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동양에서의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8월 25일 | ISBN 9788932011769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46쪽 | 가격 9,000원

분야 외국시

책소개

〔개요〕

이 시선집『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는 네루다의 초기 시들을 묶은 것으로 주로 동남아시아의 영사로 재직하던 때에 쓰던 것들이다.

이들 시 전체의 주제는 고독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 이질적인 세계, 지리적으로 고향과 너무 먼 세계에서 시인은 향수에 시달리고, 외로움을 느낀다. 열려 있지만 닫힌 세계 앞에서 시인은 내적 침잠으로 빠져들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한다.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문체로 젊은 날의 외로움과 시와 사랑에 대한 열정을 관능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들은 우리에게는 대부분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것들이다.

〔옮긴이의 말〕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시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창작은 창작이라는 한 가지 작업으로 끝나지만, 번역은 시인의 마음이 되어 시를 이해하고 그것을 대상 언어의 시 형식에 맞추어 다시 만들어내는 이중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페루 시인 바예호 Vallejo를 소개하고 다시는 시 번역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일을 저질렀다. 바예호야 같은 안데스 산악 지방 출신인 남편 때문에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수많은 외국어로 소개된 네루다 Neruda야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소개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게 번역을 끝낸 지금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칠레 대사관의 이그나시오 Ignacio 대사와 아브라함 케사다 Abraham Quezada 공보관의 설득에 이끌린 죄라 할까?

시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네루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971년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적 시인이 된 네루다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소개되어, 그의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은 사람은 그를 ‘감미로운 사랑의 시인’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아는 사람은 ‘민중을 위해 투쟁한 시인이며 투사’로,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본 사람은 ‘자연을 벗하고 가난한 이웃과도 친구가 된 소박한 시인’으로 평한다.

그러나 시인은 시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소개된 시보다 소개되지 않은 시가 훨씬 많은 네루다는 우리에게는 아직 미지의 시인이다. 이번에 옮긴 시들은 네루다가 동양에서 쓴 시, 동양을 회상하며 쓴 시이다.

동양에서 쓴 시는, 그 대부분이 연작 시집 『지상의 거처』의 1부에 수록된 것들로 여기서는 씌어진 순서대로 수록했다.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초현실주의 언어로 씌어진 시집”이라는 찬사를 얻은 이 시집은 그만큼 난해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의 시는 1950년대초의 그의 여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무슨 일이든 혼자 다 하는 것은 아닐 게다. 늘 부드러운 웃음으로 말없이 격려해주시는 김병익 선생님, 아무리 네루다라 해도 감미로운 시가 아니라서 팔리지 않을 걸 뻔히 알아 속상했을 텐데, 시인으로서 번역시 냄새를 없애주는 것에만 신경 쓰며 고생한 문학과지성사의 채호기 사장, 약속을 제대로 안 지켜 애태우게 만든 그 집의 여러 식구들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꼽아본 고마운 분들이다.

또 있다. 엄마 대신 주부 노릇을 해준 두 딸 아이라 Ayra와 뉴스타 usta, 마누라라는 업무에 근무 태만인데도 경고장 한번 내밀지 않는 카란사Francisco Carranza 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존재들이다.

2000년 6월
고혜선

〔추천의 말〕

파블로 네루다가 1927년부터 1932년까지 동양에 살면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을 모은 이 시집을 추천하게 될 엄청난 특권이 내게 주어진 것은 정말 하나의 행복한 문학적 우연이다.
이 ‘우연’은, 그러나, 실은 두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즉 중남미 문학 박사인 단국대학교 고혜선 교수와 주한 칠레 대사관 서기관인 케사다 Abraham Quezada가 두 주역이다. 고교수는 중남미에서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위대한 문인들의 작품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전문가의 하나이며, 케사다 씨는 네루다에 심취한 젊은 외교관이다.

