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의 침묵

최현식 비평집

최현식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2년 4월 26일 | ISBN 9788932013282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8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작품 소개]
젊은 문학 평론가의 첫 비평집

이 비평집은 저자가 등단 이후 발표한 글들 중 시에 대해 쓴 글들을 엮은 것으로, 시론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책머리에]

등단 후 쓴 글의 일부를 모아 첫 비평집을 엮는다. 모두 시에 대해 쓴 글들이니 시론집이라 해도 되겠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전혀 다루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나의 게으름 탓이지만, 1990년대 들어 뚜렷해진 비평의 세분화 현상에 영향 받은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쉬움은 없다. 시를 통해 타자들,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문득 조우하는 즐거움이 워낙 컸으므로. 나는 이 글들을 쓰면서 어떤 일관된 체계나 주제를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대개 청탁에 따라, 혹은 개인적 관심에 촉발되어 쓴 글들이라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우선은 개개의 시들이 말하는 바를 수굿하게 경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상의 범위와 성격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글이 작가,작품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지향이나 목적 없이 무작정 시를 읽어온 것은 아니다. 나는 시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무엇보다 ‘침묵,’ 그러니까 “인간은 말을 통해 침묵을 듣는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反響)이다”라고 했을 때의 그 ‘침묵’을 듣고 싶었다. 이 말이 실린 『침묵의 세계』의 저자 피카르트에 따르면, ‘침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소급될 수 없는 원초적인 소여(所與)이다. 그리고 인간은 ‘침묵’과 접촉함으로써, 아니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삶의 저 너머로 뻗어간다. 요컨대 ‘침묵’은 의식의 무한 확장과 심화, 시에서 흔히 하는 말로, 존재의 원초적 동일성과 타자성에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매개이자, 그 자체로 일종의 절대 언어인 것이다. 나는 이 ‘침묵’이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실재로 내 안에 머물고 있음을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매우 드물었지만 그래서 한결 소중했던, 머릿속을 백지로 몰아가는 의식의 순간적 암전, 아니 돌연한 융기의 체험, 시는 그때 오롯이 내가 되었다. 모든 글들은 그 지복(至福)을 기대하면서 씌어졌고, 실제로 몇몇 글들은 그 경험을 비평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이 내 안에만 웅크리고 있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것이 야만의 도를 점점 더해가는 이 땅의 현실에 고통스럽고도 즐거운 파문이 되기를 늘 기원하고 희망했다. 그 때문에 자기와 세계의 진지한 성찰에 게으른 안이한 서정에 대해서는 의심과 회의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제는 온전히 문학사의 몫이 된 한국 시의 큰 별들에 대한 검토를 제4부로 따로 묶은 것도 그런 희망과 계고를 좀더 확실히 해두자는 뜻에서였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하는 것이 삶의 바른 길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 차분히 되짚어보니,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이 그런 잘못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겠다. 이런 사태는 아마도 그 다채로운 ‘침묵’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기보다는 내 것으로 다잡으려 했기 때문에 벌어졌을 것이다. 그 비뚤어진 사랑과 욕망에 넓은 이해를 구한다. 앞으로는 좀더 느려져야겠다, 어디서 마주칠지 모를 ‘침묵’들과 동행하기 위해, 또한 그들이 내 안에 좀더 편안하고 깊숙하게 깃들 수 있도록. 이 비평집을 묶다 보니 글자 하나하나에 나와 인연 있는 많은 분들의 정겹고 애정 어린 눈길이 머물러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분들께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도리겠으나, 그럴 여유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도 성함을 밝혀 그 애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픈 분들이 있다. 엄정한 연구자의 태도로 문학이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몫을 늘 일깨워주시는 이선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한 달에 한 번 선생님을 뵐 때마다 젊음이 부끄러운데, 그 부끄럼의 즐거움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간구한다. 유종호 선생님은 비평가의 길을 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비평의 즐거움과 시 읽기의 기본을 다시 가르쳐주신 분이다. 가까이서 선생님을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내 비평 작업에 다시없는 행운이자 축복이다. 당신의 너털웃음 자체가 이미 시(詩)인 정현종 선생님께는 이 세상을 ‘한 꽃송이’로 거듭 피어나게 하는 비밀을 배운다. 예의 ‘침묵’을 가장 많이 허락한 시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의 시였음을 아시는지…….
더 바지런히 읽고 공들여 쓰는 것만이 이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최선의 길임을 안다. 한편 재주라곤 책상머리 지키는 것밖에 없는 나를 늘 믿고 응원함은 물론, 내 글의 첫 독자이기를 마다 않는 아내 김영란에게 어떻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또한 서툰 글에 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신 문학과지성사의 채호기 사장님과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편집부 식구들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환력을 훨씬 넘기신 오늘에도 여전히 흙의 삶을 자청하고 계신, 내 생겨난 자리 부모님께 애틋한 사모의 정을 담아 이 책을 올린다.
2002년 봄 현식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시의 깊이와 삶의 확장
순간과 도취의 시학__정현종론
‘사실성’의 투시와 견인__오규원론
‘관계’ 탐색의 시학__이성복론
삶의 진실과 시의 길__김용택론
부정적 상상력의 진실성과 허구성__유하론

제2부 ‘시의 집’들의 풍경과 내면
시선의 조응과 그 깊이, 그리고 ‘몸’의 개방__오규원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흐르는 풍경의 깊이__최하림 시집 『풍경 뒤의 풍경』
표류 혹은 연습으로서의 삶__강창민 시집 『비가 내리는 마을』
‘들린’ 영혼의 자기 관찰과 시적 표현__김춘수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저습지들의 세계’에서 터지는 ‘몸’의 빛깔__김혜순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
육체의 고행과 트임__김기택 시집 『사무원』
기억의 유적 속에 갇힌 현재__이윤학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평범함, 그 이면의 잔혹함__이선영 시집 『평범에 바치다』

제3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의 상상력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세 가지 방식__고은, 황동규, 김명인의 시
개성의 옹호와 회피__박주택과 김참의 시
부드러움, 그 미지의 풍경__이대흠 시의 어제와 오늘
궁핍한 삶을 감싸는 서정의 힘__정종목 시의 어제와 오늘
바리데기를 꿈꾸는 시__함성호 시의 어제와 오늘

제4부 아직도 ‘목이 쉬여’ 남은 시들
‘곧은 소리’의 요구와 탐색__김수영의 시의식
민족과 전통의 발견술__신동엽 시를 읽는 하나의 관점
민족, 전통, 그리고 미__서정주의 중기 문학

작가 소개

최현식 지음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총합문화과 연구 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으로 『말 속의 침묵』과 『시를 넘어가는 시의 즐거움』『시는 매일매일』이, 연구서로 『서정주 시의 근대와 반근대』 『한국 근대시의 풍경과 내면』 『신화의 저편—한국 현대시와 내셔널리즘』이 있다. 대산창작기금, 소천비평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현재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한국현대시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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