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이 책은 작가 윤후명이 『여우 사냥』(문학과지성사, 1997)이후 4년 만에 묶는 첫 소설집이다. 소설집이라고는 하나 「외뿔 짐승」과 「가장 멀리 있는 나」라는 두 개의 지붕 아래 각각 5편,7편의 글들이 작가의 “‘나’의 본질 찾아 가기”라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남아와 남미, 한국의 산골짜기를 동시에 펼쳐보이는 작가의 어지러운 행각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실감을 잃게 만드는 듯 하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자 화자이기도 한‘나’의 풀어헤쳐진 내면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윤후명식의 독특한 어법과 그림 퍼즐을 맞추는 듯한 여정의 황홀함에 취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역병(疫病)”처럼 따라다니는 화자의 혼란스런 내면(그림자)은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산모퉁이 길을 돌아”나온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환상임을 깨닫게 된다.
[해설]
환각과 울림의 공명관
─협궤열차 윤후명의 헤매기와 그 벗어나기론 (김윤식|서울대 국문과 교수)
1. 자기 얘기를 자기 얘기로 쓰는 작가
(객) 작품을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소설을 대할 적마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독자도 있겠는데, 저도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무슨 묘수가 있을까요. 혹은 이런 물음 자체에 모종의 결함이 잠복해 있는지요.
(주) 어찌 물음 자체에 결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다른 범주들도 있지 않을까요. 이해의 범주에 앞서 혹은 나란히 느낌의 범주가 있는가 하면 기호의 범주라든가 마주침의 범주도 있을 터입니다.
(객) 어느 범주에 서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맞습니까.
(주) 그쪽에서 먼저 ‘작품’이라 했고, 방금 또 ‘작품’의 운명이라 했지 않습니까. ‘작품’이라 했을 땐, 한 가지 범주, 곧 작가를 전제로 한 것이지요. 따라서 먼저 작가를 알 필요가 있다, 혹은 작가를 전제로 하여 작품에 접근하게 되겠지요. 저작권법에 명시됐듯 작품이란 작가의 소유이지요. 작품에 대한 해석이란 원리적으로는 단 한 가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성질의 것이 못 됩니다.
(객) 그러니까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이겠는데, 따지고 보면 그 범주란 일종의 환상이 아닐까요. 작가의 의도라고 하나, 그것은 다분히 ‘의식’의 범주이겠는데, 이에 견주어 그는 방대한 ‘무의식’을 동시에 안고 창작에 임했던 것이겠고, 구식으로 말해 영감이라 불렀던 것이지요. 분석 불가능한 이 창작의 영역이기에 ‘작가=천재=신’의 도식이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대전제로는 작가의 권위를 승인함 이후의 논의이지요.
(주) 이런 신비주의적 성향도 프로이트 일파에 의해, 상당한 수준에서 논리적으로 분석되었으며, 심지어 집단 무의식조차 밝혀진 마당 아닙니까. 많은 인접 학문의 성과로 ‘작가=작품’의 관계가 상당한 수준에서 정밀도가 확보되었음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작가’의 범주란, 원리적으로는 작가의 해명에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될 터. 막다른 골목이랄까, 폐쇄적 상황이 놓여 있습니다.
(객) 작품을 텍스트의 범주, 곧 기호론의 범주에서 해명할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일단 그 기호가 해독되면, 원리적으로는, 모든 것은 끝나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그 원리적이란, 너무 저급한 단계를 가리킴이 아닐까요. 작품이 작가로 환원되고 기호가 해독된다고는 하나, 잘 따져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겠지요.
(주) 좋은 지적입니다. 작품이란, 복잡한 공간성, 이질적인 물질성이 함께 뒤엉켜 있는 물건이라서 우리가 만나는 하나의 장소인지도 모르지요. 작가론으로도 구조론으로도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유동하는 존재로서의 물건(엄밀히는 모종의 구조물)이란, 그러니까 ‘나’(독자)가 만나는 장소가 아닐 것인가. 이런 만남이란, 일종의 사건성이 아닐 수 없지요. ‘나’가 작품을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그 변화에 대해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기에 일종의 우연성이 아닐 수 없지요. 사건성이기에 그 다음 장면은,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기 어렵지요. 쉽게 말해 독자가 작품에 접할 때 작가(표현자)가 쓴 언어가 독자의 의식 속에 들어가 의미가 생성되며, 이때 독자의 의식 속에 있는 언어가 작가가 구성한 작품이라는 장소에 마주칩니다. 그때 시공 연속체로서의 그 장소에 한순간 뒤틀림이 일어납니다. 이를 사건성(우연성)이라 부릅니다. 읽는 행위란 작품이든 아니든 모두 이러한 사건성의 일종이 아닐 수 없지요. 작품이란 이 점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 하겠지요.
