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김병익 비평집

김병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1년 10월 23일 | ISBN 978893201286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38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작품 소개]
스스로를 20세기 사람이라고 말하는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21세기를 살아갈 세대에게 보내는 ‘멋진 신세계’를 향한 전망!

[책머리에]

지난 몇 해 동안을 나는 당혹스럽고 두려워하며 회의하고 아쉬워하며 혼란스럽게 보냈다. 그 사이에 20세기에서 21세기로, 1천년대에서 2천년대로 서력 기원의 네 자리가 한꺼번에 바뀌는 획기(劃期)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나를 그처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숫자의 바뀜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에 얹혀 우리에게 몰아닥친 엄청난 과학-기술적 발전이었다. 컴퓨터 공학과 바이오테크의 두 축으로 이루어지는 그 발전은 우리에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리얼리티로부터 사이버로, 지역성에서 세계화로, 인간의 피조물적 존재로부터 창조주적 존재로의 거대한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발전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그 급격한 변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신세계’를 어떻게 살아낼까의 근원적이고 엄청 커다란 문제성에 부닥쳤음을 나는 확인하게 된 것이다. 눈사태 같은 이 변혁이 가하는 충격들은 나의 30대에 당면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고민, 40대의 진보적 사유와 실천을 향한 갈등과는 그 차원에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미증유의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예컨대 중세의 지동설이 선언될 때처럼 새로이 당면해야 할 인식의 패러다임적 전환에 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50대를 넘으며 컴퓨터를 일상의 낯선 이기로 사용할 때만 해도 나는 이것들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세계는 이 덕분에 보다 편하고 풍요해지리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그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회적 삶과 문학의 운명에 드리우는 어떤 불길한 전조를 나는 은근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곱씹으면 씹어볼수록 컴퓨터와 바이오테크가 몰아올 세계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은 커지고 그것이 만들어낼 세계에 대한 회의가 늘어나며 과학과 자본의 결합이 앞으로의 우리 미래를 주도하리라는 판단이 들면서는 21세기에 대한 전망이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디지털 문명의 비인간성을 깨달아가고 있었으며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는 이제까지의 인간이 공유한 실재감을 전복시키리라는 전율을 느꼈고 유전자에 의한 생명공학은 인간의 존재성을 신적인 자리로 넘보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판단으로 다가갔다. 나는 이 ‘멋진 신세계’에 대한 공포에 젖으면서 나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이 21세기의 세상으로 걸쳐져 있음을 불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치욕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그리고 사람의 생각이란 기묘하게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세기말의 마지막 빛살이 져가고 그리고 내게는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2000년대의 첫 햇살이 비쳐오면서 나는 이 21세기에 대한 나의 경악이 진정되어가고 의혹이 조금씩 벗겨지기도 하며 부정의 전망 틈새에 내가 수락할 여지가 이따금씩 피어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0세기적인 어떤 전통과 미덕이 이 ‘신세계’에도 존속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명들이 전 세기적 시각에서도 소망하는 바의 약속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디지털과 바이오테크의 세계에서 오히려 아날로그적 인간주의가 더 잘 피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의 진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왔으며 나는 나의 것이 아닌 시대에 대해 전 시대인으로서의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등등 많은 것을 재우쳐가며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1999년 13월’의 시한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끌어내기도 했고 21세기의 삶은 21세기 세대의 삶이며 그 호오의 판단은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나의 이런 마음의 변화는 도대체 나와는 인연 없을 것 같은 것들에 내가 조금씩 익숙해지며 내가 피할 수 없이 맞닥트려야 할 시대에 조금씩 문을 열어 받아들이고 수락하며 내 스스로 그것에 적응해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나는 세상의 급속한 변화에, 매우 느리고 제한적이나마 함께 변하고 있었고 새로운 문명 체계의 속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었으며 그것들이 함의하는 바의 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나는 끝내 20세기적인 사람이겠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멋진 신세계’를 살아갈 젊은 세대에게 축복을 보내야 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제 I부는 이러기까지 내가 치러야 했던 착잡하고 혼란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모은 것이다. 그것은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기도 하고 앞과 뒤가 어긋나기도 하며 해석과 판단이 자의적이기도 하지만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고민한 한 소박한 지식인이 난관을 헤집으며 결국 일말의 화해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더불어, 1997년에 간행한 평론집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1999년에 낸 산문집 『무서운, 멋진 신세계』, 그리고 지금 이 책과 같은 시기에 나오는 산문집 『잊혀지는 것과 되살아나는 것』(열림원)과 대조해서 읽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구성을 맞추기 위해 앞의 두 산문집에서 각각 한 편씩을 끌어 중복 수록한 실례에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애써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1년 9월 김병익

목차

책머리에

I
멋진 문명과 희망의 문화
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세기의 변화와 삶의 문화
세기가 물려받은 것
자본-과학 복합체 시대에서의 문학의 운명
글로벌 시대, 그리고 문학의 자리
디지털 시대와 문학의 변화
21세기 한국 비평 문학의 과제

II
근대 문단의 형성과 그 이후
1950년대와 그 문학
한국 전쟁과 한국 소설
1960년대와 그 문학 163산업화 시대의 문학과 진보적 정치 이데올로기

III
남북 화해의 기대 속에서 다시 읽는 『남과 북』
이념의 상잔, 민족의 해원─황석영의 『손님』
존재의 괴리, 그 슬픈 아름다움─신경숙의 『딸기밭』
미로 게임, 즐기며 깨트리기─김설의 『게임 오버, 수로 바이러스』
60년대적 순진성과 그 풍속의 상실─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의식의 진화와 절제의 시학─김형영 시집 『새벽달처럼』
반성으로서의 소설, 의미화로서의 비평─김치수의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
타락한 문명과 문학적 초월─김주연의 『디지털 문명과 문학의 현혹』
시의 독자를 찾아서
현대의 비평, 한 일과 할 일─김현과 4・19 이후 비평을 중심으로
한국 문학의 국제화를 위하여

작가 소개

김병익 지음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는 『상황과 상상력』 『전망을 위한 성찰』 『열림과 일굼』 『숨은 진실과 문학』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 『기억의 타작』등의 비평집과, 『한국문단사』 『지식인됨의 괴로움』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등의 산문집, 그리고 『현대 프랑스 지성사』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등의 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팔봉비평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286-5 | 가격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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