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삶과 글쓰기가 융합된 일종의 자서전이라면,『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교묘하게 감추어진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이 겪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강렬한 성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여인의 내적 갈등의 역정을 간접적 문체 기법, 보류와 암시의 언어를 통하여 펼쳐보인다.
_뒤표지글 중에서
[기획의 말]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영화 「연인」의 원작자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1943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판한 이래 199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소설가,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영화 감독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 속에서 특별한 자기 세계를 쌓아올렸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 『지브롤터의 선원』과 같은 초기 작품에서 뒤라스는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사실주의적 색채로 그려 보여준다. 그러나 『작은 공원』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펴내면서부터 전통적 소설 기법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묘사나 심리 분석, 인물의 초상 같은 것이 사라지고, 언어는 더욱 간결해진다. 설명보다는 대화에 주안점을 두어 현실의 인상을 강화하고, 인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의 구석구석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정열의 비밀스런 움직임, 밀려가고 밀려오는 욕망의 파도, 신비스런 심정의 메아리가 최소의 단어로 두려울 정도의 간결함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 시기 뒤라스의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죽음으로 실현되는 절대적 사랑이다.
권태롭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뒤라스의 여주인공들은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 자신을 이 세상 밖으로 데려가주기를 갈망한다. 드디어 어느 날 섬광처럼 스쳐가는 절대적 사랑의 순간을 목도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때까지의 인식 범위를 뛰어넘는 극한의 경험이다. 이제 그 여인들은 시간 속에 매몰되어버린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죽음에서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욕망의 저편으로 달려간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숨기고 있던 또 다른 가능성, 욕망을 발견하면서 인격의 와해, 정체성의 파괴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칭대명사의 모호함과 혼란으로 글쓰기에 반영되어, 그il, 그 여자elle, 그리고 사람들on의 지시 대상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점점 심화되어 『사랑』 『파괴하라, 그녀는 말한다』 같은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정체성을 잃고 서로 교환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는 사라지고 여러 목소리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공 속에서 전개시키는 『복도에 앉아 있는 남자』 『죽음에 이르는 병』 같은 작품이 등장한다.이처럼 3인칭으로 명명되던 주인공들은 1984년 『연인』에 이르러 나je를 되찾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독자를 다시 인도차이나로 데려가 자신의 현실로 끌어들인다. 각 작품에서 해체되고 분열된 채 조각난 모습을 보였던 인물들을 그러모으고, 욕망, 사랑, 시간, 장소에 현실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소설적 근원을 이루는 세계를 정리하고 청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1991년 『북중국에서 온 연인』을 통하여 완성될 것이다.
『연인』이 삶과 글쓰기가 융합된 일종의 자서전이라면, 이번에 소개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교묘하게 감추어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독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표현되지 않는 것을 통하여 표현하려는 글쓰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표면에 드러난 의미로부터 거리를 취하고, 작가가 흩뿌려놓은 암시와 함축의 표지들을 주의 깊게 따라가면서 심층의 의미를 탐색한다면, 독자는 남겨진 침묵과 여백을 통해서 미지의 세계에 이르고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001년 4월 기획위원
[차례]
기획의 말
모데라토 칸타빌레
옮긴이 해설_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언어의 모험
작가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