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대산세계문학총서 008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유숙자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1년 9월 24일 | ISBN 9788932012797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90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작품 소개]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소설의 백미, 국내 처음 번역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물음을 던지는 20세기 일본 문학의 고전

[옮긴이 해설:인간 존재에 깃든 에고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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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와 더불어 메이지(明治) 시대가 낳은 걸출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오가이는 도쿄(東京) 대학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을 거치며 번역, 평론 활동에서 출발하여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역사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그의 문학은 동서 문화에 대한 높은 지성과 교양을 바탕으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격조 높은 문체로 근대 일본 문학의 한 흐름을 이루었다. 또한 소세키는 도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 머무르며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거의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본격적인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으며 영문학자이기도 했다. 동양적 윤리성과 서양 문학에서 습득한 고도의 지성이 밴 그의 문학은 인간 존재에 깃든 에고이즘의 탐구라는 근대적 테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처럼 외국 유학을 경험하고 풍부한 교양과 예리한 비판 정신, 이지적인 태도를 공유한 오가이와 소세키의 문학은 1900년대 초반 일본 문단에 유행하던 자연주의 문학─적나라한 자기 고백과 현실 폭로,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일본적’ 자연주의 문학은 이후 사소설(私小說)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의 모태가 된다─경향 밖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취해, 흔히 ‘고답파(高踏派)’‘여유파(餘裕派)’라고 불렸다. 한편 소세키는 데뷔작 이래, 자신의 체험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설의 소재로 삼은 작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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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는 1867년, 에도(江戶, 현재의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 치에(千枝)는 후처였고, 소세키의 출생은 그리 축복받지 못했다. 두 살 때 소세키는 시오하라(e原昌之介)와 야스 부부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열 살에는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가(家)로 돌아왔다. 한학을 중시하는 니쇼가쿠샤(二松學舍)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 예비문 예과에서 공부한 다음,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을 때가 스물네 살이었다. 이 무렵부터 그의 염세적인 기분이 엿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 동안 친어머니의 죽음과 연이은 두 형들의 폐병으로 인한 죽음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가 사모했다는 셋째형의 부인인 도세(登世)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요절했을 때, 소세키는 이를 슬퍼하며 애도의 시를 썼다. 대학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감기가 초기 폐병으로 진단되어, 그의 염세적 기분도 짙어졌다. 소세키는 마쓰야마(松山) 중학교 교사로 직장을 얻고 교코(鏡子)와 결혼했으나, 부인 교코는 히스테리로 강에 투신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부성이 ‘영어 연구를 위해 2년간 영국 유학을 명한다’라는 사령을 내린 건 1900년, 작가의 나이 서른넷이었다. 일단 거절했으나 달리 고사할 만한 이유가 없어 승낙의 뜻을 전한 소세키는 연구 제목인 ‘영어 연구’가 영문학 연구로도 변경의 여지가 있음을 확인한 다음, 유학을 결심했다. 런던에서의 유학 생활은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도 쓸쓸하고 깊은 고독을 심어주었다. 서양과 일본의 격차를 확인하면서 아울러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시각이 키워졌다. 『문학론』 저술을 위해 공부에 몰두하는 동안 소세키의 신경쇠약이 날로 악화되어 급기야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일본으로 전해지기에 이르렀다. 학창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벗,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 1902, 하이쿠 시인으로 『호토토기스(두견새)』라는 하이쿠 잡지를 창간. 여기에 소세키의 처녀작이 실렸다)의 부음은 귀국을 앞둔 소세키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귀국한 소세키는 제일고등학교와 도쿄 대학 영문과 강사로서 각각 영어와 영문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그의 ‘영문학 개설’강의는 전임자였던 라프카디오 한(小泉八雲, 일본에 귀화)의 감상적이고 정서적인 강의에 비해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탓에 학생들의 불평이 많았다. ‘문학론’ 강의에서도 학생들의 평판이 좋지 않아, 소세키는 강의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교직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신경쇠약으로 아내와의 불화가 쌓이고 별거하는 처지였으나, 영시(英詩) 「Silence」 「Dawn of Creation」 등을 썼고, 대학에서의 셰익스피어 작품 강독이 큰 인기를 얻었다. 문학 평론과 영시 번역, 강의와 강연, 시 창작(한시, 하이쿠, 영시) 등을 병행하던 소세키는 점차 창작욕이 높아짐에 따라,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 1874~1959, 하이쿠 시인・소설가)의 권유로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1905년(39세)에 『나는 고양이로다(吾輩は猫である)』(상편)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초판은 20일 만에 매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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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로 시작되는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는 고양이인 ‘나’의 눈에 비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비평하는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넘치는 유머와 풍자는 이 작품을 읽는 재미인 동시에 힘이다. 처녀작의 성공에 힘입어 소세키는 『도련님(坊っちゃん)』(1907), 『풀베개(草枕)』(1907)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갔다. “메이지 유신의 지사(志士) 같은 열렬한 정신으로 문학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다망한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가 아사히(朝日) 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수직을 그만둔 것은 마흔한 살 때였다. 