고교수는 동양과 관련된 네루다의 시를 한국어로 옮기고 분석했으며, 케사다 씨는 네루다의 동양의 궤적을 조명하고 시를 선정했다. 케사다 씨의 작업은 우리 모든 칠레 외교관의 진정한 열망을 달성한 것으로, 조국을 대표하는 나라에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30년이라는 외교관 생활 동안 여러 민족들을 가장 영속적으로 고귀하게 근접시키는 것은 무역이 아닌 문화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그 문화는 나라간의 거리, 언어, 각 민족의 정체성과는 무관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을 관철하고자 노력해왔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한 인간이 동양에 살면서 인간적, 언어적 국경을 초월해서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세계를 드러낸 시들을 모은 이 작은 책이 시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칠레를 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0년 6월
주한 칠레 대사
이그나시오 곤살레스

〔해설 1〕

동양, 창작을 위한 공간과 시간

1926년에 22세의 네루다는 제법 인기를 누리던 젊은 시인이었으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서서히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사직을 꿈꾸며 다니던 대학을 중퇴함으로써 부친께 실망을 드린다. 그의 부친은 그가 대학 출신의 전문 직업인이 되길 바랐으므로 아들이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네루다는 본명인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Neftali Ricardo Reyes라는 이름 대신에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라는 필명으로 처음부터 시를 쓴 것이다.

그럼 청년 네루다가 꿈꾸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단지 시인, 그것도 전업 시인이 되고 싶어했으며, 그를 옹호해준 사람들은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생계를 먼저 해결해야 했으므로, 세칭 여러 가지 돈 버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기념품 판매, 만화 판매, 친구와 동업한 물개 가죽 수출 회사, 번역. 그러나 자본도 많지 않았고 장사 수완도 없었던 그는 실패만을 거듭했다. 어렵고 힘든 경제 상황은 그에게 다른 일을 찾도록 만들었다. 그 당시 돈이 없었던 문인들이 선택한 길은 외국으로의 탈출이었으며, 특히 유럽, 그 중에서도 파리가 선호의 대상이었다. 당시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였다. 니카라과 출신의 루벤 다리오 Rub n Dar o, 칠레의 비센테 우이도브로 Vicente Huidobro 같은 작가들의 성공적인 파리 생활은 남미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네루다의 회고록에도 당시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사실 이름이 좀 알려지자 사람들은 길에서 날 만나면 ‘아니, 여기서 뭐 하십니까? 당신은 파리에 가야 해요’라고 했다.” 당시 한 스페인 시인의 말에 의하면 “파리는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빼놓을 수 없는 종착지였다”고 하였다.

외국으로 간다는 결정은 내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외무 공무원이 되는 길이었다. 네루다는 아는 이들을 통해 줄을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시도하며, 거의 2년 동안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27년 4월에 ‘선임 영사’라는 직책을 맡아 아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직책의 대가는 칠레와 현지 근무 국가간의 무역 교류량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으로 고정급이 아니었다.

그의 첫 부임지는 버마의 랑군으로, 현 미얀마의 양곤이었다. 긴 항해 끝에 대서양, 유럽, 지중해, 서남 아시아(중국, 상해, 일본,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서 네루다는 1928년초에 근무지에 도착하였다. 랑군에 대한 그의 첫인상을 보자. “랑군의 모습은 배 갑판에서 볼 수 있었다. 금으로 된 스웨이 다곤 SWEI DAGON 파고다의 거대한 깔때기, 선착장엔 수많은 이상한 복장들의 현란한 색상들이 몰려 있었다. 그곳으로 넓고 지저분한 강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마르타반 만이었다. 이 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이라와디Irrawadhy라고 불렸다. 그 강가에서 나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아시아와 랑군에 대한 그의 ‘인상’이 보인다. “큰 도시이며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버마의 “기후는 덥지만 나는 좋다. 사방에는 싱싱한 녹색이 우거졌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북적댄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곳, 새로운 직업이었지만 산티아고에서 겪었던 가난은 아직도 그를 따라다녔다. 영사로 있으면서도 마닐라의 망토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과거에 했던 사업들을 재시도하나 실패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는 고독과 상실감에 시달렸다. 시인은 사람들을 사귐으로써 고독을 해소하려 애썼고, 곧 조시 블리스 Josie Bliss란 원주민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둘 사이는 뜨거웠지만, 그녀의 질투로 인해 결국 파국으로 치달으며, 후일 네루다는 이 시절을 악몽이라고 회상한다. 네루다는 고독에 지쳐 있었으며, 경제적 궁핍함과 애정으로 인한 괴로움까지 겹쳐서 산티아고 외무부 본부에 이임을 요청한다. 외무부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으로 파견한다.

