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세상의 모든 부부가 공감하는 책!
특유의 재치와 따뜻한 심성이 묻어나는 가족 육아 만화.
문학과지성사가 새롭게 선보이는 ‘문지만화’ 시리즈 첫번째 작품으로, 홍승우의 「비빔툰」 세번째 이야기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를 내놓았다. 「비빔툰」은 한겨레신문에 99년부터 현재까지 연재하고 있는 ‘육아 중심의 가족 만화’로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앙증맞은 유머와 따뜻한 웃음으로 버무린 작가의 재치가 유난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빔툰’은 우리 삶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감정들이 비빔밥 비벼지듯 서로 모여 만들어진다는 의미의 ‘비빔’과 만화를 뜻하는 ‘툰’을 조합한 제목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작가는 결혼과 함께 달라지는 생활의 단면들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초보 부모가 겪는 에피소드들을 6∼8컷의 만화에 녹여내고 있다. 이미 2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비빔툰」은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의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간지를 사 본다는 열성팬층도 생겨났다. 젊은 세대 중심이었던 만화 독자들도 점차 그 연령층이 넓어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한 3권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는 번잡스런 아들 다운이의 동생, 겨운이의 탄생과 그들의 하루하루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제 말 배우기에 재미를 붙인 활달한 성격의 아들 다운이, 다운이에게 사랑을 나눠 갖는 법을 알려준 동생 겨운이, 보통 주부로 아이들을 위해선 수퍼맨이 되는 엄마 활미, 영원한 셀러리맨의 표상 정보통…….“아! 내가 이런 아름다운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구나!” 「비빔툰」 만화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그의 가정 모습과 닮아 있기에 전달되는 흐뭇한 공감이다. 홍승우 만화의 강점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머, 어머”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하는, 한마디로 공감을 준다는 데 있다. 심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거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며, 일상의 작은 단면들을 유머스럽게 스케치해가는 과정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부부란, 가족이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정보통과 생활미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정다운과 딸 정겨운은 서로를 통해 배우고, 웃고, 위로받고, 눈물 흘리고, 힘을 얻는다. 정보통과 똑같은 가정을 꾸린 작가 홍승우는 상처받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연령층과 성별을 초월해 그 누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금새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는 「비빔툰」. 단편 하나하나가 너무나 진솔해서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신문 지면에 ‘정보통’이 보이지 않으면 홍승우의 휴가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진 독자이다. 그의 만화는 무엇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 재미있다.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강요하지도, 읽는 이를 성급하게 가르치려 하지도 않으므로 독자의 눈높이에 딱 맞는다. 그처럼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생의 허위와 틀을 깨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은 잘 알 것이다. 또한 그의 그림 표현은 무척 실감이 나고 자연스럽다. 따뜻함이라는 뻔한 주제를 낯간지럽지 않고 또 상투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그의 만화 속에는 날카로운 통찰과 뜨거운 사랑이 함께 들어 있는 듯하다.
―은희경(소설가)
[만화가 박재동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비빔툰 한 숟갈 비빔툰….음…. 승우가 잘하는구나. 그래, 이건 신문 만화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거야. 신문 만화뿐 아니지,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그렇듯이 만화 문화가 주로 십대를 겨냥한 것이 많고 성인들을 위한 만화가 너무 없는데 그걸 개척한 거야. 성인 만화라면 주로 섹스만을 다루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도 불식시키고 말야. 그러면서 항상 안타를 치고 있어. 활미,정보통,다운이,겨운이, 모두 많이많이 친근해졌어. 아침마다 만나 애 키우는 이야기 한 꼭지씩 듣고… 그래, 이젠 우리 식탁 위에 같이 사는 작은 식구 같아. 그럼 된 거지 뭐. 한데 승우가 매일 한 꼭지씩 이야기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 다운이, 겨운이가 무슨 사건 일으키는 것만 바라고 사는 건 아닐까. 그날 하루 조용하면 그건 기사가 없는 날… 다운아, 겨운아! 