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이 책은 중국의 현대 문학과 그 현대성에 대한 객관적·자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저자의 오랜 연구 끝에 엄밀한 고증과 문화적 표층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정리된, 중국의 현대 문학과 그 바탕이 되는 현대성에 대한 꼼꼼한 분석서이다.
〔책머리에〕
인문학적 글쓰기에서 주어진 텍스트나 주제와 관련하여‘해석’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부분은 지난한 작업이다. 자료에 대한 해석이 어떠한 차원에서 필자 자신의 주관적 감상주의에 머물지 않고, 객관적인 유의미성을 내포하는‘해석’으로까지 고양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간단하게 답변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인문학적 글쓰기가 반드시 대중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감명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전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한 목적 의식이 전면에 부각될 경우, 글쓰기 본연의 내재적인 힘이 반감되어버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해석의 힘이란 따지고 보면 여러 차원에서 창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증의 엄밀함이라던가 문화적 표층을 꿰뚫는 통찰력은 해석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독자 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필자가 논문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당면하게 된 가장 큰 딜레마는, 자료 해석과 관련된 나의 시각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점차 내면으로 향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먼저 집필된 「중국 현대 문학에서의 현대성과 반(反)현대성」이나 「5·4 현대성과 사회 진화론」을 구상할 당시만 하더라도, 텍스트는 나에게 여전히 일종의 객관적 자료로서 존재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최근에 쓴 글들로 옮겨오면서, 텍스트를 빙자해서‘나’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된‘나’에 대한 심층적 탐구를 통해 주관의 극단에서 보편으로의 극적인 이행을 모색해보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해석)의 역사적 시공성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운‘나의 관점’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한 원망(願望)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글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문건들조차도 해석의 가변적인 역사성에 의해‘주관적’이며 의도적으로 구성된 자료에 불과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업(業)으로 글쓰기에 종사하는 전문 연구자로 이러한 사실을 솔직히 시인해야만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글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관점은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고, 그러한 실재적 사실 자체가 단편 논문들을 상호 엮어내어 거대한 유기체적 통일성을 구성해내고자 하는 체계론적인 충동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글쓰기와 역사성의 문제」는 비평적 글쓰기로부터 비롯되는 저자의 망연자실함을 초보적 단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이론적 틀로서 가시화시켜보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거기에서 내가 화두로 포착한 것은‘모순’이라는 개념이었다. 물론 모순이라는 미명하에,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시기에 집필된) 단편 논문들이 제시하고 있는 상이한 관점들을 모두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본 의도는 아니다. 단지 글을 읽어나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문맥에 의해 때로는‘갑’으로, 때로는‘을’로 읽힐 수 있는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모순이 허위의 표시가 아닌 것은, 모순이 없는 것이 진리의 표시가 못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했던 파스칼의 지적은 적절하다. 사실 논리적 일관성이 개별 논문들의 역사성을 초역사화시킬 뿐 아니라, 급기야는 어설픈 도그마주의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이 책의 출판에 즈음하여 논문 전체의 해석학적 일관성을 구성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난 연후에서였다. 체계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중국 현대 문학의 현대성과 관련된 일관된 전망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글은 글이 쓰일 당시 한 순간의 진실일 따름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진실은 과거태로 매장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시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불현듯 출몰할 수 있는 개연성을 소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글의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담아내는 형식이나 사유의 방식을 통해 독자와 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루쉰(魯迅), 마오둔(茅盾), 위다푸(郁達夫), 선총원(沈從文) 등의 문학 세계에 관해 논의를 풀어나가는 책에서의 방식이 대상을 인식하는 나의 사유 체계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읽힐 수 있다면, 논문 말미에서의 잠정적 결론에 대한 공감이나 이견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배려는 아마도 ‘죽(竹)의 장막’을 걷고 이제 우리와 전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사회주의 중국을 올바로 이해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특히 당시 근대 중국 지식인들이 ‘왜’ ‘그렇게’ 사유하였던가의 문제를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사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 관건이 되는 점은 많은 경우 가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록된 역사 너머의 부분들이기 때문에, 논자의 주관적 해석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러한 전제에서 출발하여, 저자는 철저하게 ‘나’의 해석을 시도하면서, 역설적으로 텍스트를 객관적으로 읽어내고자 하였다. 어쩌면 주어진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는 사유하는 인간의 특권이다. 대상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 대상에 내재된 본질적 유의미함 때문이라기보다, 결국 우리가 그 대상을 의미 있게 읽어내기 때문에 그러할지 모른다. 출판에 즈음하여 사색이 성숙하지 못한 글들을 선보이게 되니 민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책에서 제시되는 여러 관점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총체적 형상을 환기시켜냄으로써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유의미한 해석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끝으로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서남 재단에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재단의 후원이 없었다면, 가뜩이나 상업주의적 시류에 부합하지 못하는 글들이 단행본으로 엮여 출판되는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2001년 1월
신촌 연구실에서 정진배
〔차례〕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서문 글쓰기와 역사성의 문제
제1장 현대성 담론과 주체의 문제
1. 백화문 운동과 주체의 문제: ‘우리’는 누구인가?
2. 역사적 글쓰기의 제문제: 루쉰론
3. 중국 현대 리얼리즘의 서사 구조 연구
제2장 현대성 패러다임 모색을 위한 시탐
1. 중체 서용과 근대 자아
2. 5·4 현대성과 사회 진화론
3. 중국 현대 문학에서의 현대성과 반현대성: 시골―도시의 대비를 중심으로
제3장 보론
1. 시간과 역사에 대한 단상
2. 한·중 근대 언어 운동 소고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