네루다는 1929년 1월부터 1930년 6월까지 콜롬보에서 지냈다. 이곳에서도 고독은 그를 엄습한다. “식탁 하나와 의자 두 개, 사무실, 개 한 마리, 망고스타, 그리고 나의 보이……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때로는 기분이 허락하지 않아 시를 쓸 순 없었지만 독서와 음악 감상 그리고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 기간에 일어난 중요 사건으로는 범 힌두 회의에 참가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간디를 만났고 영국에서 갓 도착한 네루, 그리고 선동가이자 묘하게 사람을 끄는 힘이 있는 난폭한 반제국주의자인 수바스 찬드라 보세 Subhas Chandra Bose도 만났다.

그의 영사 업무는 대부분이 홍차였던 칠레행 수출품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다른 일에도 개입했으니, 한번은 자주 매를 맞는 어느 어부의 아낙에게 ‘망명’을 허락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집 혹은 영사관으로, 종종 보호를 호소하며 찾아오곤 했다. 나는 그녀를 맞이하였고 그녀는 우리집에서 다음날까지 머물곤 했었다……”

실론에서의 1년 6개월은 버마에서의 생활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즉, 거기서는 친구도 사귀었고 문화 행사에도 참여했다. 미얀마의 여인 때문에 중단되었던 친구들과 옛 연인들 그리고 친척들과의 서신 교환도 자유로워졌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신이 늘 염원하고 단 하루도 잊지 않는 것이 유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며 자신의 작품들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콜롬보에서 흔히 그의 초기 시에 “회색 모자”로 등장하는 알베르티나 로사 아소카르(Boina gris: 회색 모)에게 편지를 써서 외로운 근무지에서 그와 함께하자고 청하나, 그녀의 반응은 냉랭하다. 태평양을 넘어 고정 수입이 없는 영사와 결혼해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1930년 중반에 그는 더 남쪽인 바타비아(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로 이임한다. 칠레 정부는 그에게 자바와 손다 섬을 관할하도록 했고, 별도의 세입 제도를 두어, 영사로서의 수입 근거를 확보해주었다. 결국 그의 수입은 두 배로 늘었다.

랑군과 콜롬보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이제 네루다는 능숙하게 영사 업무를 처리했으며 새 근무지에 적응도 잘했다. 친구들이 생겼으며, 때로는 행복하다고까지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 3편이 중요한 스페인 잡지에 실렸다. 이제 네루다의 세계관은 낙천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모든 여건은 네루다에게 안정을 주었다. 자카르타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에 자바 태생의 유럽인 2세(마리아 안토니아 하게나르 Mar a Antonia Hagennar)와 결혼한다. 가족에게 보낸 서신에 묘사한 부인의 모습을 보자. “아내는 나보다 키가 좀더 크다, 금발에 파란 눈…… 가진 재산은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위험한 투기로 인해 망하셨다. 아무튼 우리는 가난하나 행복하다……” 네루다는 그곳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었다. 그러나 본국의 상황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당시 칠레는 1929∼30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를 겪게 되었으며, 정부는 긴축 재정을 운용하면서, 세계 각지의 영사관을 줄이기로 했고, 결국 네루다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자, 언론은 네루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의 네루다가 아니라, 아시아같이 멀고 이국적인 곳에서 돌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칠레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었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그가 가본 나라들, 근무한 나라들, 그리고 그들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한다.

네루다가 다시 아시아를 방문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1950년대이다. 인도, 몽고(1951), 중국(1950, 1955년 두 차례) 그리고 젊은 시절에 근무했던 랑군과 콜롬보를 찾는다. 콜롬보를 다시 찾은 후, 그는 어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내가 거기서 살 수 있었지?” 그리고 이내 그에 대해 스스로 답했다. “젊음이 준 기적이군.”

