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반근

문학과지성 시인선 242

김영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5월 4일 | ISBN 9788932011585

사양 46판 128x188mm · 123쪽 | 가격 5,000원

책소개

[개요]
시집 『그늘 반근』에서 시인은 삶에 대한 멋진 통찰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 통찰은 인생에 대한 지혜이지만 관념적인 단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감각으로 나타난다. 감각과 느낌을 형상화하는 각각의 시들은 언어의 멋진 조형으로 우리 앞에 약간은 관능적인 자태로 시집 속에 놓여 있다.

[시인의 산문]
나는 이제 廢品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나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또 아무에게나 나를 주고 싶지 않다. 내가 줄 것은 몸과 마음뿐이다. 그 이상의 것을 나는 줄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개의 이쁜 접시, 모양이 다른 찻잔, 촛대, 옛날 고리 반닫이, 테라 코타 작품 몇 개 정도다.

물에 빤 헝겊별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상상력 속에는 서향 창에 그런 헝겊별들이 돋아난다. 서향 창에 기댄 천사도 보인다. 시는 세상에 없는 것을 창에 매달고, 존재하지 않는 허상도 그 옆에 세워둔다.

[시인의 말]

「그늘 반근」이라는 제목은 내 나이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늘 반근」은 1993년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국립발레단 주역이었던 한금련(평론가 김진석 부인) 개인 발표 무대였다. 「마담 라모르」 외 세 작품에 홍승엽이 파트너로 출연했다.
되돌아보면 그늘과 나는 인연이 깊다.
그게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2000년 봄, 金榮泰

[발문]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장경린

무용은 말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무용이다.
―플루타르크

3월 28일
좋은 글은, 심지어는 평론마저도, 마치 춤처럼 보인다. 좋은 평론가가 하는 말은 독백을 늘어놓아도 독무(獨舞)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 글을 읽고 있는 독자나 초인격적인 역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를 사랑하는 진정한 독자로서의 평론가가 그 텍스트와 춤추는 이인무(二人舞) 같은 글은 정신적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 세상과 춤추는 좋은 시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무용은 말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무용이다”라고 말한 이가 플루타르크던가.

4월 6일
삼청터널을 오가는 출근길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벌써 만발했다. 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화사해진다. 개라도 한 마리 끌고 슬렁슬렁 산길을 거닐면 금상첨화겠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이해득실에도 남들처럼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자본주의식 처세에 이제 지친다. 인간에게서 체온을 느끼기 어려워진 지도 오래. 개는 석기 시대 때부터 인간과 호흡을 맞춰 살아왔다고 한다. 이제 인간은 완전히 맛이 갔고, 고대 만주어 속에 우리말의 원형이 남아 있듯이 개의 마음속에나 인간의 따뜻한 마음의 원형이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영태 시인의 시 「쿠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식탁 밑에서 내 맨발을
물어뜯는 쿠마,
인간이 인간에게 체온을 나눠주듯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무슨 체온이 가 닿아 있다
아무것도 없는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나를
쿠마, 네가 지켜보듯
-「쿠마」

4월 9일
『그늘 반근』의 발문이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낸 미역국처럼 밍밍해서 서두를 다시 뜯어고쳤다. 파일이 날아갈지도 모르니 여기에 잠시 저장해두어야겠다.

김영태 시인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무용 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전방위 예술가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다방면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그의 겸손한 변론은 요즘처럼 장르 해체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전위적인 열정을 느끼게 한다. 현대처럼 장르가 분화되기 이전 원시 시대의 전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샤먼은 무용과 시와 음악을 함께 연주하던 전방위 예술가였다. 김영태 시인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예술적 행보는 샤먼과 같은 예술가적 감성을 느끼게 한다.

스무 살 이후
공중에 매달려 있는 지금까지
마흔여섯 권의 책을 냈습니다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
내게 물으면서
-「책 마흔여섯 권」

스무 살 이후 마흔여섯 권의 책을 내며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시인은 “책 속에 들어가 살았다” “수많은 춤을 보았고 그 안에 들어가 살았다”(「로마 수첩」)고 말한다. 삶이 곧 예술 그 자체였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히 실천 의지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예술적 경험이나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주된 소재로 삼아 시를 쓴 흔치 않은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술적 소재들은 일반적인 시적 소재들과 달리 선행 텍스트pretext의 성격을 띠고 있어 예술적 이미지를 지닌 소재가 거느리고 있는 아우라가 그의 시적 감성과 만나 다중적 화자의 역할을 하는 표현 효과를 얻고 있다.