(객) 작품으로서의 문학, 텍스트로서의 문학, 사건성으로서의 문학 등의 범주 설정이 가능하다고 들뢰즈를 비롯한 이론가들이 떠들고 있긴 하나, 선생도 그런 어설픈 흉내를 내고 있지만, 물론 각각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식의 논의란 결국은 모든 것의 기원(현존)의 불투명함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런 점은 좀더 음미해볼 만한데요.
(주) 그 방편의 하나로 윤후명씨의 이번 창작집 『가장 멀리 있는 나』를 검토해볼 수 없을까요. 만일 작가를 (A)남의 얘기를 자기 얘기처럼 쓰는 작가, (B)자기 얘기를 남의 얘기처럼 쓰는 작가, (C)자기 얘기를 자기 얘기처럼 쓰는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작가는 (A)거나 (B)에 속하며, 좀 특이한 유형인 (C)범주에 작가 박완서씨가 해당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D)자기 얘기를 ‘자기 얘기로’ 쓰는 작가로는, 윤후명씨가 특이하고도 뚜렷합니다. 작가에로 환원될 가능성이 담뿍 담긴 작품 유형의 존재 방식, 이를 음미함이겠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이 대화는 잘만 하면, 한편으로는 모종의 작품의 존재 방식에 대한 논의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윤후명론일 수도 있을 법하지 않겠습니까.
(객) 자기 얘기를 자기 얘기‘로’ 쓴다 함은 그러니까 ‘처럼’ 쓴다의 범주와는 조금 다른 유형이겠는데요, 그렇다면 금방 오해가 생길 법하지 않습니까. ‘자전소설’과는 어떻게 다른가. 또는 ‘사소설’과는 어떠할까. 전기와 소설, 자서전과 자전소설 등이 각각 대응되겠는데요. 선생은 그러니까 윤후명을 논함으로써 윤후명론도 얻어내고, 나아가 모종의 소설 유형론도 얻어낼 수 없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그려. 일석이조 말입니다.
(주) 과욕이겠지만, 그런 꿈은 가져볼 법하지 않겠소.
2. 자멸파의 계보
(객) 작품이란 원리적으로는, 작가에로 환원되며 그것으로 끝난다는 명제에 닿기 위해서라면 그 작가에 대한 철저한 탐색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겠지요. 윤후명은 1946년 강릉에서 태어났고, 연세대 철학과를 나왔고, 1967년에 시인으로 출발, 시집 『명궁』(1977)을 냈고,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한 것은 1979년입니다. 시집까지 낸 윤씨가 소설로 전환, 「돈황의 사랑」(1982),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1983), 「누란」(1984), 「투구게」(1984)를 발표했습니다. 곧바로 창작집 『돈황의 사랑』(1983)이 간행됐지요. 그때도 선생은 월평에서 여러 가지 지적을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미지 소설이라든가, 울림의 소설이라든가, 서사 구조의 빈약이라든가, 그럼에도 「돈황의 사랑」과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를 고평했더군요.
(주) 두 작품의 구성 방식이 80년대 이 나라 문학판에서는 낯선 것으로 회고됩니다. ‘사람은 벌레가 아니다’의 명제가 직접성으로 감지되는 문학판에서 아득한 땅 돈황이라든가 별들의 음악을 엿듣기란, 누가 보아도 시대착오스럽지 않았던가. 전자는 아득한 환각(이미지)이고, 후자는 울림이었던 것. 허황하기 짝이 없는 환각, 시원을 알 수 없는 ‘울림’이란 그 자체로는 비산문적이고 따라서 매우 낯설었지만 그것이 닿아 있는 곳은 의외로 확실한 것(현실적)이었지요.
(객) 비유를 하자면 아이들 손에 쥐어진 풍선이 울긋불긋하고 또 공중에 둥둥 떠 있어 실끈을 놓치기만 하면 금세 허공으로 가뭇없이 날아갈 형국인데도 끝내 그 풍선은 아이 손에서 떠나지 않은 형국이겠는데요. 아이 손에 쥐어진 실끈이 의외로 질긴 까닭이 아니었을까요.
(주) 맞습니다. 가뭇없는 이미지나 시원 모를 울림이 허황하고 아득함에 비례하여 증대되는 것은 실끈이 갖고 있는 힘, 곧 끈질김입니다. 이 실끈이 지닌 끈질김이란 누에의 실처럼 가뭇없이 연약하고 아득해 보이긴 하지만 어떤 쇠줄이거나 바위보다 강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방식의 창작 방법이 작가 윤씨의 고유성이었던 것.