이로써 학자 소세키에서 작가 소세키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그의 소설들은 모두 『아사히 신문』에 발표되었다. 입사 첫 작품으로 『양귀비(虞美人草)』(1908)를 비롯해 『산시로(三四郞)』(1909), 『그후(それから)』(1910), 『문(門)』(1911)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온 소세키는 위궤양을 앓아 전지 요양을 떠났다. 슈젠지(修善寺) 온천에서 그의 병세는 악화되어 발작과 다량의 토혈로 혼수 상태에 빠져 위독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후 그는 병의 재발로 자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더구나 어린 딸 히나코(雛子)의 죽음은 작가에게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남겼다. 서예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는 취미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주 고독감에 젖는 일이 많았다. 소설 『행인(行人)』의 연재가 시작된 것이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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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은 1912년 12월 6일부터 1913년 4월 7일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다가 작가의 건강 악화로 인해 중단된 후 다시 9월 16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연재되어 완성한 작품이다. 「벗」 「형(兄)」 「돌아와서」 「번뇌(煩惱)」라는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이 장편의 매력은 화자인 나가노 지로(長野二郞)와 그의 형인 이치로(一郞), 형수인 오나오(お直)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인간 심리와 감정의 추이가 예리하고 심도 있는 묘사로 전개된다는 점에 있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대학 교수로, 학문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이치로이다. 그는 비록 따뜻한 정은 부족해도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자랑스러운 장남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자기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스스로 타인과의 깊은 관계 단절을 초래하고 만다. 소설의 긴장감은 이치로가 자신의 아내와 남동생 지로와의 관계를 의심하여, 마침내 아내의 정절을 시험해보기로 결심하는 데서 정점을 이룬다. 그러나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보기 위해 이치로가 생각해낸 방법이란, 다름아닌 지로에게 아내와의 여행을 권유하고 동생으로 하여금 아내의 태도를 보고하게 하는 것이었다.“형수의 정조를 시험하다니,―관두는 게 좋겠습니다.”“어째서?”“어째서라뇨, 너무 바보 같지 않습니까?”“바보 같다니, 뭐가?”“바보 같지 않을진 몰라도,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필요가 있으니까 부탁하는 거다.”[……]“시험하다니, 어떻게 해야 시험당하는 겁니까?”“너와 나오, 두 사람이 와카야마로 가서 하룻밤 묵기만 하면 돼.”“말도 안 돼” 하고 나는 한마디로 뿌리쳤다. 그러자 이번엔 형이 침묵했다. 물론 나도 말이 없었다. 바다로 내리꽂히는 석양빛이 점차 엷어짐에 따라 얼마 남지 않은 열을 불그레 먼 저편으로 한층 길게 늘어뜨렸다.“싫으냐?” 하고 형이 물었다.“예,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그것만은 싫습니다” 하고 나는 분명히 단언했다.“그렇다면 부탁하지 않겠다. 대신, 난 평생 널 의심하겠다.”(pp. 129~30)굳이 지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결코 정상적인 경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형의 강요하다시피 한 부탁에 못 이겨 겨우 당일 여행으로 절충을 한 지로가 형수를 데리고 떠난 와카야마에서, 두 사람은 예기치 않게 태풍을 만나게 되고 결국 형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고 만다. 한번 품기 시작한 아내에 대한 이치로의 불신은 “형수님의 인격에는 의심하실 만한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라는 지로의 보고에 만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아내뿐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 가족 전체로까지 확대되고 자신을 더욱 고립된 상황으로 내몰게 된다. 마침내 이치로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정신적 이상을 나타내게 되고 고독만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로 남는다. 고독과 절망의 심연에서 이치로는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죽느냐, 미치광이가 되느냐, 아니면 종교를 얻느냐. 내 앞엔 이 세 가지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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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행인』은 등장인물을 통해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첫번째는 「벗」에서 미사와가 지로에게 들려주는 미치광이 ‘따님’ 이야기이다. 한 번 시집 간 적이 있는 ‘따님’은 정신이 이상해져 미사와를 남편에게 대하듯 외출할 때마다 간절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따님’이 정말로 미사와를 좋아했는지, 정신 이상으로 남편인 줄 착각한 것인지 그 본심은 알 길이 없다. 두번째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맹인’ 여자의 이야기이다. 여자는 20여 년이 지나도록 예전의 남자가 자신과의 결혼 약속을 깬 원인이 무엇이었는가를 궁금해하며 가슴속에 묻어왔다. 타인의 속내를 알지 못해 발버둥치는 이치로는 맹인 여자의 심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지로 역시 자신에 대한 형의 마음을 알고 싶어,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난 H씨로 하여금 자세한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행인』은 결혼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소설 첫장부터 식모살이를 하는 오사다의 결혼을 둘러싼 상황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오카다 부부, 형 부부 등 이미 결혼한 사람들과 친구인 미사와의 결혼이 성사되는 내막, 여동생 오시게와 지로의 결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 등이 동시에 전개된다. 결혼한 오사다는 이미 남편으로 인해 스포일spoil되고 말았다는 이치로의 말은 결국 아내인 나오와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과 불신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소세키에게 런던 유학은 이국의 낯선 분위기에 맞서 홀로 독신 아파트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씨름하며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교코가 쓸쓸한 남편에게 다정한 편지를 자주 보내주지 않아, 소세키는 거의 고립되다시피 한 자신의 처지에서 사랑의 한계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소세키가 쓴 영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We live in different worlds, you and I.Try what means you will,We cannot meet, you and I.You live in your world and are happy;I in mine and am contented.Then let us understand betterNot to interfere with each other lot.