1999년 여름
태국 푸켓의 안다민 만에서
칠레 영사 아브라함 케사다

〔해설 2〕

동양에서의 고독과 네루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동양에서 쓴 시와 동양을 주제로 쓴 시들이다. 여기서는 네루다의 시세계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지상의 거처』 1부에 등장하는 동양에서 쓴 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

여기 등장하는 시들은 근무지였던 랑군, 콜롬보, 자카르타, 국제 회의 참석차 여행했던 인도의 캘커타, 그리고 귀국 여행길의 인도양과 대서양에서 1927년부터 1932년 사이에 쓴 것이며, 유일한 예외는 『지상의 거처』 2부에 실린 「조시 블리스」이다. 시가 씌어진 시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표를 만들어보자.

이들 시 전체의 주제는 고독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 이질적인 세계, 지리적으로 고향과 너무 먼 세계에서 시인은 향수에 시달리고, 외로움을 느낀다. 열려 있지만 닫힌 세계 앞에서 시인은 내적 침잠으로 빠져들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한다. 시인은 그때까지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써왔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시인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고독을 이기기 위해 찾은 조시 블리스는 그에게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을 준다. 육체적인 것에 탐닉해서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잃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다. 그러나 헤어진 여인으로 인한 고통은 시인을 더욱 아프게 한다. 네루다의 고독과 연관이 된 주제를 시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I) 향수
미지 세계의 현실은 그 세계 구성원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이나, 외부인에게는 ‘초현실적인 암울한 현실’일 뿐이다. 네루다의 초현실적인 글쓰기는 그가 일부러 초현실적인 시어로 글을 썼다기보다, 그 현실이 들어갈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암울한 것’이기 때문에 초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극히 자연스런 점에서 출발한다. 즉, 현실과 꿈의 경계가 없어지며, 눈앞의 현실도 하나의 ‘꿈’으로 간주된 것이다. 시인에게 현실다운 ‘현실’은 고향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고향은 ‘밤’에 꾸는 꿈에서만 볼 수 있는 곳이다. “꿈의 천사”는 “매미, 소라” “바다”와 같은 고향 냄새를 시인에게 전해주고, “바람” 불던 고향 마을, 어릴 적 아버지를 기다리며 듣던 “기적 소리,” 새벽녘이면 싸늘히 식은 “침대”로 기어들어가던 추억, 산티아고와 테무코를 오가던 수많은 “여행,” 식사 시간에 늘 곁들이던, 이제는 추억이 되어 색깔마저 가물가물한 “포도주,” 황톳길의 “소”(「밤의 컬렉션」)를 보여준다.

2) 시인의 본질
시인에게 본질을 되찾으라고 재촉하는 “천사”는 “까만 바구니”에서 “소금” “병사” “천상의 물건” “예언자”를 쏟아낸다. 네루다에게 있어 시인은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로, 세상사를 잘 지켜보는 “병사” “천상의 물건” “예언자”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자신은 여태껏 ‘남의 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제 비로소 ‘가슴을 찢는 사연을 가진 이웃’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배 안에서 보았던 가난한 이웃, 피곤에 지친 “눈물도 마른 이웃” “세파에 시달린 여인”은 나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는(「밤의 컬렉션」) 존재들이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도 병사로 비유된다. “병사”는 세상사에 결코 초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해야 하는 시인이나, ‘나’는 “우울”하고 “죽음도 없는” 상태에서 먼 바다에서 온, 그러나 버림받은 존재이며 “큰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로 단지 육체에 옷을 걸치고 사는 상태(「병사의 밤」)라고 자조에 빠진다. 이 시의 끝에서 “또 다른 신”은 바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시인’으로서 그가 자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한다고 맺고 있다.

시인 혹은 시의 본질에 대한 시로는 「소나타와 파괴」 「창작」을 들 수 있다. 시를 지칭하는 소나타, 그리고 시의 세계를 벗어났던 것을 파괴로 지칭한 시인은 “기마병” “불” “소금”과 같은 존재로 “어두운 기운의 밤, 도망치는 상복의 밤”에는 쓸모 없는 여행객이 된다. 그러나 그 여행객은 어둠 가운데에서도 쓰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달빛만이 내려앉는 외로운 공간에서 시인은 “불완전한” 자아를 지닌 존재이지만 “은빛 소리”를 지니고 영원한 상실을 사랑한다. 시는 알알이 익는 “포도”이며, 비록 젖어 있지만 아직 불에 ‘탄다.’ “결실 없는 우리의 유산”인 과거의 시집도 아직 존재한다. 시인은 아직 죽지 않았다. “누가 재의 의식을 거행했는가?” “아버지의 뼈,” 잔해만 남은 “죽은 배” “도피” “불행한 신”(「소나타와 파괴」)을 사랑했고 보호했는가 하고 시인은 반문한다. 시인의 본질인 “증언”은 금방 없어질 재로 씌어진 잔인한 것으로 그것이 시인이 택한 “망각의 형태”인 것이다. 시인은 ‘잊기 위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양은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겨울의 눈”을 가지고 슬프게 바라보면서 끝없이 나눌 수 있을 만큼 많다.