(객) 그러니까 윤후명식 어법(語法)의 발견이라 할 만하겠는데요? 그렇다면 그 실끈의 긴장력을 가져오는 요소, 곧 구체성을 문제삼아 보여주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주) 잠시 「돈황의 사랑」부터 볼까요. 여기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가 있습니다. 남대문에서 낡은 2인용 침대를 사와 둘이서 자야 하는 셋방살이 신세입니다. 임신.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그런 데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겠는가. 없다. 3인용 침대여야 했으니까. 2인용 침대뿐이니까. 유산시킬 수밖에. 아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을 동안, 남편은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헤맬 수밖에. 서울 시내이되 눈물 아롱아롱 서역 3만리 헤매기였던 것.
(객) 만일 수술당한 그 아이가 아들이었다면 어떠할까. 서라벌 땅에서 맨발로 걸어 당나라 장안으로 가서 공부하고, 실크로드를 건너 다섯 개의 천축국(인도)을 헤매지 않았을까. 혜초 스님이 그것. 만일 딸아이라면 어떠할까.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동쪽 벽에 새겨진 천녀상(天女像). 그것이 아닐 수 없지요. 저 실크로드에서 출발, 돈황을 거쳐온 사자들, 북청 사자 놀이로, 봉산의 탈춤(사자무)으로 이어졌을 터. 아내는 수술실에서 남편은 종로 바닥 헤매기에서 아들 딸을 꿈꾸지요. 80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꿈과 그 현실의 고달픔이 선연합니다.
(주) 소시민이라, 좋은 지적입니다. 대시민, 대서민, 대중, 좌우간 대자 붙은 것들이 많았던 시대, 아주 작은 시민의 어법이라고나 할까요.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자동차에 밀려 도시로 와서 마지막 당나귀 몰이꾼인 아비에 대한 울림이 그것. 그 ‘아비가 하늘의 별이 되어 음악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인 ‘나’는 어떠해야 할까. 울림에 귀 기울일 수밖에.
(객) 돈황이 부부 관계 곧 ‘아내’와의 문제라면, 별들이란 그러니까 ‘아비’와의 문제, 부자 관계상의 실끈이다?
(주) 부부 관계의 실끈과 부자 관계의 실끈으로 윤후명씨의 창작 방법(어법)을 양분했거니와 먼저 이 두 축 중 전자에 주목한다면 어떠할까. 윤씨 자신이 한동안 그러해왔으니까.
(객) 알만 합니다. 선생이 정식으로 쓴 윤후명론인 「자멸파의 계보」(1993)에서 윤후명의 시 「협궤열차에 관한 한 보고서」(1990)를 인용하지 않았던가요. 어째서 소설가로 변신한 윤씨가 잠시 소설을 보류하고, 어쩌자고 시로 되돌아갔던 것일까요. 이 물음을 선생은 썩 의미 깊게 읽고 있더군요.
어느 날 새벽
아니면 저녁
협궤열차에 흔들리는 삶
꼭 유령 같다니까 아니 강시같이
웃긴다니까
저놈의 열차는
금방 무덤에서 나온 듯
도시에 나타나 어 저게 저게 하는 동안
뒤뚱뒤뚱 아마 고대 공룡전(恐龍展)으로 사라진다니까
거뮈튀튀한 몸통뼈 안에 그러나
흔들리는 삶
아직 살아서 뒤척이는 꿈
날품팔이 아낙네의 질긴 사랑
나도 그래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세상이 무너지도록 사랑해야
살아 있음의 질긴 몸뚱이들을
(「협궤열차에 관한 한 보고서」, 『현대소설』, 1990년 봄호, 1992년 시집에서 소설 「협궤열차」로 개작)
이 시를 두고 선생은 조금 흥분해 있었지요. 그대로 옮겨볼까요.
“『명궁』이란 그의 시집 속에 담긴 종자가 발아하여 서역 3만리, 눈물 아롱아롱하는 그곳의 하얀 꽃으로 피어오른 것이 돈황의 사랑이고 또 누란(樓蘭)의 사랑이었다. 밤이면 모래가 소릴 내어 운다는 명사산, 거기에 10년에 한 번 비가 오고, 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에 양파꽃이 핀다. 언제 시들지 모르는 꽃. 호선무를 추는 선녀들이 살고 있다. 막고굴 속엔 화려한 나라가 펼쳐져 있다. [……] 환각이 그에게 실체로 다가온 것은 80년대 그의 삶에서 말미암지 않았을까. 그는 서해안 아득히 뻗어 붉게 피어 있는 나문재 빛깔의 황홀경에 빠져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그대로 누란이고 돈황이었다”(졸저, 「작가와의 대화」, 『문학동네』, 1996, p. 214).
