪었다. 그 영화와 오욕에 대해 공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어떤 것인가 따지는 일을 제쳐둔다면 『논어』에서 보여주는 공자의 인품은 흉내낼 수 있다면 흉내내고 싶은 매력적인 것이다. 서른이 되면서 공자가 서른에 했다는 ‘입(立)’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이제는 마흔에 가까이 가고 있다. 공자는 ‘불혹(不惑)’했단다. 불혹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유혹이란 외부의 힘은 자기 내부의 욕심 때문에 위협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혹이란 부당한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유혹이 전혀 위력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아닐까?

일본에 유학하던 중에, 한국에 대해 관심 많은 한 일본인 선생의 책꽂이에서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라는 일본 작가의 한국어 번역서를 보게 되었다. 단편소설집이었는데 그 가운데 「산월기」라는 작품이 가슴에 박혀서 가끔씩 다시 들춰보게 된다. “재능의 부족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겁 많은 자존심”과,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낮은 데 내려서기를 거부하는” “존대한 수치심” 때문에 짐승으로 변해버린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오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기대? 혹은 허영심? 일본작가가 잡아낸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과 관계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 때문에 짐승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 세계의 한 틈에 발을 딛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몇 년 전에 쓴 박사학위 청구논문인데 이렇게 내놓게 되기까지 몇 년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제출하고 1년 넘게는 차마 들여다보지도 못하다가, 서남재단의 호의로 출판 준비를 하게 되면서, 그리고 최근 교정을 보면서, 볼 때마다 부끄러워 한동안씩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인들 내 그릇을 뛰어넘어 더 잘나 보일 수 있겠는가! 생긴 것보다 더 잘나 보일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라는 것은 이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유치하고, 그러다가 도통한 척해보기도 하고, 대부분은 무심하게 지내지만, 가끔씩은 그러한 자신에 진저리치고.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일들을 되풀이하고 산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대에는 넘쳐나는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서 사는 게 어려웠던 것 같은데, 30대에 들어서면서는 전과 같지 않은 몸을 달래가면서 살살 힘쓸 곳을 찾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이런 책의 형태로 나타났다. 스스로는 힘쓸 데를 찾았다는 생각에 내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여기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다. 한심한 데다 힘쓰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던져진 이 세상에서 행복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행복이라는 말만큼 모호한 또 하나의 개념, 사랑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동업이라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면 자신의 열을 분출하는 사랑이라는 사업 역시 혼자 하는 것이 가장 쉬울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것은 동업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무런 거짓 없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구박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고 사는 일이 어떻게 쉽겠는가!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자신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자신이라는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만 살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테두리도 없이 넓을 것이다. 끝없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끝없이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허위 의식을 걸칠 것이다. 공(空)이기를 바라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다가가기 위한, 좀더 용납하기 쉬운 허위를 걸치려고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허세 부리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불혹’을 준비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으로 몇 년의 힘씀의 결과를 내놓는다.

2002년 3월 이혜경

목차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서론 천하관과 도덕주의
제1부 명말 청초의 유토피아
제1장 고염무
1. 심성학의 부정
2. 예의 자기화를 위한 박학
3. 예와 법
4. 비관적 사대부 의식

제2장 황종희
1. 현재심(現在心)으로서의 주체
2. 주체의 극대화
3. 양명좌파의 배제
4. 유자 엘리트의 이상 사회

제3장 왕부지
1. 왜 『역』인가?
2. 본체의 두 계기
3. 인간의 길
4. 무(無)의 배제, 그리고 이(理)
소결

제2부 청말 민국초_흔들리는 천하

제4장 장지동
1. 양보와 고수
2. 유자의 본분으로서의 회통
3. 무정부 상태로 이해되는 민권
4. 선비의 분발에 의한 부국강병

제5장 강유위
1. 진화론과 선
2. 세와 공리
3. 대동세에서의 ‘분수’
4. ‘세’와 단절된 ‘공리’의 세계

제6장 담사동
1. 파괴와 건설의 양날
2. 파괴
3. 건설
4. 인과 통
5. 파괴 뒤의 무, 무 위의 평등
6. 끝으로
소결

제3부 양계초의 대동과 도덕주의

제7장 천하관의 붕괴에 의한 도덕관의 동요
1. 예(禮)에서 법(法),지(智)로
2. 제도적 개혁의 비전 상실
3. 신민(新民)의 새로운 도덕
4. 사덕의 요청
5. 애국과 양지의 결합
6. 끝으로

제8장 문명을 위한 권도(權道)
1. 문명과 종교를 둘러싼 혼란
2. 문명과 전제
3. 정도과 권도
4. 끝으로

제9장 양계초의 대동
1. 민국 초의 정치 생활
2. 세계 대전, 그리고 문명의 주류
3. 양계초와 호적
4. 공자 중심의 새로운 미래상
5. 끝으로
소결
결론 도덕주의와 민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작가 소개

이혜경 지음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8년 일본 京都대학에서 중국철학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京都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臺灣 중앙연구원 객원연구원, 이화여대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인천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文明へ至たるための權道―梁啓超における宗敎と專制」 「天下觀の崩壞による人間觀の動搖―梁啓超の 〈變法通議〉から 〈德育鑑〉 まで」 「中國近代における天下觀の動搖と再生」 「譚嗣同の 《仁學》― 批判哲學としての破壞と 建設の役割について」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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