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도움말]
사람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 잘난 사람들은 모든 걸 자기네들 중심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죠. 개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그보다 더 큰 뭉텅이로 봐도 그래요. 중국 사람들이 동양에서 한참 동안이나 주인 노릇을 했을 때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나 서양 사람들이 근대 이후에 자기들 중심으로 세상을 요리조리 쪼개 먹으며 세상의 중심에 유럽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나 모두 그 사례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양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 사고는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표출되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신대륙 발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아니, 실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죠. 옛날부터 있던 땅덩어리를 가지고 ‘신대륙’이라고 말하는 것도, 거기에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오고 있었는데 ‘발견’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엄밀하게는 어불성설입니다. 사실은 ‘발견’이라고 우겨놓고선 그 넓은 곳을 자기네 땅덩어리로 만들려는 욕심이 그 배경에 깔려 있었던 거죠.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콜럼버스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어불성설의 주인공 이상은 아닙니다. 웬 서두가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냐고요? 바로 이번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여섯번째 권이 그 ‘신대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대륙이라는 곳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랍니다. 구대륙인 유라시아 지역에서 신대륙인 아메리카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우리랑 비슷한 혈통의 몽골 계통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 다음으로 발을 디딘 사람들은 북유럽 사람들로 밝혀져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어떤 동굴에서 북유럽 사람들이 쓰는 문자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새겨져 있는 게 발견되었다지요. 아시아 계통 사람들이 알래스카 쪽 길을 탔다면 북유럽 사람들, 그러니까 바이킹들은 그린랜드 근처의 꽝꽝 언 바다를 넘는 힘든 길을 탔나 봐요. 그 악천후를, 지금처럼 든든한 장비도 없던 옛날에 어떻게 견디며 북아메리카로 갔을지 정말 상상이 안 될 정도죠. 우리 아스테릭스의 ‘바이킹’ 편(아스테릭스 4권, 『아스테릭스, 바이킹을 물리치다』)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그들은 정말 용맹하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나 봅니다.이 책 『아스테릭스, 신대륙을 발견하다』에서도 바이킹의 신대륙 발견에 관한 내용이 이야기 흐름의 중요한 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재미난 역사책’에는 사람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북해의 깜깜한 바다를 항해하며 신대륙을 찾아 헤매는 바이킹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죠. 바이킹이 아메리카를 향하여 떠난 것이 이 만화의 배경인 로마 시대 후반 무렵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니까, 역사적으로도 그리 그릇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만화의 ‘중심’은 역시 아스테릭스, 골족의 전사입니다. 실제로는 유럽인들 가운데 바이킹이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했으나 이 이야기에서는 골족의 전사들이 한발 앞서 신대륙에 들어간 것처럼 그려내고 있죠. 물론 이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하여 꾸며낸, 역사적으로 치자면 ‘가짜’인 부분이죠. 어쨌든 바이킹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역시 우리의 꼬마 전사 아스테릭스의 모험입니다. 바이킹 이야기는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한 탐험가의 무모한 모험이며, 아스테릭스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동네 생선 가게에서 자꾸 상한 생선을 팔자 싱싱한 생선을 얻기 위해 먼바다로 나가는 항해가 발단이 되지요. 재미난 것은 이야기의 끝 대목에서, 그 두 축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서로간의 못 말리는 오해 속에서 끝나죠. 아스테릭스 일행은 신대륙을 로마의 식민지인 트라스쯤으로 생각하고 신대륙에서 만난 인디언들을 로마 군대의 용병으로 착각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신대륙이 신대륙인지조차 모르고 그 땅에 발을 디디고 다시 발을 뗍니다. 반대로 바이킹의 탐험대는 신대륙인지는 알아채나 아스테릭스 일행을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으로 오해합니다. 탐험대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이들은 신대륙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증거’를 데리고 가는 바람에 자신들이 신대륙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죠. 어떤 면에서 이 만화에 소개된 스토리는 유럽이 바깥 세계를 대할 때 역사적으로 겪은 어려움과 저지른 잘못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그들은 정말 수많은 오해 속에서 바깥 세계를 재단했죠. 자기들을 뺀 남들은 다 야만인이라고 하는 바람에 남의 땅덩어리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고려 없이 무리하게 자르고 도려내어 식민지화했던 겁니다. 그 결과 20세기는 힘을 잃은 유럽이 바깥 세계 사람들에게 원래의 땅을 내놓게 되었고 그 과정은 자기들에게뿐 아니라 원주민들에게도 엄청나게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만화가 지어지던 1970년대는 특히 베트남 전쟁이니 뭐니 하여 유럽이나 서양 중심주의가 혹독한 시련을 겪던 때죠. 그들이 그 시기에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아스테릭스 이야기는 차라리 귀엽기조차 합니다. 여기서는 오해 속에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귀환하여 자기들이 어디에 갔었나도 모르고 그저 평온한 골족의 일상사를 다시 지속하니까요. 어쩌면 그렇게들 하고 싶었던, 그냥 망각해버리고 싶었던 유럽 사람들의 심정을 이 만화가 잘 보여준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