(주)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다만 저는 윤후명씨가 실토해놓은 다음 대목을 음미했을 따름이니까.
“그때의 그 협궤열차만큼 내 인생에 환상으로 달린 열차는 없었다. 가을에 그 작고 낡은 열차는 어차피 노을녘의 시간대를 달리게 되어 있었다. 서해안의 노을은 어두운 보랏빛으로 오래 물들어 있고 나문재의 선홍 빛깔이 황량한 갯가를 뒤덮고 있다. [……] 그것은 이 세상에는 없는 황량한 선경(仙境)이었다”(『현대소설』, 1990년 봄호).
(객) 자멸파의 계보가 김관식, 김종삼, 박용래에서 비롯되고 다만 산문에서는 윤씨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것을 선생이 그토록 부각시키고자 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제 조금 짐작이 갑니다. 부부 관계, 여자에 관한 모종의 최종적 확인이 아니겠는가. 부부로서의 여자, 그것에서 ‘이탈할 수 없음’과 ‘이탈하고자 하는 욕망’의 갈등이 일으키는 긴장의 장소야말로 ‘협궤열차스런’ 환상의 실체가 아니었던가.
(주) ……
(객) 선생은 협궤열차스러움을 자멸파로 규정함으로써 미적(美的) 실체를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작가 윤씨가 그러했으니까. 그는 현실적으로 새로운 여자 관계가 요망되었으니까. ‘협궤열차스런 여자’란 그러니까 다만 ‘흔적’으로 출몰하는 정화(淨化)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으니까. 자멸파란 그 끝에 ‘죽음’이 놓이는 법이니까. 미의 극치라고나 할까.
(주) ……
3. 환각과 울림의 공명관(共鳴管)
(객) 발레리풍으로, 바람이 분다, 이제 살아야겠다는 형국인가요? 이 점 심히 궁금합니다만.
(주) ‘환각’과 ‘울림’의 두 기둥이 윤후명씨의 출발점에 놓여 있지 않았던가. 이 점에 다시 주목하기로 합시다. ‘환각’이 협궤열차에 대응된다면, ‘울림’은 무엇에 대응되겠는가. 바로 이 물음에 작가 윤씨의 제2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객) 협궤열차란, 서해안 소금실이의 목적으로 창설된 것이니까 염전 폐쇄와 더불어 어차피 끝장난 것. 실제로 수인선(협궤열차)은 1999년 사라졌으니까. 작가 윤씨는 PD와 함께 사라지는 이 열차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지 않았던가.
“‘살아진다’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살아간다’라는 말의 수동형이 되겠다……그렇다면 ‘사라진다’라는 말은 ‘살아진다’라는 말과 어느 정도 연관을 갖는 걸까…… 나는 문득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헤어나기를 거듭한다. 이건 마치 마른하늘에 자맥질을 하고 있는 꼴이군…… 얼마나 기막힌 삶이면 살아진다고 표현되는 삶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사라진다고 말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외뿔 짐승」 3)
이것으로 끝장난 것이니까. 약간의 여운이 남는다 해도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법. 그러니까 다른 기둥인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의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맞습니까.
(주) 맞소. 이제부터는 작가 윤씨가 도맡아 우리에게 설명할 수밖에. 이 점이 즐거움이고, 이 창작집의 존재 이유가 아닐 수 없지요.
(객) 그렇소. 즐겁군요. 협궤열차에서 벗어난 윤후명, 그러니까 선생(비평가)과 저(독자)는 썩 홀가분하군요.
(주) 잠깐. 홀가분하긴 하나, ‘아주’ 홀가분할 순 없는 법. 협궤열차의 망령(데리다식으로 말하면 ‘흔적’)에서 누구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으니까.
(객) 이번 창작집이 지닌 모종의 정직성, 끈질김이겠는데요.
(주) 맞습니다. 협궤열차(여자)의 망령에 수시로 시달리면서도 안 그런 척 하기.
(A) “그날 나는 예전에 여자와 술을 마셨던 술집에 가서 홀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역시 예전에 여자와 함께 눈떴던 여관방에서 아침을 맞았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니, 때는 음력 초순, 밤에는 초승달이 뜰 날이었다”(「가장 멀리 있는 나」 1).