그와 유사하게 선행 텍스트를 사용한 예로는 처용 설화, 이중섭, 예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시적 소재나 화자로 사용한 김춘수 시인이 있다. 그러나 두 시인이 선행 텍스트를 활용하는 의도는 크게 다르다. 김춘수 시인이 자신의 시세계를 관념적으로 재해석하고 중층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선행 텍스트를 활용한 반면, 김영태 시인은 정 붙일 구석이 없는 일상적 삶을 벗어나 숨을 고르고 도약을 하는 실존적 공간으로 선행 텍스트를 활용하고 있다. 김영태 시인의 시가 무용 대본과 작곡의 모티프로 빈번히 사용되었던 것도 다른 장르와의 교감을 감각적으로 수용하였던 그의 자세와 무관치 않다. 그가 글을 쓰면서 스스로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 자문하는 것은 언어가 마음의 춤이라는 그만의 미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집 『그늘 반근』에서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그늘과 빈자리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그늘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정서적 공간이라고 한다면 빈자리는 그 무게를 덜어낸 결과 남은 허허로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을 맞은 시인에게 있어서 이들은 그의 실존적 위치를 나타내는 상징인 셈이다.

나는 그의 그늘에 가서 그가 나를 멀리한 이후의 그늘 안의 그늘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살 속에 遮陽을 매달고 6년 동안 촛불을 켜놓고 살던 것도 지금은 희미해진 그의 몸 지도 위 나 쉬어가던 곳도 그늘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지팡이 짚고 모자 쓰고 넉넉한 옷 가을 같은 옷 입고 지도도 필요 없이
-「그늘」

그늘이란 존재의 뒤편에 드리워진 빛의 결여태이다. 그러니 존재가 없거나 빛이 없다면 그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에 나타나는 그늘은 “그가 나를 멀리한 이후의 그늘”을 가운데 두고, “그의 그늘”과 시인(그 역시 그늘이다)이 대치하듯 떨어져 있는 구도 속에 있다. “그의 살 속에 차양(遮陽)을 매달고 6년 동안 촛불을 켜놓고 살던”과 같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살아 있는 그늘. 삶의 무게가 실린 그늘은 그러나 단순하게 전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살 속 어두운 그늘, 그곳에 켜놓은 촛불이 너울거리며 만드는 그늘, 그늘과 그늘의 이별, 그늘 위로 깔리는 이별의 아픈 그늘. 이 그늘들은 원인과 결과를 해체시키고, 비록 헤어진 사이지만 시인과 그의 간격을 지워 아련한 회상 속에서 서로 넘나들며 중첩되고 있다. 겹을 이룬 이 그늘들은 다양한 농도의 잿빛 춤이 되어 “끝이 안 보이는/끝”(「그늘 반근 3」)으로 슬픔처럼 번져나간다.

슬픔을 저울에 달 때
한 근! 하면 어색하다
반근이면 족하다
(한 근은 너무 많지)
반근, 젊어지긴 틀린 이 미지수
내리막길을 찬란하게
미지수가 그 동안 미지수를 가꿨듯이
-「그늘 반근 2」

슬픔은 슬픔에 빠진 자로부터 빛을 앗아가 전존재를 그늘지게 한다. 그러니 슬픔의 심리적인 무게는 “한 근!”이 옳다. 이때 ‘한’은 물론 크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시인은 “한 근! 하면 어색하다/반근이면 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덜어낸 나머지 반근의 마음을 미지수로 남겨놓는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늘진 노년의 내리막길이 찬란해질 수 있다면, 이 반근의 미지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리적 개념인 미지수에 가까운 공간적 이미지는 여백이다. “미지수가 그 동안 미지수를” 가꿔왔다는 시인의 말은, 빡빡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숨쉴 만한 여백을 찾아다녔다는 뜻이리라.

