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첫번째 시집『濟州바다』이후 꾸준히 제주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해온 문충성 시인의 시모음. 이번 시집『허공』은 생명의 기울어짐과 차오름에 대한 능숙한 노래들을 묶은 것으로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섬, 제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의미뿐만 아니라 리듬과 소리를 통해 표현하고 나아가 생명이 약동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과 통찰을 전하고 있다.
〔시인의 말〕
인간의 혼이 언어라면
내 언어는 너무
때묻었나 깨끗이
빨아낸다 새하얗게
허공에 걸어놓는다
아직 덜 말랐나
허공 속
누에처럼 단단한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단단함의 껍질 뚫고
날아오를 꿈이
없다
해도
처참하게 꿈꾸나니
한번
장엄하게 날아오를 하늘이여!
2001년 1월
문충성
〔차례〕
시인의 말
딸의 바다
솔개
비어 있는 산
첫 봄비 내리는 날의 기억
그믐달
가난에 대하여
작은산
개구멍으로 내다본 세상
별빛 속으로 걸어들어갈 때
아름답다 둥근 것은 모두
빈집
구릿빛 웃음
눈먼 자의 노래
제주 섬에 강 없는 줄 몰랐나
지하실에서 울음소리가
벙어리뻐꾸기
복수초
석류꽃
이 캄캄한 오월에
초급 가정의문법 연습
여름 白鹿潭
한탄강을 건너며
순비기나무
제주조릿대
개구리밥
들꽃 편지
송악
풀꽃들이
가는잎할미꽃
코스모스가 자유꽃 피운다
바다와 제비꽃과 암붉은오색나비와 제비들이 있는 풍경
뽕나무
바늘엉겅퀴꽃
으름덩굴
곤충 채집
산수국
안경 끼고 잠든 아내 곁에
눈향나무
성읍민속촌 가는 길
메추라기도요를 기다리며
아부오름
자작나무에게
왕십리에 내리는 비
마지막 祈禱
풀잎 위에 누우면
사라진 마을은 어디쯤 있어
11월 산굼부리
가을이 깊었다 각한다 나는
저승꽃 오이로 문지르며
無爲
萬燈 아래서
들불놀이
?風葬?
潛行
잿빛 하늘 아래서 손톱을 깎다
오늘 환생꽃 따러 서천 꽃밭으로 나는 가네
아름방 무지개 속 넙치가자미
오늘도 바다는 나를 부르고
빈 江
시장통에서
잠속에 내리는 눈
떠돌이의 집
이재수야 이재수야
허공
눈 그친 뒤
속옷 뒤집어 입는다
빈 술병
마지막 눈이 내릴 때
▨ 해설·바다의 유폐와 눈의 적막·김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