(B)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지방의 그 도시로 향했다. 남해 섬에서 가까운 그 도시는 A의 고향이었다. A의 죽음에 대해 들은 것은 스리랑카를 떠난 지 얼마 지나서였다. 나는 마침내 귀국 길에 올랐으나, 상당히 먼 우회로를 택하기로 했었다. 내게는 아직 모든 게 미정의 상태였다. 그러다가 A의 죽음을 듣게 되었고, 그것이 귀국을 재촉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방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새벽 5시, 옆의 여자는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퍼뜩 눈을 뜨고서도 옆에 여자가 있다는 생각은 채 못 하다가, 그랬었지, 하고 그 존재를 인식했었다. 모닝콜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새벽에 시간 맞춰 눈이 떠진 게 신기하기도 했다. 누운 채 손목시계를 집어 희미한 야광침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한겨울의 캄캄한 밤시간은 꿈속인 듯 모호하기만 한 것이었다. 옆의 여자와 간밤에 어울렸다는 사실도 그랬다. 술집에서 만났고, 새벽에 선창에 함께 나가자는 약속을 하고 그 여관에 들었었다는 사실이 뒤따라 알려져왔다”(「가장 멀리 있는 나」 5).
(C) “나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빠져나갈 궁리부터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용문산에서 나를 불러냈을 때부터 ‘그것도……’ 하고 망설였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순간 나는 퍼뜩 한 그루의 나무를 기억 속에서 되살려냈던 것이다. 그렇지, 나무가 있었어, 나무가”(「외뿔 짐승」 1).
여기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러니까 ‘A’로 표기되거니와 그 연장선상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여인들, 이는 영락없는 협궤열차스런 흔적에 해당되는 것.
(객) 협궤열차스러움에서 벗어나기가 작가 윤씨에겐 참으로 힘들었던 모양이군요.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의식(무의식)의 한쪽 기둥이었으니까. 이제 바야흐로, 그 한쪽 기둥과 결별할 시점에 이른 것이렷다. 그 문제의 A가 죽었으니까, 21세기에 접어들었으니까. 한 몸으로 두 세기(世紀) 살기의 곡예이니까.
(주) 협궤열차스런 기둥에서 벗어나기란 새삼 무엇인가. A가 죽고 없는 이 마당에 남은 한쪽 기둥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객) 음악 소리, 곧 달구지 몰이꾼으로서의 ‘아비상’에 매달리기의 영역!
(주) 이 대목이 소중합니다. ‘아비 찾기’가 그것. 아비란 무엇인가. 아비 찾기란 바로 ‘나 찾기’에 더도 덜도 아닌 것. 협궤열차를 송두리째 포기(희생)하고서야 겨우 엿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나 할까.
(객) 협궤열차가 막바로 시베리아로, 타슈켄트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모스크바로 달려갔음이란, 그러니까 아비 찾기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는 점이 이제야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우 사냥」(1993)에 이어 「하얀 배」(1995)가 윤씨에게 그해의 이상문학상을 안겨다준 바 있지 않습니까. 선생은 아마도 이 작품의 창작 동기가 ‘환상’과 ‘울림’(러시아 말의 울림, 글자의 이미지의 동시적 현상)이라 우기곤 했습니다만, 이미지와 울림의 공명관이 만들어낸 오묘한 증폭 현상이겠는데, 좌우간 협궤열차가 수인선을 떠나, 그러니까 남동, 달월, 군자, 고잔, 야목, 어천 등을 지나, 붉은 융단을 깐 듯한 갯벌의 그 나문재 꽃밭을 지나 바야흐로, 모스크바로, 타슈켄트로, 그 수도인 알마타로 달려간 형국의 더도 덜도 아닌 것.
(주) ……
(객) 그 협궤열차가 최근엔 스리랑카로 달려갔다 해도, 거기서 미당이 여인의 지독한 사랑의 상징으로 떠올린 ‘눈썹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눈썹 같은 초승달’을 보았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주) 잠깐, 왜 혼자서 흥분하시는지요?
(객) 그렇게 되었습니까?
(주) 초승달이라든가 ‘하얀 배’라든가, 이런 것들은, 문자로 쓰자면 환상(이미지)이겠고, 돈황, 누란, 천녀, 봉산 탈춤의 ‘사자무’로 이어지는 것. 그 끝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지(환상)가 그대로 ‘울림’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른바 공명관이 이루어낸 중독 현상.
(객) ‘하얀 배’가 실상 ‘아,버,지,’라는 조선말(모국어)의 울림이 아니었던가. 주인공인 교포 여인이 몽매에도 외어보던 서툰 조선말, ‘아,버,지,’가 그것.