그날은 니네 아빠 굶는 날이다. 한데 뭐, 아이들이란 조용할 날이 없지. 없을 땐 궁한 아빠가 뭔가 슬쩍슬쩍 찔러도 보겠지 뭐. 어떤 선배한테 들었어. 어린 손자들을 여럿 키웠던 선배인데, 키울 땐 무척 힘들었는데도 다 키우고 나니 또 키우고 싶더라고… 아이 키운다는 게 그런 일이 아닐까? 아니, 작품 하는 것도 그렇고 크게는 인생 사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암튼 승우야, 애 많이 쓴다. 듣자 하니 작품을 위해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다리 양쪽에 아이들이 달라붙은 채로 밥도 해주고 챙기기도 하고 한다니… 사실 그런 거 남자들이 좀 배워야 되는 거야. 우리 세대는 너무 못 배웠어. 지금도 승우같이 하는 아빠는 거의 없으니까…. 그래서 난…. 난? 묻지 마. 그러니까 이번 만화 그리기가 다른 테마보다 배나 힘들다고. 그럴 거야. 승우 그림을 보면 땀이 배어 있는 게 느껴져. 오죽하면 우리 프로덕션에서 승우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의까지 나왔겠어. 사정상 실현은 안 되었지만 말이야. 암튼 그러면서 여자들의 고충을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어 부인을 더 위해주게 되었다니 여러모로 좋은 거지 뭐. 만화 그리고, 아이 봐주고, 부인 이해하고. 딱 일석삼조네.―나, 여기 없어!(내 딸 솔나리 어릴 적, 신나게 놀고 있는데 불렀을 때)―우리 아빠 신문지 만들러 갔어요.(역시 솔나리)―그럼 왔다 갈게.(조카 나현이, 갔다 올게를 거꾸로)이제 다운이 겨운이도 말이 좀 제대로 될락 하면 이런 대사들을 들을 거야. 그때쯤 비빔툰은 또 새로운 재미를 얻어가겠지. 그렇게 해서 승우 생각대로 장수하는 테마가 되길 바래. 다운이 겨운이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말이야.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기 시작하면 아빠에게 정보를 안 주려 하겠지만 하하하) 암튼 왕성하게 꾸준히 해내길 바란다. 그렇게 독자들과 함께 아이 둘 키우는 거지.자, 그럼.승우, 비빔툰 파이팅! 다운이 겨운이 건강하고, 활미씨한테도 안부 전해줘.
– 2001년 9월 20일 14시 56분 박재동
[발문]
잘 비빈 그 밥을 먹고 나니, 무엇을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__이명석
홍승우의 「비빔툰」 세번째 이야기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가 책으로 묶어져 나온다니 반가운 일이다. 「비빔툰」은 여러모로 좋은 만화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문을 사 보고, 젊은 세대 중심이었던 독자들도 점차 그 연령층이 넓어지고 있다. 친근감 있는 캐릭터에 발랄한 생활 속의 아이디어가 내용적 만족을, 훌륭한 구도와 적절한 기교의 연출이 형식적 만족을 준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이면서도 만화적 재미를 만들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육아 중심의 가족 만화’에서 탁월한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모두 좋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의문을 지니고 있다. 과연 「비빔툰」은 홍승우의 전부일까? ‘재미있는 가족 만화’ 뒤에 숨어 있는 「비빔툰」의 정체는 무엇일까? 1980년대 후반 홍익대 디자인 계열 학생들이 만든 만화 동아리 ‘네모라미’는 이제 한국 인디 만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네모라미’는 비교적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이우일,권욱,박명천,이관용 등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디자인 전공의 학생들답게 과감한 이미지의 실험으로 비전통적,비일본적 만화를 그려냈던 그들 속에서 홍승우는 매우 독특한 위치에 서 있었다. 동료들이 이야기의 구조를 철저하게 붕괴하며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의 탐험에 앞장서는 가운데 유독 그만이 이야기 만화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꿈」 「전쟁과 사랑」 등을 그린 홍승우는 분명히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만화를 그리는 ‘네모라미’ 작가였다. 어쩌면 ‘네모라미’라는 새로운 성격의 생명체에 붙어 있는 혹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네모라미’라는 새로운 만화는 자신이 뛰쳐나온 ‘어머니 만화’로부터 재빨리 달아나려고 했다. 닮은 점이라곤 종이 위에 인쇄된 그림과 글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뿐, 사실상 ‘네모라미’의 만화는 종래의 한국 독자들이 알고 있는 만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예술이었다. 그런데 홍승우라는 촉수가 ‘네모라미’의 발 아래에 돋아나 ‘어머니 만화’에 엉겨붙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혹이 아니라 뿌리 같은 것이었다. ‘이야기’라는 만화 본래의 매력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떤 욕망이 그 뿌리를 내려 ‘네모라미’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려는 듯이 보였다. 이후 ‘네모라미’는 몇몇의 좋은 씨를 한국 만화계에 뿌리긴 했지만, 그 스스로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가느다란 뿌리, 홍승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홍승우는 간헐적인 행적으로 주류 만화계를 기웃거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료 만화가인 이우일이 색다른 자비 출판으로 도발적이고 파괴적인 웃음의 파티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동료들이 광고와 애니메이션계를 탐색하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정통의 만화 속에 뿌리를 내리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만화만 보더라도 그는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1998년이었다. 