「창작」에서 시인은 잊어야 하는 여인인 조시 블리스의 추억에 시달리며 시인으로서의 길을 가려는 열망을 보인다. “그림자”와 “병사”의 세계인 시인의 길과 “공간”과 “아가씨”의 세계인 육체적 열망의 세계 사이에서, 시인은 “창백”하고 “시든” 존재이며 의지와 어긋나는 매일매일의 삶에 분노를 느끼며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물”을 마셔가며, 무엇에나 신경을 쓰는 시인은 “없는 목마름” “차가운 열”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부조리의 세계를 산다. 외로운 거처, “우울한” 공간에 “밤”이 한없이 내려앉으면 내 안에 있는 소리는 나보고 ‘예언자’가 돼라고 소리친다.

조시 블리스와의 사랑은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네루다를 괴롭히는 요소였다. 그녀와 함께하는 평범한 삶에 만족한 듯하지만, 육체적인 만족이 극에 달하는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호랑이 소리를 듣고” 시인으로서의 자신이 없다는 “내가 없음에 통곡한다”(「젊은 군주」).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토록 고대했던” 그날을 위해 그리도 많은 편지, 왕래, 말들이 오고 간 빛나는 날, 비가 그친 시원한 날에 “소금”과 같은 시인의 존재는 떨고 있다. 시인의 열정인 “불꽃” “불” “굶주린 도끼”(「오월의 비바람」)도 연약하기 짝이 없다. 시인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서 도망칠지 모르는 상태다.

3) 조시 블리스와의 사랑
거리에서 만난 “영국 여자처럼 옷을 입고 거리에서의 이름이 조시 블리스”1)라는 여인과의 만남은 「병사의 밤」에서 언급되며, 『지상의 거처』 2부에 실린 「조시 블리스」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다. 검은 머리, “타오르는 그대의 풍성한 가슴,” 야생적 코를 가진 조시 블리스의 모습에 대비되는 흰 얼굴, 검은 머리, 시원한 이마(「우리 함께」) 등을 가진 시인은 멋진 육체적 만남을 가진다. 시인은 “만달라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며, 흙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맡기고 싶어한다. 그녀 조시 블리스는 “버마 왕의 딸”이다(「젊은 군주」).

시인은 그녀의 육체를 자신의 조국인 칠레에 비교한다. 안데스 산맥이라는 커다란 줄기와 태평양이라는 바다에 면한 긴 모습의 조국은 “긴 두 개의 뜨거운 팔”에 에워싸인 조시 블리스의 육체이며, “열정”적인 “황금의” 조국이다(「젊은 군주」). 그녀의 육체는 시인의 마음의 고향이며 다정한 모국이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랑이 시인에게 안정을 주지는 않는다. 한낮의 사랑 행위를 두고 시인은 육체적 사랑이 날아가는 “천상의 사랑 시간”(「마음 아픈 낮」)임을 인식한다. 조시 블리스는 자기 손안에 가두어지지 않는 그를 향해 끊임없이 질투한다. “그녀가 질투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 곁에서 영원히 머물 수도 있었다”2)라고 고백했듯이 네루다는 그녀를 사랑했다. 어느 날 밤, 그를 향해 칼을 들고 있는 그녀를 본 후, 그는 이별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와의 이별은 그에게 더욱더 깊은 고독을 안겨주어, 밤은 거대하고 대지는 외롭다라고 노래한다. 그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시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내 영혼에서 들리는 쓸모 없는 칼,” 이마의 피, 어둠의 합창(「혼자 남은 자의 탱고」), 그 밖의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다고 고백한다.