(주) 시베리아로, 타슈켄트로 달려간 혹은 우즈베키스탄으로 간 협궤열차가 그래도 아직 조선 동포 범주의 수준에 머문 것이라면, 말을 바꾸면, 환상(이미지)의 범주에 머문 것이라면,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감이란 무엇이겠는가. ‘울림’이지요.
(객) ‘울림’이란 당나귀 몰이꾼인 아비가 듣던 그 ‘별들의 음악’이 아니겠는가.
(주) ‘가장 멀리 있는 나’란 무엇이겠는가.
(객) 알겠소. ‘아비 찾기’=‘자기 자신 찾기’의 등식이 그것.
(주) 「돈황의 사랑」에서 「가장 멀리 있는 나」에로의 전환, 거기까지 이른 과정이란 무엇인가.
(객) 이 물음 속에 이번 창작집의 의의가 있다?
(주) 그것 속에 이 창작집의 의의가 있다 함은, 곧 ‘아비 찾기’로 향함이다?
(객) 아비 찾기가 그대로 ‘나’ 찾기이다?
(주) 당초 부부 관계의 기둥인 「돈황의 사랑」이 있었다, 동시에 부자 관계인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가 있었다. 협궤열차가 전자에 비중을 두고 시베리아까지 달려갔고, 그뒤엔 심지어 스리랑카까지 갔다?
(객) 미당 어법으로 하면 초승달이 눈썹이다! 숲이 눈썹이다!
(주) 그렇지만 그것은 A가 죽은 이 마당에서는 장식음으로써의 이미지(환상)이다. 남은 것은 아비 찾기로의 ‘울림’이 아니겠는가. 이 창작집의 머리에 놓인 ‘울림’을 좀 보시라.
“스리랑카의 누와라엘리야 산굽이에서 한국의 신갈나무 숲을 생각한 것은 간밤의 월식(月蝕) 때문이라고 헤아려졌다. 누와라엘리야는 분명 스리랑카의 리틀 잉글랜드라고 불리는 산간 마을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한국의 신갈나무 숲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눈썹 같은 초승달 아래 산길을 가는 내 모습을 더듬었다”(「가장 멀리 있는 나」 1).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 잉글랜드란 갈 데 없는 울림인 것. 그것이 그대로 신갈나무(눈썹 같은 초승달)에 막바로 이어집니다. ‘아비 찾기=나 찾기’의 징조이지요. 조선 동포가 있는 타슈켄트도, 우즈베키스탄도 아니고, 그곳을 훨씬 넘어선 곳. 러시아 영토 중 인구 수십만에 지나지 않는 동부의 작은 불교(밀교) 국가 칼미크 공화국이 아니겠는가. 원초적 나라, 불국토.
(객) 협궤열차가 실로 진짜 낯선 칼미크까지 갔다? 거기서 본 것이란?
(주) 거기서 본 것은 아비였지요. 아비의 이미지, 자기 자신의 이미지.
“포플러나무 뒤로 멀리 뻗어 있는 칼미크의 길은 내 고향 길과 똑같았어. 아니. 똑같은 게 아니라, 그 길 그 자체였어. 나는 그걸 단순한 착시 현상이라고 옆으로 밀어놓을 수가 없어. 말했다시피 그건 울란콜로 가는 길이야. 체첸 땅으로는 러시아 군대가 차츰 압박해 들어간다는 보도가 있었지. 나는 옛날 그때처럼 피난을 가지 못한 채 고향에 뒤처진 것만 같았어. 물론 이제는 어머니도 없이, 나는 새하얀 고향 길을 앞에 하고 홀로 서 있었어.
[……]
그런 어느 순간이었어.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도 여겨졌어. 하지만 그건 아무려나 꿈이 아니었어. 나는 하얀 길로 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간 다음,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어. 함지박에 찐 옥수수를 수북이 담아 머리에 인 아줌마도 있었고, 천주교회 신부도 있었고, 소방서 아저씨도 있었어.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줌마들,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아저씨들, 단오장에서 그네를 타는 여자들, 씨름을 하는 남자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어머니도 있었고, 이웃집 소녀 세화도 있었어. 나는 눈을 번쩍 떳어. 고향 길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어.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디쯤에는 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띄었어. 내 생전 처음 자세히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어. 나는 소리쳤어.
아버지이!” (「가장 멀리 있는 나」 6).
(객) 아비 찾기=자신 찾기의 도식에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울림’ 쪽이 실눈썹으로서의 환상을 누르고 있었다는 사실!
(주) 요컨대, 협궤열차의 몸부림이 결국 자기 확인(아비 찾기)에로 귀착된다는 사실.