型이 없는 이 모자는
쓰는 사람 손으로 형을 만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하다
[……]
볼사리노 모자챙을 내리고
정치가, 대통령, 국무총리도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것만 못하다
-「로마 수첩」

그가 형(型)이 없는 모자를 즐겨 쓰는 이유, “모자챙을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쳐다보는 이유는 눈을 가려 마음을 반개(半開)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사의 무게를 ‘반근’ 덜어내기 이전에 마음을 ‘반개’해서 보는 그만의 독특한 관법은 완벽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지수’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이다. 이와 유사하게,

헐렁한 옷을 입고
(나도 스물, 서른 살 때는 꽉 조이는 옷을 입었단다)
마음은 오히려 헐렁해지는
것을 내가 나를 감시한다
-「헐렁한 옷을 입고」

그는 몸이 조이지 않고 반개되도록 헐렁한 옷을 입되 마음이 헐렁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감시한다. 헐렁한 옷을 입는 것과 자신을 감시하는 것은 외면적으로는 상반되는 일이다. 그러나 미지수를 찾는 행위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너무 헐렁해져 헐렁임으로 가득 차게 되면 감시의 눈길로 조여주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미지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의 지혜를 깔고 있는, ‘반근’을 덜어내는 시인의 철학이 시적으로 변용될 때 여백의 미학을 낳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4월 10일
목이 마르면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청량 음료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갈증과 자연물인 물이 쌍을 이루던 관계가 깨어지고, 물이라는 자연의 자리에 청량 음료라는 문화가 들어선 것이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가 생각나는 아이들. 외로울 때 전자 오락실을 찾는 젊은이들. 이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의 착실한 문화 소비자들이다. 그들의 감각 코드는 상품 목록 코드와 연계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문화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당당한 주체인 양.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조작된 욕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공허함을 대리하여 표현한 문화 상품이 나올 때까지 그들은 공허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허해야 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러고 싶어도 그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정신/물질, 부분/전체, 가상/실재, 원인/결과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 삶을 분별해오던 요소들간에 혼돈이 가중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표현의 전문가인 예술가나 연예인의 주가가 올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내가 시를 쓰고,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고, 「박하사탕」을 두 번 보고, 단전 호흡을 하는 것도 문화 생활이라는 큰 틀 속에서 생산과 소비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나도 이미 조작된 감성의 노예일지 모른다. 아니지, 그런가? 아닌가?

4월 13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가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부처를 죽이는 건 부처를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부처를 알아봤다는 뜻이니까. 선(禪)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닌가.
『그늘 반근』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죽이지?
생각을 뒤집으면, 이걸 어떻게 춤추지?
김영태식으로 말하자면,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

김영태 시인이 자신을 일컬어 초개(草芥)라고 부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지푸라기…… 풀잎과 지푸라기는 둘 다 풀에서 파생된 이미지이지만,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인 풀잎과 바싹 말라 보잘것없는 지푸라기가 지닌 이미지의 차이는 크다. 생명을 가진 자가 내려갈 수 있는 맨 밑바닥 존재인 지푸라기에 자신을 비유한 시인의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정현종 시인의 시 「너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보다……」를 읽고 느낀 바를 김영태 시인은 「무덥고 짜증나는 밤」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무덥고 짜증나는 밤에 정현종이 쓴 「너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보다……」를 읽는다 유쾌해서 핫핫…… 핫 웃음이 폭발했다 A와 B 중 A가 B에게 충고하는 역설이다 이 시가 흔쾌한 것은 (다시 시를 천천히 읽어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크다는 걸 너를 통해서 안다 너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보다 크다는 걸 나를 통해서 알 수 있을까 (네가 그럴 수 있도록 나는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은 노력하지않아도 안다) 핫핫 핫……
-「무덥고 짜증나는 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에고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물질적 차원에서 찾는다. 에고는 나를 내 몸에 가두고 몸 밖으로 달아나려는 나를 가로막는다. 몸 밖에는 통제할 수 없는 혼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에고는 늘 몸을 사린다.