4) 미지의 세계
랑군에 가기 전에 들른 동양의 다른 도시에서 시인은 “늙어버린 노름꾼,” 사람이 너무나 많이 드나들어 “닳아버린 층계 위의 뚜쟁이,” 그 안에서 “벌거벗은 소녀들”(「밤의 컬렉션」)을 본다. 랑군에서의 시인의 삶은 “단 하나의 게절이 있고,”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날이”(「병사의 밤」) 흐르는, 변화가 없는 지역의 단조로운 삶이다. 그곳은 또한 지속적이며 닫혀 있는 공간으로, 움직임이 없으며 있는 곳, “젖어 있지만 말라 있는”(「雅歌」) 이율배반적인 구조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슬람교도, 힌두교도이며, “담배 피고,” 붉은 열매를 씹은 뒤 “침 뱉고” 술 마시다가 죽는 사람들(「병사의 밤」)이며, ‘나’는 “어부,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 “태워지는/ 망자들”(「동양의 장례」)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네루다 연보〕]

1904 칠레의 파랄 Parral에서 태어남.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 Neftal Ricardo Reyes Basoalto.

1918 『질주와 비상 Corre-Vuela』지에 최초로 「나의 눈Mis ojos」이라는 시를 발표.

1920 체코슬로바키아의 시인 얀 네루다Jan Neruda의 이름을 따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 사용.

1921 수도 산티아고의 교육대학에 입학.

1923 『황혼의 노래Crepusculario』 출간.

1924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Veinte poemas de amor yuna canc on desesperada』 출간.

1925 『무한한 인간의 시도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발표.

1926 소설 『거주자와 그의 희망El habitante y su esperanza』과
산문집 『반지Anillos』 출간.

1927 버마의 랑군 주재 명예 영사.

1928 실론 주재 영사.

1930 자바 주재 영사.
네덜란드 출신의 마리아 안토니아 하게나르Mar a Antonia Hagennar와 결혼.
1933 『열광적인 투석꾼El hondero entusiasta』, 『지상의 거처 1 Residencia en la tierra I』(192531) 초판 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영사.

1934 바르셀로나 주재 영사. 두번째 여인 델리아 델 카릴Delia del Carril 만남.

1935 마드리드 주재 영사. 『지상의 거처』 증보판이 두 권으로 출간.

1936 스페인 내전과 관련한 정치적 개입으로 영사직에서 파면당함. 마리아 안토니아와 이혼.

1937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와 함께 ‘중남미의 스페인 지원단’ 결성. 칠레귀국. 『가슴속의 스페인Espa a en el coraz n』 발표.

1938 부친과 양어머니 사망.

1939 파리 주재 스페인 이민단 영사.

1940 멕시코 주재 총영사.

1942 쿠바 여행.

1943 페루 등지 여행.

1945 칠레 북부 타라파카, 안토파가스타 지방 상원의원에 당선. 국가문학상 수상. 칠레 공산당에 입당. 「마추픽추의 산정」을 쓴다.

1947 『제3의 거처Tercera residencia』 출간.

1948 「나는 고발한다Yo acuso」라는 제목의 상원 연설로 인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체포령이 내려짐. 도피 생활을 하며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를 쓴다.

1949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탈출. 소련 및 동구 방문.

1950 멕시코에서『모두의 노래』 출간.「나무꾼이여 깨어나라Que despierte el le ador」 로 소련의 국제평화상 수상.

1951 이탈리아 순회. 유럽과 중국을 여행.

1952 이탈리아에 거주. 『대장의 노래Los versos del capit n』가 나폴리에서 익명으로 출간됨. 체포령 철회로 귀국하여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

1954 『소박한 것들에 바치는 송가Odas elementales』와 『포도와 바람Las uvas y el viento』 출간.

1955 두번째 부인 델리아 델 카릴Delia del Carril과 이혼하고 마틸데 우루티아와 결혼.

1956 『소박한 것들에 바치는 새로운 송가Nuevas odas elementales』 출간.

1957 아르헨티나의 로사다 출판사에서 그의 전집 초판 발행. 『세번째 송가집Tercer libro de las odas』 발간.

