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아시아 사회 변동에 관한 신화적인 이론들의 허상을 비판하고 그 실체를 밝혀내는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의 사회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비교역사적 연구를 통해 신화의 진정한 실체를 알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비로소 우리 자신의 역사를 객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에]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해온 많은 사람들은 90년대 들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독재 국가 가운데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주었는데, 이들 경제 성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고 국가의 업적을 논하는 외국 학자들(대표적으로 Chalmers Johnson, Alice Amsden, Robert Wade)의 견해가 소개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의 논의가 독재 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들의 논의가 국내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죽은 박정희의 부활로까지 진전되었다. 동아시아 경제 성장을 둘러싼 논쟁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많은 사람들의 줄기찬 투쟁은 그 빛을 잃은 채, 독재 정권을 방조하였거나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던 세력들이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개석(張介石),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의 업적을 선전하기에 바빴다. 그 동안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여온 민주 인사들에게 이와 같은 평가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철저하게 비민주적이었던 스탈린 정권의 경제 정책이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하면서, 스탈린 정권을 비판한 서구의 우파 학자들이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유사한 것이었다.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대공항으로 나락에 빠져들고 있던 1930년대, 스탈린은 전체주의 계획 경제를 통하여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구에 보여주었다. 그 당시 경제 성장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스탈린의 계획 경제 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경제 체제라고 인식될 수도 있었다.1)
더 더욱 당혹스러운 점은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한국의 우파들이 박정희 체제를 나서서 옹호한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으로 박정희를 높이 평가한다면, 이들은 분명히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주변부 봉건 사회였던 러시아를 가장 발전된 산업 국가인 미국과 대등한 경쟁국으로 부상시킨 스탈린에 대해서 높이 평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을 숭상해야 할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신화를 비판하면서 동아시아 경제 성장 방식이 스탈린의 소련 경제 성장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도 왜곡된 정보로 인해서 생긴 ‘신화’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는 오늘날의 신화는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률이 1 내지 2 퍼센트면 형편없이 낮은 경제 성장률이고 적어도 5퍼센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성장 도착증을 앓고 있다. 이러한 병은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 가운데 산업 혁명기 경제 성장률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2) 혁명이라고 부르는 산업 혁명기 경제 성장률이 지금 우리가 형편없는 성장률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면,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수많은 상품 정보는 정보화 시대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파되지만, 인류 역사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은 정보화 시대에도 전파되기 힘들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무지가 신화를 만들어내고 신화는 걷잡을 수 없는 광기를 전파시키고 있다. 이제 국내외 학자들의 ‘과학적(?)’ 논의를 통하여 신화는 허상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성장 신화의 덫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이러한 신화는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20세기말 대혼란을 낳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중요한 신화 가운데 하나인 동아시아 사회 변동에 관한 책이다. 지난 수년 간 동아시아에 관한 무수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이 외국 학자들에 의해서 씌어진 것이어서 동아시아는 외국 학자들 눈을 통하여 대변되고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역사는 이들 학자들의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사례로 이용되면서, 일방적으로 왜곡되고, 편의주의적으로 해석되면서 동아시아 신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신화들이 국내 학자들에 의해서 소개되고 받아들여지면서, 신화는 현실을 규정하는 현실적인 권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이승만이 부활되고, 박정희가 부활되고, 봉건적 권위주의 문화가 부활되고 있다.
신화는 세 가지다. 첫째는 국가 신화다. 권위주의 발전 국가 덕택에 경제가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권위주의 국가의 비열한 독재자들이 경제를 성장시킨 영웅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를 막론하고 정치적 자유가 억압당하여도 경제만 잘 되면 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군사 독재를 지지해왔다. 이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고는 역설적으로 단기간에 소련 경제를 서방과 대등하게 만든 스탈린의 경제 정책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극좌파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둘째는 ‘아시아적 가치’ 신화다. 이는 아시아 사회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가 경제 성장의 주된 요인이었다는 유교자본주의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같은 독재자들에 의해서 제기되어서 사회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 서구적 가치에 대한 아시아 보수 정치인들의 정치적 반발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마치 동아시아 문화 담론처럼 전파되었다.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지니고 있는 반동적 근대화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없는 상태에서 제시된 아시아적 가치론은 정치한 학술적 논의로 전개될 수 없었다. 대신에 이제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는 특수한 견해로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적 가치론은 나치즘처럼 경제 성장을 이룬 후진국의 열등감을 보상하고, 자존심을 되살리는 수구적 이데올로기로 언제든지 다시 부활될 수 있다.
셋째는 세계화 신화다. 이는 각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긴밀하게 통합되고, 정보화가 진전되어 전세계가 시공간적으로 통합되면서 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사람들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소망 사고wishful thinking’에 기초하고 있다. 기존의 지역간 불균등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보화와 세계화가 논의되고 있다. 냉엄한 현실로 존재하는 세계 체계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과 갈등은 세계화에 의해서 일시에 사라질 수 없다. 오히려 세계화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연상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들 세 가지 신화들은 때로는 서로 대립적이면서 때로는 서로 보완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하여 때로 동아시아 사회들은 모두가 동질적인 사회처럼 그려지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내부적으로 대단히 이질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회로 취급된다거나 혹은 이들 국가가 성취한 경제 성장을 동일한 독립 변수로 설명하기 위하여 무리한 일반화의 오류가 범해지기도 하였다. 일방적으로 서양 학자들이 경제 성장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기여한 역할을 강조하면서, 일시에 무자비한 ‘독재자들’이 동아시아 경제 성장을 만들어낸 우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는 국내외 논의들도 눈길을 끌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적 가치 덕분에 경제가 성장했다는 주장은 외국인 학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신화들을 진정한 신화로만 남아 있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즉 필자는 세 가지 신화가 사회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비교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사이드E. Said가 서구 오리엔탈리즘도 제국주의 유럽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구미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극복도 집단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을 특수한 과거의 지적 전통(유교, 도교, 불교 등)에서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보편적인 사회과학적 담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외국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 가지 신화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화들도 많다. 이를 들춰내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를 비교적인 관점에서 객관화시켜 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때로 기존의 이론이나 논의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였다. 기존의 논의들과 똑같은 논의를 여기에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경쟁적인 논의들 사이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합성 문제다. 얼마나 역사적 경험과 적합한지가 분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제시된 논의는 사회과학적 논의가 아니라 한낮 주장으로 혹은 견해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 의식 아래서 집필되었다.