그러나 우리의 에고가 믿든 믿지 않든간에 모든 물질은 자신의 몸 밖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를 거느리고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걸 기[氣]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니, 개똥에도 아우라는 있다). 이 아우라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는 ‘큰 나’이다. 이처럼 물질로부터 뿜어져나온 비정형의 에너지인 아우라는 내가 나를 버리고 상상의 나를 만들어나가는 가능태이다. 그리고 ‘큰 나’가 존재하는 허공과 같은 공간은 그의 시에서 여백의 미로 형상화되어 있다.

김영태 시인은 예술가들의 캐리커처나 피아노와 발레를 소재로 소묘화를 즐겨 그린다. 그는 건필로 마치 지푸라기들을 끌고 다닌 흔적 같은 메마른 선을 그어 대상의 핵심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그의 선묘화는 선으로 대상을 그려낸다기보다는 그 선이 거느리고 있는 여백으로 대상의 이미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을 “내가 생각하는 나”라고 한다면, 선과 선 사이의 여백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큰” 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큰 나’인 여백에만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의미를 지닌 ‘몸’이나 ‘살’(과 같은 지푸라기들)과 같은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마음을 반개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지푸라기들이 계면조 가락에 넋을 얹어 제 팔자를 뒤척이는 소리가 가슴을 파고드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내 몸을 접어서
당신 몸 안에 넣으려고
반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빈 배」

2인무를 춤추는
너의 눈짓은
돌덩이 같은 것도
그냥 녹일 수 있지 않니?
흘겨보다 빨아들이는
감전될 것 같은

네 살의 盛饌은
-「눈짓」

處女로 이 세상에 와서
굳은살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내 살을 퍼가데요
만신창이가 될 즈음
새로 살이 돋아나데요
한 老人이 와서
내 살을 만져보데요
-「굳은살」

4월 14일
새장에 갇힌 새들은 새장의 창살을 마치 자오선처럼 활용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관찰하고 자신의 위치를 계산한다. 머지않아 새들은 그 속에서 도와 사랑을 노래하고, 이 창살에서 저 창살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윽고 때가 무르익으면, 그 불변의 창살은 진실과 과학의 기준이 되어 빛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날개가 진흙 덩어리처럼 묵직하다.
부리 끝이 간지럽다.

4월 19일
케이블 TV에서 속옷 패션쇼 하는 걸 보다가 옛일이 생각나 머리통이 환해졌다. 백화점에서 오리털 파카를 산 어느 일요일이었다. 재봉질한 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오리털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김영태 시인이 생각나(그는 종종 자신을 오리에 비유한다-“개와 싸워 이긴 오리도 있었다/통쾌했다 내가 힘없는 오리여서일까”[「이상한 오리 빽빽이」]) 전화를 걸었다. 차 한잔 마시러 가도 괜찮겠는지…… 좋지. 나는 식품 코너에서 사과 한 봉지를 사들고 댁으로 갔다. 벨을 누르고 한참 동안 기다리자 문이 삐쭉 열리더니 흰옷 입은 자가 들어오라고 했다. 시인은 당시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가 망가져 수선 의뢰를 하느라 통화중이었다. 먹통이 돼서 파란색 면만 나오는 TV 모니터를 배경으로 서 있는 시인의 옷차림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저건 내복이 아닌가! 흰 겨울 내복은 마치 남성용 무용복처럼 눈부셨다.

그는 나 같은 건 아랑곳없이 내복 차림으로 다가와 악수하고, 식탁에 앉아 능숙한 손놀림으로 사과를 깎고, 이빨이 아파서 공사중이라 음식을 잘 씹을 수 없다고 했다. 온갖 잡동사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낡은 18평 아파트는 곧 재건축될 예정이라고 했다. 아파트와 시인은 서로 살을 섞은 듯 닮아 있었다. 한기가 돌자 시인은 그제서야 잠옷을 걸쳐 입고 나왔다.
내 머리통을 환하게 한 그 내복 차림의 만남으로 나는 그를 내심 좋아하게 되었다. 이건 고수다, 내가 졌다. 그런 마음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그 까닭을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클림트의 연필화(鉛筆畵) 1」와 같은 시를 예로 드는 것이 좋겠다.