1958 『에스트라바가리오Estravagario』 출간.

1959 『항해 그리고 귀향Navegaciones y regresos』과 마틸데에게 바치는 『백 편의 사 랑의 소네트Cien sonetos de amor』 출간.

1960 『무훈의 노래Canc on de gesta』 아바나에서 출간.

1961 『칠레의 돌Las piedras de Chile』과 『의식(儀式)의 노래Cantos ceremoniales』 출간.

1962 유럽 여행. 『충만한 힘Plenos poderes』 출간.

1964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Memorial de Isla Negra』 출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 와 줄리엣』을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 대통령 선거 캠페인단의 일원으로 전국을 순회.

1966 『새들의 재주Arte de p jaros』와 산문집 『모래 위에 지은 집Una casa enla arena』 출간.

1967 『뱃노래La barcarola』와 극 형식 칸타타인 『호아킨 무리에타의 영광과 음 Fulgor y muerte de Joaqu n Murieta』 초연. 이탈리아의 국제 비아레지오상 수 상.

1968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품 전집 3판 발행. 『한낮 손Las manos del d da』 출간.

1969 『세상의 끝Fin de mundo』과 『아직도A n』 출간. 칠레 공산당에 의해 칠레 대 통령 후보로 지명됨. 그러나 살바도르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대통령 단일 후보에 지명되도록 입후보 사퇴.

1970 『불타는 칼La espada encendida』과 『하늘의 돌Las piedras del cielo』 출간.

1971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파리 주재 대사로 임명됨. 노벨문학상 수상.

1972 대사직 사임하고 귀국. 『쓸모 없는 지리학Geograf a infructuosa』과 『갈라진 장 미La rosa separada』 출간.

1973 『닉슨 암살의 선동과 칠레 혁명의 찬양Incitaci n al nixonicidio y alabanzas de la revoluci n chilena』 출간. 전집 4판 발행. 9월 11일,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의 좌익 정권 무너짐. 9월 23일 산티아고의 한 병원에서 69세를 일기로 사망. 『바다와 종El mar y las campanas』 출간.

1974 자서전 『내 인생을 고백한다Confieso que he vivido』, 『추억Memorias』과 『노 란 심장El coraz n amarillo』『질문집Libro de las preguntas』『엘레지Eleg a』 『몇몇 결점들Defectos escogidos』『겨울 정원Jard n de invierno』『2000년 2000』 등의 유고 시집 출간.

1978 산문집 『난 태어나기 위해 태어났다Para nacer he nacido』 출간.

목차

〔차례〕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

밤의 컬렉션
내면의 적
암울한 존재
병사의 밤
우리 함께
소나타와 파괴
젊은 군주
동양의 장례
마음 아픈 낮
혼자 남은 자의 탱고
창작
오월의 비바람
아도니스 천사
어둠을 뜻합니다
호아킨의 부재
외로운 신사
밤의 건물들
내 다리 祭儀
외지인
밝혀진 편지
느린 비탄
雅歌
차가운 일
화물선 유령
조시 블리스
여행객
여기서 멀리
석고 탈

여치
태양을 향해 날면서
중국
인도, 1951년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중국 기차에 부치는 노래
초행
동양의 아편
랑군, 1972년
동양의 종교

해설 1 동양, 창작을 위한 공간과 시간

해설 2 동양에서의 고독과 네루다

네루다 연보

작가 소개

파블로 네루다 지음

칠레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을 사용했으며, 이 이름으로 일생을 살았다.

열아홉 살에 첫 시집 『황혼의 노래』를 발표했으며, 이듬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며 스페인어권 전역에서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1927년부터 5년간 동남아시아에서 영사로 재직하며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에서 영사로 재직했으며, 스페인 내전 때는 난민의 칠레 망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단일 후보가 되도록 스스로 사퇴했다.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사랑, 칠레를 위시한 중남미의 역사, 정치적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 일상의 소박한 것에 대한 반추 등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시세계롤 구축한 네루다는 20세기 세계 시단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문인이다.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로 재직 중이던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 직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 시집으로 『지상의 거처 Ⅰ· Ⅱ · Ⅲ』 『모두의 노래』 『대장의 노래』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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