〔……〕Flowers may there be; and lots of things pretty,Yet never in a dream I wished to be there.For I am here and not there;And I am forever mine and not yours!(April, 1904. 무제)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너와 나는.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해, 우리는 일치할 수가 없어, 너와 나는. 너는 자신의 세계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나도 자신의 세계에 만족해. 그러니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잘 이해해야 할 것 아닌가.〔……〕거기엔 꽃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름다운 게 많이 있겠지. 그러나 꿈속에서조차 나는 거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나의 장소는 여기이지 거기가 아니니까,그리고 나는 영원히 나 자신일 뿐 너의 것이 아니니까!─에토 준(江藤 淳), 『소세키와 그 시대』(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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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는 사랑의 한계를 체득하고 자아의 주장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행인』은 그러한 인물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마음을 얼마만큼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니며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한, 아무도 정확한 대답을 내릴 수 없는 게 아닌가.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라 하더라도 단지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데 불과한 건 아닌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 자기 긍정적인 반면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의하는 내향적인 인물 이치로에게,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필요한 신앙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자신이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자살 아니면 광기.『행인』에 이어 연재된 소설 『마음』(1914)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다 고독감에 못 이겨 자살을 택하는 인물이 그려진다. 자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죽음밖에 없다. 이들이 직면한 실존적 불안과 고뇌는 그대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초상일 수도 있다. 소세키는 이후 자전적 작품인 『노방초(道草)』(1915)를 거쳐 ‘칙천거사(則天去私)’―‘나’(에고)를 하늘의 뜻에 맡기고 추구하려는 인생 태도―라는 심경에 도달함으로써 이를 장편 『명암(明暗)』(1916)에서 시도했으나 작가의 죽음으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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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초기의 『나는 고양이로다』 『도련님』 같은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미 작가 자신, 한 작품의 제목을 『마음』이라 한 바 있지만 어쩌면 『행인』에도 똑같은 제목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소세키의 작품은 고독하고 우울한 인텔리의 어두운 표정을 연상시키며 그 표정은 다시 런던의 쓸쓸한 하숙방에 홀로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과 중첩되기도 한다. 자발적 의지라기보다 관(官)의 지시에 묵묵히 응했을 뿐인 그가 접한 런던의 현실은 바야흐로 세기말의 분위기를 띤 삭막하고 살풍경한 것이었다.“……(런던은) 대개 풍류 없는 사물과 인간들뿐으로 우아한 정취는 찾아볼 수 없어, 문명이 이러한 것이라면 차라리 야만적인 상태가 흥미롭습니다. 철도 소리, 기차 연기, 마차의 울림, 뇌에 병이 있는 자는 런던에서 하루도 지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돌아가는 제일의 즐거움은 메밀국수를 먹고, 일본 쌀을 먹고, 일본 옷을 입고 양지바른 툇마루에 드러누워 마당을 내다보는 것. 이것이 소원입니다.”─1902년 4월 17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소세키의 문명 비판은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행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은 일찍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 인력거에서 마차, 마차에서 기차, 기차에서 자동차, 그 다음엔 비행선, 그 다음엔 비행기,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라는 이치로의 고백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문명의 발달에 의한 전통의 상실과 정신적 황폐함에 대한 경계를 내비친다. 『행인』의 이치로가 안고 있는 문제는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을 내포한 채, 여전히 새롭고 절실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여기에서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문제 작가로 거론되고 재조명되는 소세키 문학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목차

벗/9
형/78
돌아와서/175
번뇌/261

옮긴이 해설: 인간 존재에 깃든 에고이즘/372

작가 연보/385
기획의 말/389

작가 소개

나쓰메 소세키 지음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도쿄(東京)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 머물며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소세키는 도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를 발표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거의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다망한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 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후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구메 마사오 등의 일본 작가들에게 그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6년 소설 「명암」을 연재하던 중 위궤양 악화로 숨을 거두었다. 소세키의 대표작으로는 『행인』을 비롯, 『나는 고양이로다(吾輩は猫である)』 『도련님(坊っちゃん)』 『산시로(三四郞)』 『그후(それから)』 『문(門)』 『마음(こころ)』 『명암(明暗)』(미완) 등이 있다. 특히 『행인』에서 그는 동양적 윤리성과 서양 문학에서 습득한 고도의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에 깃들인 에고이즘의 추구라는 근대적 테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유숙자 옮김

번역가.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재일한인문학』(공저), 옮긴 책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명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만년』 『옛이야기』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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