(객) 그러니까 협궤열차의 소임이 이제 바야흐로 끝장나고 있다는 사실. 「투구게」에서 「투구꽃」으로 변모되는 사실.
(주) 갯벌의 저 나문재 자줏빛이 초승달의 눈썹이었다는 사실.
4. 외뿔 짐승의 자기 한계
(객) 여기까지 이르면, 선생도 저도 조금 흥분했던가요?
(주) 그런 것 같소.
(객) 당초 수인선 협궤열차가 있었다. 소금실이 열차가 아니었던가. 그것 때문에 한 인간(작가)이 이런저런 환각에 빠져 괴로워했다. 이 환상에서 벗어나기란 무엇인가. ‘여자(소시민성)’에서 벗어나기가 아니었던가.
(주) 아비 찾기가 그것. 이 한쪽 기둥에 매달리기.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데, 아비 찾기에서도 마침내 벗어나기가 그것. 그것은 ‘동포’ 개념에서도 벗어나기. 잘만 하면 ‘나’에서도 벗어나기.
(객) 생물학적 범주. 그런 상상력의 범주. 곧 칼미크 공화국행. 거기에서 비로소 자기 확인=아비 찾기의 가능성이 열렸던 것.
(주) 아비는 6?5 때 똥통칸에서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 ‘나’는 그 아들이다! 작가 윤씨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맨얼굴스럽게 이처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몇 번이나 그 변소 구멍조차 찾지 못하고 돌아선 다음에 은연중에 간직하게 된 것은 그때 변소 구멍으로 감춰져 있던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모저모로 따져서 그럴 리는 없었다. 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저녁 무렵에 어디론가 붙잡혀 들어갈 때 그 사람은 벌써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몰래 그 모습에 아버지의 모습을 덧씌우고 있었다. 그렇게 명확한 변소 구멍조차 찾을 수 없다는 박탈감이 더욱 그쪽으로 몰아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 그 정도로 나의 전쟁을 덮어두기를 내가 원했다고 해도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환상이 필요한 사람에게 환상은 억지를 부리더라도 찾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버지는 바로 우리집 변소 구멍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그만 총에 맞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가묘에 묻혀 있는 것이다”(「가장 멀리 있는 나」 7).
(객) ‘아비 찾기=나 찾기’의 도식이 성립되었을 때, 분명해진 것은 협궤열차 콤플렉스(여자 관계, 소시민성, 동포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 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장면은 한쪽 기둥, 곧 ‘나의 정체성’ 찾기로 귀결되겠지요. 그 불가능성의 발견!
(주) 그렇소. 그것은 다시 ‘자멸파의 계보’로 환원되는 것.
(객) ‘외뿔 짐승’으로 향하기이니까. 그 끝에 신(神)이 놓이고, 끝내는 스스로 신이 되기.
(주) 정답입니다.
(객) 대체 ‘외뿔 짐승’이란 무엇이겠는가. 서양 신화에 나오는 일각수(Einhorn)가 아니겠는가. 처녀성(순결성)을 상징하는 일각수란, 릴케의 「말테의 수기」(1910)에서 참으로 오묘하게 처리된 바로 그것이 아닐까.
(주)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외뿔 짐승’이란, 그러니까 ‘자기 자신 찾기’로 나아간 중년 작가 윤씨의 내적 불안 의식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 증거로 다음 대목을 인용해볼까요.
“그녀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유령 협회의 홍보일을 보며 실속 없이 바쁘기만 했고, 나는 나대로 서울에서 허섭스레기 원고 일을 맡느라고 허덕였다. 섹스 아래서 사랑@행복@영원 따위는 상상 속의 동물처럼 모호해지더니 마침내는 섹스마저 그 동물의 눈처럼 빛을 잃어갔다. 상상의 동물은 상상력에 의해서만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을 잃자 우리는 상피병(象皮病)을 앓는 것 같은 거친 살갗으로 좁은 방에서 버텼다. 하기야 이렇게 쉽게 이별이라는 결말을 말하고 있는 내가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므로 앞에서 나는 그 만남을 간단히 암시만 하고 넘어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돌 속에 뜨는 무지개’라는 카페에 가서 마지막 말들을 나누었다”(「외뿔 짐승」 5).
(객) ‘나’란 무엇인가. 이 물음이 마지막 울림이라는 것. 일각수란 새삼 무엇인가. ‘돌 속에 뜨는 무지개’라든가, ‘공룡의 발자국’이라든가 또 뭐라든가, 좌우간 ‘고대’에로의 울림에도 치닫고 있음이란 새삼 무엇인가. 고층적(古層的) 세계로 향하기. 혹시 “낭만적 허위”(지라르)가 아닐 것인가.