이 책의 일부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국내외 학회에서 발표되었다. 제1장에서 제시된 기본적인 생각들은 이미 1996년 덴마크 올보그Aalborg 대학 발전 및 계획연구소Institute of Development and Planning에서 출판된 『작업 논문Working Paper』(52)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수정을 거쳐서 1996년 2월 27일 버클리 대학 한국학 센터 콜로키움에서 발표되었다. 축약본은 『네 마리 아시아의 용The Four Asian Tigers』(Eun-Mee Kim, ed., Academic Press, 1998)의 제1장으로 출판되었다. 제2장은 1995년 『동향과 전망』(여름호)에 수록된 논문을 토대로 최신 자료를 보완하고, 가필한 것이다. 제3장은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내는 『정신문화연구』(1998년 70호)에 실린 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제4장은 1994년 독일 비엘레펠트Bielefeld에서 열렸던 제16차 세계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하였다. 제6장은 1995년 10월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대학 사회학 연구소Sosiologisk Institutt에서 행한 강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후 이 글은 1997년 12월 한림대학교 아세아문화연구소 주최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민족주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되었다.
이 책은 연구실에 홀로 앉아서 집필된 것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결코 저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연구 성과도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앞서서 이루어낸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지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일부를 읽고 논평을 해주신 한림대 사회학과 유팔무, 성경륭, 전상인, 박준식, 이재혁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제1장과 제2장에 대한 한림대 정치학과의 김영명, 김인영 교수의 논평도 큰 도움이 되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히고자 한다. 한림대 철학과의 장춘익 교수와 전북대 사회학과 정철희 교수는 제6장을 읽고 유익한 논평을 해주셨다. 고려대 정외과 임혁백 교수와 연세대 사회학과 김동노 교수의 논평도 마무리 단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전적으로 필자의 의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음을 아울러 말씀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준 서남재단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동아시아 연구에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이고 있는 서남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책의 출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재단 관계자의 도움과 자극으로 이 책의 출간이 훨씬 더 빨라졌다.
1999년 11월, 신광영
1) 1913년에서 1950년까지 소련은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미국에서 1.6%였고, 영국에서 0.8%였으며, 소련에서는 1.8%였다. Angus Maddison, Monitoring The World Economy 1820∼1992, Paris: OECD, 1995, p. 62 참조.
2) 배이로치Paul Bairoch는 1800년부터 1913년까지 유럽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1.1%라고 추정하였다. 급속한 경제 성장이라는 산업 혁명의 신화가 유지되었던 이유는 역사에 대한 학자들의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Paul Bairoch, Economics & World History: Myths and Paradoxe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xiii.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일찍이 인류 문명의 위대한 새벽을 열었던 동아시아는 근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동점(東漸) 물결 속에서 민족의 보위와 민중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간난한 행보를 거듭해왔고, 냉전 체제의 본격적 작동과 함께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혹심한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져왔다. 그 결과 냉전이 전지구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동아시아는 그 족쇄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요컨대 동아시아는 세계사적 모순의 가장 난해한 결절점(結節點)의 하나인 것이다.
한반도는 그 모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주변 4강의 이해가 한반도라는 일점으로 복잡다기하게 얽혀 아직도 휴전선 위에 떠 있는 아슬아슬한 ‘평화’를 감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진정한 평화의 이름으로 이를 타파할 고도의 슬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외국학 수준은 그다지 높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특히 한반도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 선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우리의 이웃, 즉 동아시아 각 나라, 각 민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냉전에 스스로 적응한 그 동안의 서구 편향 속에서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과의 그 유구한 관계 속에서 모화파(慕華波)는 넘쳐나도 중국을 아는 이는 적었고,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친일파가 양산되어도 일본을 아는 이 또한 적다. 친러파 또는 친소파, 지금도 들끓는 친미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역(逆)의 진리도 성립한다. 항중파·항일파·반소파·반미파 역시 반대하는 대상에 대한 옳은 인식 위에 서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우리는 서남 동양학술총서라는 새로운 기획을 출범하려 한다. 우선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지만 역량의 증대에 따라서 동남아시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동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해나갈 것을 기약한다. 우리의 학문적 축적이 뜻있는 이들의 광범한 동참으로 착실히 두터워지고 깊어지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에 깊이 물든 20세기의 우울한 황혼을 진정으로 넘어설 새로운 문명을 머금은 사상의 씨앗이 자라나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평화적 해결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인류사의 새로운 도정이 열릴 바로 그 단서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서남 동양학술총서 편집위원회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서문
제1부 동아시아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
제1장 동아시아 경제 성장의 정치경제학
제2장 동아시아 경제 체제의 재구조화
제2부 동아시아의 민주화 이행
제3장 동아시아의 민주화
제4장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국가의 노동 정책
제5장 시민 문화, 시민 사회 그리고 사회 민주화
제3부 동아시아와 사회 이론
제6장 동아시아와 근대성
제7장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