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길의 침묵』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쫓아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극치는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얼핏 환몽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은밀한 파장, 몸과 마음의 감각들의 섬세한 결을 관찰하고 조형해내는 솜씨는 지극히 실재적이다. 그리고 시인은 실재적인 것들의 미세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와중에 이 세상 것들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이 언어들 사이로 번져나가고, 아름다움은 세상과 세상 바깥의 경계에 머물며 허무의 아우라를 두른다.
[시인의 말]
낚싯대를 펴놓고 축축한
바위에 웅크리면
그 발 아래 우주선 같은
손바닥만한 말미잘이 해안 가로등
불빛을 흠뻑 머금고 있다
나는 저 바위꽃이 열어놓은 문을 통과하여
또 다른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
1999년 가을, 김명인
[시인의 산문]
남들이 방법에 기댈 때 나는 내용에 기댄다. 내용이라니! 아직도 거쳐가야 할 여분의 굴곡이 있는가? 방법을 곧 규범의 현실이라고 바꾸어놓아도 나는 끝내 그 틀에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어쩌지 못하는 내향성이 끝없이 나를 안으로 움츠리게 한다.
진액이 다 빠져나간 술지게미의 일상을 나는 살고 있지만, 한 지친 모험이 무릅쓰고 가려고 하는 미지가 어디엔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눈물겨움에 실려 나는 지금 풍경의 풍파 위에 이렇게 떠 흔들린다.
▧ 시인의 말
제1부 아버지의 고기잡이
봄길
침묵
아버지의 고기잡이
종이배
문패
밤도깨비
소태리 點景
長春
咸白山
사십 일
예밀리
우리도 저 산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제2부 구멍
관객
구멍
밤의 주유소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
석탄 속 사슬
예언
풍화를 읽다
여우를 위하여
충돌
오래된 사원 6
오래된 사원 7
의자
江 학교
審陽
제3부 가족 소풍
다시 바닷가의 장례
가족 소풍
순결에 대하여
무지개
할머니
걱정
食道
돌밭
저녁 눈
저 등나무꽃 그늘 아래
폭설
꽃상여
밤 소나기
바닷가 물새
제4부 하늘 누에
불곰
달과 과학
하늘 누에
무료의 날들
실직
밤 두시의 전화
안개비
복개천이 있는 풍경
식당집 여자
바다 炭鑛
척산 어귀
마야 가는 길
고래
▧ 해설| 모래의 장인(匠人)을 위하여·김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