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다시 보는 김병익의 『한국 문단사』
:한국 문단의 판도를 그려왔던 문단 주역들의 생생한 기록
1967년 『사상계』에 「문단의 세대연대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1968년 ‘68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펼쳐온, 평론가 김병익의 『한국 문단사』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1973년 일지사에서 초간된 『한국 문단사』는 28년이 지난 후에도 구입을 요청하는 독자들이 있어, 절판된 이 책을 새로 판을 짜고 한자 표기를 한글로 바꾸며 약간의 오류를 고쳐 다시 출간하게 된 것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내면의 비극을 엿볼 수 있었던 필자의 체험이 이 책 『한국 문단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한국 문단사』를 내면서
:이 책은 1973년 일지사에서 간행된 『한국 문단사』를 새로 판을 짜고 한자 표기를 한글로 바꾸며 약간의 오류를 고쳐 다시 내는 것이다. 한 세대 전, 젊음의 열기 속에서 씌어진 이 책의 교정을 보면서, 그리고 이제 재판을 상자할 준비를 하면서 내 심정에는 감회가 어려 있기보다 오히려 개운치 않은 그 무엇이 잠겨 있다.
우선 1908년의 신문학 형성부터 시작된 이 문단사는 이 글이 마치는 1970년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나는 기왕 재판을 낼 것이라면 1970년 이후의 문단사를 추가하고 보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권고를 더러 들어왔다. 사실 동아일보 문화부에 재직하며 신문에 연재한 이 글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의 한 세대 동안 가혹한 유신과 신군부 시절에 겪은 고난, 그리고 민주화 과정 중에 우리 문단과 문학, 작가와 출판인들이 치러야 했던 일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와 해방과 전쟁의 그 고통스러웠던 시절 못지않게 치열하고 험난했으며 극적이고 모험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이 시절의 문단사를 정리해보라는 권고에 상당히 유혹되었지만 그러나 이럴 생각이 들 때에는 이미 취재의 현장으로부터 물러나 있었고 그것을 정리할 의욕과 힘을 추스를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 필요한 작업은 어느 다른 분이 맡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희망으로 나의 책임을 나는 회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재판본이 나를 개운치 않게 만든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마도 이 책에 상당히 많은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그럴 엄두를 버려야 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근@현대 문학사에 관해 숱하게 많은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고 보다 깊은 연구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며 진보적인 해석들이 적극적으로 개진되었는데 이 책은 1970년 이전의 자료들에 의존했기에, 더구나 유신 체제하의 반공주의 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점에서 한계와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문학론과 북한 문학에 대한 서술이 우선 그렇다. 그러나 이 한계와 약점을 수정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새로이,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정력과 의지가 닳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 작업 역시 다른 분에게로 넘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새삼 다시 내는 것은 ‘문지스펙트럼’의 편집자가 끈질기에 요청하기도 하고 더러 절판된 이 책을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문의를 받기도 해서이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개인적 애정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이 『한국 문단사』는 문학 담당 기자로서,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대해 아프게 고민하며 싸우던 작은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30대 시절의 열정의 소산이다. 그때의 나는 식민지 시대의 우리 문단과 문학인을 이야기하면서 유신 권력의 감시와 탄압으로 시달리는 70년대의 우리 문학과 언론의 지적 정황을 드러내려 했고 일제하의 저항과 혹은 훼절을 말함으로써 우리 지식인들의 저항을 격려하고 훼절을 고발하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문장의 행간을 읽고 종이의 뒷장을 보기를 바란 나의 숨은 소망은 지금 와서도 대견하게 회고되는 것이다.
더구나, 내 개인적으로는 이 문단사를 연재하면서 한국 문학사를 나름대로 공부했고 무엇보다 우리 근대 문학의 초창기 문학인들의 고통스러운 생애와 문학을 향한 정열을 배우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본문의 「에필로그」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그분들의 수난을 통해 상처받은 인간들과 내면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잘못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었으며 개인과 집단의 역사가 빚는 가혹한 시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바라봄을 열어놓고 나의 생각함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이 책이 내 개인 저작으로는 첫 책이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고마움은 이 책을 쓰는 동안 얻어진 인식과 사유의 이 같은 넓혀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래서 나의 반성적 태도가 다소나마 일구어진 것도 지금도 가끔 들쳐보는 이 책을 통해 고통스러운 역사를 다시 대면하게 되는 덕분이다.
찜찜해하면서도, 그래서 조판해놓고도 1년 가까이 교정보기를 미루어온 이 책을 이제라도 재판이란 이름으로 다시 간행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세대 전에 씌어진, 그래서 낡아버린 이 책을 혹 읽는 분이 있다면 그 많은 미흡함, 잘못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정황으로 이 책을 썼구나라고 이해하며 거기서 선배 문학인들의 수난의 궤적과 열정의 소산을 찾아내 보아준다면 더 이상의 기쁨이 없겠다.