클림트의 線은
女體의 여행
부끄러움과 피곤함
숨막힘과 나른함이 있고
용서받지 못할 아름다움이
그 안에
-「클림트의 鉛筆畵 1」

이 시는 여백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시 중 하나다. 클림트의 연필화에서 연필 선은 “내가 생각하는 나”를 드러내는 최소화된 표현이며, 삶 속에서 끊임없이 넘실거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여인의 내면은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여백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부끄러움과 피곤함/숨막힘과 나른함”을 읽어내고 있다. 육체의 외곽선만 드러낸 클림프의 그림을 양각화라고 한다면 그 그림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도드라지게 형상화시킨 이 시는 음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림에서 존재를 드러내던 선이 시에서 정반대로 “여체(女體)의 여행,” 즉 ‘여백의 여행’처럼 존재를 가볍게 열어놓고 있는 모습은 한결 자연스럽다.

클림트의 여백은
曲線이 벌어진다
-「클림트의 鉛筆畵 2」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말과 침묵, 존재와 부재, 텍스트와 독자, 나와 너가 만날 때 생기는 제3의 공간이 바로 여백이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수용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 재탄생되는 비정형적인 생성의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무표정한 빈 공간과 다르게 여백은 풍부한 표정을 지닌 심리적·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편으로 그를 유미주의적이고 시구 예술에 경도된(클림트를 아는 조선놈이 몇이나 되겠는가), 심하게 말하면 겉멋든 예술가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용을 소재로 다룬 시들을 읽을 때 특히 그랬다(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춤이라니), 그의 시 중에는 일상적인 소재로 씌어진 뛰어난 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재의 특이성이 눈에 더 띄었던 탓이리라. 이는 하고 싶은 말들은 가급적 여백으로 처리하고 현실의 아주 작은 부분만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표현법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러던 차에 나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보지 못한 적나라한 인간미, 희디흰 정신의 내복을 보았던 것이다. 여백과 같은 내복 안에, 자유 의지와 집중력과 오만함과 끈기가 그 낡은 몸 안에……

사과는 속살이 처녀처럼 단단한
짱구라야 맛있는 걸
자네가 사온 사과를 보고 대견했다
-「開花」

정작 백화점에서 사과를 산 건 난데, 나는 사과를 소재로 시를 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썼다고 하더라도 속살·처녀·짱구와 같은 이미지들을 상상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을 가진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일상이 잘 곰삭아 우러나 있다. 클림트의 연필화에서 “용서받지 못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그의 몫이 아닐까. 예술가에게 있어서 예술만큼 소중한 일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은 어느 날부터
웃음을 잃어버렸다
네가 떠난 후
타일은 변색되었고
샤워 꼭지는 물이 말랐으며
조그만 곤충이
욕조 안에 엎드려 있다
-「잃어버린 것들의 수첩」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벌레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이 원치 않는 변신을 통해 카프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대인의 삶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 부조리하게 전개되는 세상의 폭력이다. 그 힘에 눌려 비참해진 자신의 운명에 놀라 저항하며 몸부림치는 그레고르 잠자.

그러나 시인은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작아진 자신을 곤충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이 받게 되는 상실의 무게를 줄여 이겨내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무엇인가 잃을 수밖에 없다면, 선수치듯 그것을 자기가 먼저 버림으로써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은 처용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때 처용이 추는 춤은 현실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도약이요 새로운 전망이라 할 수 있다. 상처받은 조그만 곤충은 과연 그 욕조 안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기, 보이나요?
스물네 명 요정들이
혼자 걸어나오다가 날개를 접고
다시 걷는 사선 무대가
로맨틱 튀튀가 칠하는 저 물감이
날 저물어도 저 물감들, 토의 발자국들
가슴 저미는 안개 속 우산들
-「망령의 궁전」

요정이란 인간들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을 상상 속의 여성적 상징으로 만든 시적 환상이다. 낭만주의 발레 작품 속에서 발레리나는 지상의 존재가 아닌 “세상 구정물 밖에서 노니는/백조(白鳥)랑 흑조(黑鳥)”(「헐렁한 옷을 입고」) 같은 영묘한 이미지의 요정이다. 욕조 안의 곤충처럼 객석에 앉아 있는 시인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로맨틱 튀튀를 입은 요정들의 춤을 보며 구정물 같은 세상사를 잊고 ‘반근’의 꿈을 되찾아 온전한 ‘한 근’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 기인의 머릿속은/춤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편안합니다”(「빈자리 3」)라고 말하는 시인은 “내가 만난 공기(空氣)를/어린 딸들에게 물려주고”(「로마 수첩」) 싶어 예술적 경험들을 시로 다듬어온 것이리라.