이우일이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조선일보의 간판 스타인 「광수 생각」과 맞붙어 양대 신문사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던 때였다. 나는 몇몇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인디 만화가들과 만나 그때 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젊은 만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매일 게재되는 만화들을 모아 스크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 홈페이지에 각 만화를 링크해 꼼꼼히 별점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고, 어떤 만화가 최고냐고 하는 대단히 사적이지만 중요한 주장의 시간이 왔다. 그리고 뜻밖에도 거의 만장일치의 결론이 나왔다. 승자는 다름아닌 홍승우가 그리는 『한겨레리빙』의 「정보통 사람들」이었다.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지명도에서도 떨어졌지만 분명히 그것이 가장 나은 작품이었다. 『정보통 사람들』은 결국 한겨레신문의 『비빔툰』으로 뻗어나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전국지의 간판 얼굴로 매일매일 수많은 독자들과 맞서 전쟁을 벌인다. 『정보통 사람들』보다 좀더 촘촘해진 칸 나눔으로 밀도를 높이고, 다소 산만한 소시민 만화에서 부인 활미와 두 아이를 주역으로 내세운 육아 가족 만화로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장르 면에서 『광수 생각』 『도날드 닭』보다는 『반쪽이의 육아 생활 만화』와 『짱구는 못 말려』 류의 핵가족 개그 만화들과 비교해야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채로운 소재로의 접근, 아이디어의 시각적인 형상화의 능력, 형식적 패턴의 변화와 그를 뒷받침하는 만화가의 성실성…… 어느 모로 보더라도 「반쪽이의 육아 생활 만화』나 『짱구는 못 말려』는 『비빔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다만 두 만화의 장점 혹은 개성이라면 『반쪽이의 육아 생활 만화』가 실용성이 강하고 여성주의적 시선이 강하게 개입해 있다는 점, 그리고 『짱구는 못 말려』가 자극적인 소재에 생각이 열려 있고 그를 통해 유머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반면 『비빔툰』은 다소 가족적 온건주의 속에 주저앉아버리는 듯하고, 지나친 대사와 지문으로 설명적인 패턴을 많이 만들어낸다는 약점을 지적할 수 있다. 『비빔툰』의 최대 장점은 만화가 스스로의 생활에서 나옴직한 다채롭고 생동감 있는 소재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형식미를 가진 구성으로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자장면 먹기」(p.105)에서 나오는 사물의 의인화나, 「눈물샘을 막고 있던 녀석」(p.144)에서 원근의 착오를 이용한 기교, 「아카시아 껌」(p.146)에서 여자 아이의 눈동자 속에 별이 반짝거리는 순정 만화적 장치의 패러디는 만화가의 탁월한 데생력과 구성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무하고 자족적인 아이디어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정대리님」(p.193)과 「비 그리고 햇빛」(p.194)에서 반복 속의 미묘한 변화가 주는 효과, 「모닝 헤어쇼」(p.150)의 무대적인 장치 등 다양한 형식의 즐거움이 『비빔툰』을 더욱 만화답게 만든다. 지금 『비빔툰』 가족의 최대 관심사는 두 아이다. 아이는 한편으로는 부모의 피와 살을 빨아먹는 악마적인 존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천사적인 존재다. 육아 만화에서 전자는 다양한 ‘유머’의 원천이 되고, 후자는 끊임없는 ‘감동’의 공급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빔툰」 속에도 아이들의 개구쟁이 같은 장난을 통한 유머가 나온다. 하지만 절대로 악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석양의 결투」(p.163)에서처럼 엄마에게 저항을 하며 맞서긴 하지만 대체로 굴복하고, 장난을 치더라도 순진무구한 동심에서 출발한다. 나는 그것이 만화적 이상에 가깝다고 본다. ‘박카스 사상’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온건성과 가족주의의 안이함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의 문제를 비판하기보다는 ‘문제가 있어도 행복한 삶’을 찬미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만화를 바꾸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존 가능한 가치관의 문제이다. 『비빔툰』의 핵심인 ‘가족’의 문제에서, 나는 만화가 홍승우와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만화가와 그 독자들이 지닌 다수의 사상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너는 왜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하니? 이렇게 행복한데. 혹시 게이 아니냐?’라든지, ‘정말 아이 같은 귀찮은 존재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어?’