이 책이 나올 때만 해도 그 당시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지만 근 30년이 흐르고 보니 그만큼의 시차가 생겨버려, 책의 원 제목에 ‘1908∼1970’을 추가했다. 원래의 책에는 우리말로 읽었던 일본의 고유명사들을 일본어 발음 표기로 고쳤는데 그 수고를 해준 인하대의 사나다 히로코(眞田博子) 박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한더위 속에 이 책을 만드느라고 수고가 많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에도 이제는 마땅히 고마움의 인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2001년 여름
김병익
[후기]
이 책이 신문에 연재되고 책으로 꾸며지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박종화(朴鍾和)·김팔봉(金八峰)·방인근(方仁根)·이헌구(李軒求)·안수길(安壽吉)·윤석중(尹石重) 선생 등을 비롯한 여러 원로 문인들은 노구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짬을 내주어 자상한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이하윤(異河潤)·김종삼(金宗三)·박화목(朴和穆)·고은(高銀) 등 선배 문인들은 글로 혹은 말로 격려와 함께 몇몇 곳의 오류를 친절히 고쳐주셨다. 또한 김윤식(金允植) 교수는 아낌없이 방대한 자료를 빌려주셨으며, 김현씨는 중요한 부분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다. 동아일보 조사부의 최일남(崔一男) 부장과 임응숙(林應淑) 여사는 여러 문헌과 특히 사진 자료를 찾아주는 노고를 베풀어 주셨다.
무엇보다 본고가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일보 이석열(李錫烈) 문화부장의 덕택이었다. 이부장은 거의 강압적으로 주저하는 필자에게 이 연재 기획을 권했고 원고를 일일이 검토해주었으며, 권영자(權英子) 차장 및 주위 동료들과 함께 격려와 편의를 동시에 제공해주셨다. 그리고, 탈고한 뒤의 안타까운 자괴감을 꺾고 단행본으로 출판을 맡아주신 일지사 김성재(金聖哉) 사장과 유달리 귀찮은 편집 일을 맡아 수고하신 이기웅(李起雄) 선생의 후의와 배려가 없었으면 졸고는 신문 연재로 끝났을 것임이 분명하다. 서두의 사진 및 권말(卷末)의 연보에서 편집 혹은 자료상의 문제 때문에 많은 작가, 작품이 빠졌다. 여기에 수록 또는 누락된 것이 작가, 작품의 문학적 평가와는 관계없음을 밝혀둔다.
부록의 문단사 연보 작성을 위해 무거운 몸으로 애써준 아내와 함께 이 많은 분들에게 거듭 감사한 마음을 바치며 후기로 인사를 대신한다.
1973년 10월
김병익
[차례]
다시 『한국 문단사』를 내면서
초판 서문
I. 싹트는 신문학 운동
육당과 최초의 신체시
2인 문단 시대
춘원과 첫 장편 『무정』
춘원과 허영숙
II. 열기로 다지는 저항 문단
『창조』의 출현
요한의 「불노리」
동인의 문학열
『폐허』파의 등장
동인과 상섭
횡보 염상섭
공초와 수주
안서의 시집열
『백조』의 낭만
빙허와 상화
제1기 여류 문인들
소파와 아동 문학
초기 신극 운동
동인 시대의 극복
종합지 『개벽』과 문예지 『조선문단』
잡지 경영과 원고료
검열과 필화
신인 선발 제도의 성립
표절과 도작
작가 기자의 활약
신문 연재 소설
호와 필명의 애용
술 권하는 사회
신여성과 기생
문화병과 빈곤병
소월 김정식
만해 한용운
서해 최학송
III. 그늘 속에 난숙하는 현대 문학
프로 문학 동맹 결성
소설 건축설 논쟁
카프의 내분과 논쟁
민족주의 문학 운동
해외 문학파의 활동
용아와 영랑
카프의 해산과 전향
30년대 전반의 문인들
풍자 정신의 채만식
제2기 여류 문인들
좌절의 문학과 카페 걸
박제된 천재 이상
한 속에 산 김유정
찬란한 35년대
『문장』과 『인문평론』
IV. 시련과 격동의 소용돌이
친일 문학과 어용 단체
춘원의 변절 행위
춘원 훼절의 여운
식민지 문학의 일본 진출
간도의 망명 문단
불굴의 문인들
좌우익 문단의 대결
모국어 문학의 부활
분단 문단의 비극
문단의 안정과 문예지 창간
V. 열린 시대의 문학을 향해
6?5와 전시 문단
실의에 젖은 피난 문단
전후 세태를 반영한 사건들
폐허에서 풍요로
와해되는 북한 문단
해외로 뻗는 한국 문학
에필로그: 한국의 문학인들이 걸어온 길
한국 문단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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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