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도움말]
여러분, ‘바이킹’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세요? 아마도 ‘뿔이 두 개 달린 모자를 쓰고 약탈을 일삼는 해적’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아, 또 수염이 가득 난 성난 얼굴에 아무렇게나 자란 금발을 한 거구의 싸움꾼을 떠올리실 분들도 있겠네요. 바이킹에 대한 그런 악명 높은 인상이 사람들에게 남게 된 이유는 실제로 이들이 서구 유럽과 맺은 악연 때문이죠. 원래 북쪽 나라에 살던 바이킹은 서기 7세기경부터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여 8∼9세기에는 본격적인 약탈과 침략을 일삼기 시작했어요. 용감하고 잔인한 그들은 남쪽에 사는 서구 유럽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어요. 특히 섬나라인 영국과 아일랜드는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는 바이킹의 잦은 침략에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죠. 바이킹은 대규모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했고, 마침내 서기 980년에는 바이킹의 왕국 크누트 제국이 잉글랜드를 함락한 적도 있었습니다. 대륙에서는 아무래도 바다를 본거지로 둔 바이킹의 침략이 영국만큼 대단하지는 않았겠죠. 그러나 바이킹의 활약에 시달리지 않은 건 아니에요. 특히 당시 카롤링거 왕조가 다스리던 프랑크 왕국, 즉 지금의 프랑스 땅에는 바이킹들의 정착촌이 건설되기까지 했습니다. 센 강변에 건설된 이 정착촌은 나중에 노르망디 공작령이 되었고 바이킹은 노르망디 공작령을 거점으로 하여 주변의 여러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이렇듯 바이킹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바이킹은 노르만Norman, 노르망Normand, 노스맨Northman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모두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의 노르트마니Nortmanni라는 어원에서부터 나온 말들입니다.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출신의 해양 전사들이죠. 그들은 용감무쌍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며 충동적이어서 아무 때나 무모하리만큼 쉽게 싸움에 말려들고 잔인한 학살 행위를 밥먹듯이 하며 바다에서는 신출귀몰하듯 재빠르게 움직이고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현실에 뛰어나게 적응하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죠. 북쪽 땅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꽝꽝 언 고기를 먹으며 한겨울을 나곤 했던 그들에게 그런 용감하고 거친 성격과 뛰어난 현실 적응 능력이 생기게 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잔인무도하고 야만적인 특성만을 지닌 사람들이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인상이죠. 우선 그들은 매우 일찍부터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유럽의 오래된 설화들이나 동화들을 보세요. 그것이 다 어디서 온 것들인 줄 아세요? 그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대개는 바이킹이 살던 북유럽에 기원을 두고 있죠. 또 이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훨씬 전에 북쪽을 통하여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사람들이기도 하죠. 생각해보세요. 북쪽 바다라면 순 얼음투성이 아니겠어요? 그런 얼음 바다를 뚫고 미대륙으로 가는 일은 과학적이고도 뛰어난 항해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이렇듯 어떻게 보면 바이킹족들은 고대 로마와 함께 유럽 문명의 중심을 이루는 문명을 지니고 있던 문화 민족이죠. 그러나 숙명적으로 그들은 북쪽의 언 땅덩어리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해양 활동을 통해 보충하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남쪽 사람들에게는 ‘해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거죠. 뭐, 자기들 입장에서는 ‘국토 건설’이고 남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인 거고, 그렇죠. 아마 바이킹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해적 행위’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걸요? 우리의 친구 아스테릭스 역시 바이킹에 관한 서구 유럽인들의 선입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네요. 바이킹은 서구 유럽인들에게 죽음의 축제를 일삼는 공포의 이교도였습니다. 물론 서구 유럽을 침략하면서 그들 역시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잔인하고 야만적인 이교도적 악취미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인상은 계속해서, 어떻게 보면 처음 ‘아스테릭스 시리즈’가 만들어진 196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우리의 아스테릭스 역시 용감한 것으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친구잖아요? 그러니 용감한 것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또 다른 사람들, 바이킹과 숙명적인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골족은 지금의 프랑스 땅에 살던 가장 오래된 민족이었고, 바이킹을 포함한 북쪽 사람들은 자꾸 남쪽으로 내려오려고 하니 골족과 북쪽 사람들과의 대결은 필연적인 것이었죠. 역사적인 사실로 보면, 그 싸움에서 골족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패퇴하고 그 지역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죠. 그러나 마술 물약을 먹으면 천하 제일의 힘이 솟는 아스테릭스와 그의 친구들이 북쪽에서 내려온 바이킹에게 지겠어요? 아니죠! 이걸 보면 아스테릭스를 만든 고시니와 우데르조가 얼마나 프랑스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넌지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들이 가장 용감하고(심지어 바이킹조차 물리칠 정도로!) 가장 문화적인 사람들이라 이거죠(바이킹은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그런 프랑스 사람들의 자기 중심주의 같은 걸 이 만화를 통해 확인하는 일도 재미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또 하나 이 책에서 재미있는 것은, 아스테릭스와 바이킹과의 숙명적인 대결 사이사이에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러 온 홀리데익스의 이야기가 보조 에피소드로 끼어드는 대목이에요. 홀리데익스는 1960년대의 젊은 세대, 그러니까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프랑스 젊은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면 됩니다. 어른들과 시골 사람들이 자기들 고유의 전통적인 생활 습관을 중시하는 반면 이 젊은 세대는 그런 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자기 나름의 삶의 스타일을 찾으려 하죠. 음악도 그래요. 젊은 세대는 어른들과는 달리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비롯된 ‘몸의 음악’인 로큰롤을 즐기죠. 어른들은 생소하고 천해보이는 그 음악을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듣는 음악을 촌스럽거나 따분하다고 생각하겠죠? 이 책은 1960년대 프랑스의 그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젊은 세대와 시골에 사는 아스테릭스의 친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은근슬쩍 표현하고 있는 거죠. 바로 그런 점이 아스테릭스 시리즈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고대 유럽의 역사에 관한 모험적인 이야기가 현대 프랑스의 분위기와 맞물리는 것 말이에요. 그 둘이 서로 엮이면서 이 만화를 보다 풍부하고 복합적인, 조금 어려운 말로 하자면 ‘다층적인’텍스트로 만들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