라며 서로를 부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제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비빔툰』이 가족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그것이 신문 만화라는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가족주의’를 설교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가족이 주는 감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화 자체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그로 인해 설명적일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신문 가족 만화의 전범을 아르헨티나 만화가 퀴노의 『마팔다』에서 찾는다. 우리처럼 오랜 군부 독재에 신음한 아르헨티나의 한 소시민 가정을 그리고 있는 이 만화는 그 형식적 창의성, 소재의 섬세함 등 많은 면에서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세계 정치와 평화의 문제를 절묘하게 그려내는 시사 만화로서의 매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비빔툰』에서 정치적 주제를 다루어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단지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는 한 독자가 『마팔다』를 보면서 앞통수 뒤통수를 번갈아 때리게 되는 그 묘미만은 배웠으면 한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줄줄이 서술하지 않고 간략하게 압축하는 솜씨다. 나는 그것이 만화의 진짜 맛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뛰어난 만화가’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라 여긴다. 8칸의 만화에 100자를 쉽게 넘는 글자들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 이 만화에 익숙하고 주인공의 심리를 한 줄 한 줄 읽는 맛을 즐기는 고정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바쁜 시간을 쪼개 만화가 주는 상쾌한 피로 회복제 한 병을 느껴보려는 독자들은 그 맛에 취하기 어렵다. 나는 이번 책에서도 「느리게 사는 법」(p.32) 등처럼 대사 없이 주인공의 행동과 절묘한 상황의 배치만으로 충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작가의 훌륭한 능력을 발견한다. 스스로 보고 깨닫는 감동은 수백 자의 단어로 이해시키는 감동보다 강하다. 『비빔툰』은 착한 만화다. 착한 사람이 좋고, 착한 나라가 좋다. 착한 만화 역시 왜 나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착한 만화를 많이 보아왔다. 어린이들이 보아도 절대 생각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만화들만 그리고 보아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조금은 덜 착해야 인생이 즐겁지 않은가? 또 세상이 착하지 않은데도 억지로 착하게 그리는 것만큼 고통스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화가 홍승우 역시 잘 알 것이다. 그의 ‘네모라미’ 친구들은 참 안 착한 만화를 그렸고, 그 역시 별로 착하지 않은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탈이 단순한 젊음의 치기가 아니라, 진짜 새로운 만화를 만들어낼 씨앗이라는 점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단명했지만 잡지 『나인』에 연재되었던 홍승우의 「빅맨」은 매우 즐거운 만화였다. 거대한 머리를 지닌 아빠와 공주 같은 엄마의 괴짜 가족이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유쾌한 유머들을 만들어냈다. 홍승우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곳곳에서 솟아나왔다. 「액션 버그」와 같은 장편의 SF 만화를 향한 그의 꿈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좋은 때를 만나지 못했고, 아직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빔툰」을 그리는 것이 아무리 즐겁고, 그의 가족과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이 아무리 행복해도, 그 꿈은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허락도 없이 빼꼼히 문을 여는 20대의 정보통처럼, 20대의 홍승우 역시 제법 자리잡은 만화가 홍승우의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가끔은 아이들과 부인은 버려두고 다시 20대처럼 뛰어놀아도 되지 않을까? 이제 30대의 경륜으로 더 멋들어지게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좥비빔툰좦의 아이들이 꼼지락대며 만드는 상상 속의 괴물과 신기한 존재들이 그 싹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을 따라 놀이동산에 가는 것과, 진짜 어른으로서 모험을 떠나는 것은 다르다.
-만화비평가
유진이를 키우면서 짜증나고 힘들고 싫어질 때면 다운이랑 겨운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
팍팍 했던 마음이 밥에 만 물처럼 부드럽게 퍼지면서 도끼눈 뜨고 바라보던 딸 얼굴을 천사 보듯 보게 된다.
아… 활미씨에게 다운이랑 겨운이가 있듯 내겐 유진이가 있구나.
반쪽이네 가족을 보면서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의 부족함과 무능력을 되새기게 되어 화도 나고 씁쓸했었는데….
우리 부부가 다운이, 겨운이의 팬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우리 유진이를 볼 수 있어서 일게다.
다운이, 겨운이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