(주) 잠깐, 일단 여기서 멈추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객) 어째서?
(주) 한쪽 기둥인 ‘나는 무엇인가’조차 잃을 염려 때문.
(객) 동감입니다.
(주) 염려스러운 것은 그쪽도 저쪽도 아니지요. 작가 윤씨 쪽이 아니겠는가. 너무 멀리 나아간 형국이니까. 남는 것은 생물학적 상상력이겠는데요. 고층적 세계로 향하기.
(객) 아비 찾기에서 막바로 자기 찾기에로 치달았다? 그렇게 손쉬울까.
(주) 맞습니다. 협궤열차와 그토록 쉽사리 결별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째 ‘아비=자기’의 등식이 완벽하게 성립되겠는가. 나는 나, 아비는 아비일 뿐이 아니겠는가.
5. 비평가와 작가─누가 진짜로 구속되는가
(객) ‘외뿔 짐승’이란 울림이 조금 고약했나요? 안 그렇습니까? 너무 아득하다고나 할까.
(주) ……
(객) ……
(주)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분 중에 왕년의 승려시인 S씨가 있습니다. 씨가 제게 보내준 책 중엔 씨가 번역한 초기 불경의 하나인 『숫타니파타』가 있습니다. 그 속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도 묻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석지현, 『숫타니파타』, 민족사, 1993). 이른바 구도자의 자세를 비유한 시구입니다.
(객) 윤씨의 ‘외뿔 짐승’이란 무소가 아니라 릴케적 의미의 그것. 곧 ‘일각수’의 그것이 아니던가요. 그것은 갈 데 없는 또 다른 환각이 아닐 것인가. 그대로 보일까요.
“아득한 어느 먼 나라에서 나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하늘과 땅을 잠재우고, 아기 공룡들을 잠재우고, 어지러운 마음을 잠재우는 자장가 소리였다. 나같이 허덕이며 쫓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랫소리였다. 그것을 나는 그 아이가 부르는 노래라고 믿고 싶었다” (「외뿔 짐승」 5).
(주) ‘울림’(아비, 나)에로 귀일되는 경지란, 이는 부자 관계, 이른바 또 다른 ‘부계 문학 계보’의 세움일까요. 그렇다면 도로아미타불이지 않습니까. 뿌리 찾기의 불가능성이 ‘나’의 본질 닿기의 경지가 아닐 것인가. 영원한 ‘외뿔 짐승’의 운명이니까. 결국 돌 속에 화석으로 굳은 무지개를 해체해 보이는 작업이 아닐 것인가.
(객) 잠깐,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어도 되겠는데요, 계속 도망칠 생각은 마십시오. 이 글이 일변으로는 윤후명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 곧, 서두에서 제시한 명제인 ‘자기 얘기를 자기 얘기로’ 쓰는 글쓰기의 유형이 그것이겠는데요, 맞습니까?
(주) 제 답변은 간단명료합니다. 작가 윤씨가 그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
(객) 그게 비평가(독자)의 한계이겠는데, 조금 억울하지 않습니까? 윤후명 만세이니까.
(주) 글쎄요. 이 순간 작가 윤후명씨도 구속되지 않았을까.
[작가의 말]
4년 만에 책을 묶는다. 이 소설집은 그 동안 ‘꿈 사냥꾼’이라는 부제를 붙여 이른바 연작소설 형태로 계속 써온 것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막상 ‘꿈 사냥꾼’이라는 테두리는 사라지고, 두 가지 다른 제목 아래 마무리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나름대로의 내적 필연성이라면, 나로서도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추구한다고 20세기에서 21세기로 세기가 바뀌도록 여기에 매달려 나를 바쳐왔을까. 내가 추구한 ‘나’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내가 파악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예나제나 간절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 세태의 부박함에는 그저 속절없이 가슴앓이를 할 뿐이다.
얼마만큼의 느낌으로 살아왔는가.
얼마만큼의 사랑으로 살아왔는가.
그것은 이 글로써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 동안의 나의 전부냐 한들, 달리 둘러댈 깜냥도 내게는 없다. 문학에 대한 모든 논쟁이 공허한 울림으로 들려올 때, 나는 여기에 내 생애를 바침으로써 몸부림쳐왔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문학의 길을 걷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시 새로운 앞날을 바라보며, 오로지 외길을 가는 믿음으로 이 글 앞에 옷깃을 여민다.
2001년 초여름
윤 후 명
[차례]
외뿔 짐승
가장 멀리 있는 나
해설_김윤식
작가의 말_윤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