4월 21일
한밤중 잠깨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빗소리인가. 산불로 만신창이가 된 강원도 산들도 쓰린 살을 적시고 있으리라. 나무들이 다 타버려 흙무덤이 되어버린 검은 산들. 생명이 이 우주의 춤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구나.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남길 게 없는
지나온 60년 길 위에
눈이 내리다 멎었다
白痴처럼 나는
그 동안 白紙 위를 걸어왔던가
저 사람이 누구지
춤추는 눈송이들 곁에
제 뼈를
걸레로 닦고 있는
-「길」

60년 살아온 길이 돌이켜보니 백지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시인. ‘한 근’의 삶을 통째로 무로 돌려버리는 백치 같은 시인에게 있어 현실은 요모조모 무게를 달고 계산하고 셈을 치러야 하는 장터에 불과하다. 평생 시를 써온 시인에게 시인이 된다는 것은 “춤추는 눈송이들 곁에”서 제기(祭器)를 닦듯 “제 뼈를/걸레로 닦고 있는” 제의적(祭儀的)인 풍경처럼 보인다.

언젠가 중국집 개화에서 시인과 자장면을 한 그릇 때리고 나오는 길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흑단 지팡이(를 그가 짚게 된 배경은 “그 동안 내가 지탱해온/인간을 잃은 탓도 있다”[「바르셀로나에서 며칠」])가 눈에 띄었다. 나는 평소에 그로부터 샤먼의 혼이 닿은 서낭당 나무, 오색 천이 가지 끝에 매달려 바람결에 춤추고 있는 나무의 이미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제 뼈를 다듬고 걸레로 닦아 지팡이 삼아 짚고 있는 게 아닌가! 불편한 다리가 멈칫하는 순간 그의 걸음을 표나지 않게 거들며 내가 그에게 말했던 것 같다.

자네가 開花에서 말했지, 내 걸음걸이를 흉내내면서 걷는 지팡이라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길은 너무 늦어요라고
-「開花」

목차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그늘
이상한 오리 빽빽이
빈자리 1
빈자리 2
빈자리 3
빈자리 6
빈자리 7
빈자리 8
빈자리 9
빈자리 10
굳은살
너무 많이 울어버린 여인
싱크대 앞 뒤통수
비바람
아주 옛날에
문예회관 대극장 가열 123번
말뚝벙거지
거품
開花
비명

제2부
권력과 케이크
이것은 무슨 연극?
건달
봄장마
남몰래 흐르는 눈물 別章
왔다갔다……
바르셀로나에서 며칠
분홍색

리나와 세나
임동창의 집
클림트의 鉛筆畵 1
클림트의 鉛筆畵 2
그늘 반근 2
그늘 반근 3
손등
아침 식사
망령의 궁전

제3부
큰 달걀 작은 달걀
파란만장
잃어버린 것들의 수첩
사라지는 寺院 위에 달이 내리고
책 마흔여섯 권
문득 저 푸름
사진 작가 두 사람
발레 모음곡
무덥고 짜증나는 밤
늙은 아들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再會
탱고
쿠마
로마 수첩

제4부
빈 배
헐렁한 옷을 입고
눈짓
아빠의 그림
土房
젊은 가야금
梨大 옛 교실
금환빌딩 302호
마리아 호아오 피레스 피아노 독주
마야
佛甲寺
달의 손
이 폭염의 지랄들
그들은 그렇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발문>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장경린

작가 소개

김영태 지음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59년 『사상계』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 『草芥手帖』 『여울목 비오리』 『결혼식과 장례식』 등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음악 평론집, 무용 평론집 등 54권의 저서가 있으며, 1971년부터 1995년까지 8차례의 소묘 그림 개인전을 가졌다. 1972년 현대문학상, 1982년 시인협회상, 1989년 서울신문사 제정 예술평론상, 2004년 허행초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 동아무용 콩쿠르·유니버설 키로프 발레 콩쿠르·서울 국제무용제 심사위원과 1989년 무용평론가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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