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를 내면서
이 시대의 병폐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의식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이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에서 연유하는 정신적 복합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 패배주의는 한국 현실의 후진성과 분단된 한국 현실의 기이성 때문에 얻어진 허무주의의 한 측면이다. 그것은 문화,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서 한국인을 억누르고 있는 억압체이다. 정신의 샤머니즘은 심리적 패배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것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의 분석을 토대로 어떠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식민지 인텔리에게서 그 굴욕적인 면모를 노출한 이 정신의 샤머니즘은 그것이 객관적 분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신의 파시즘화에 짧은 지름길을 제공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여 객관적으로 세계 속의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 현실의 투철한 인식이 없는 공허한 논리로 점철된 어떠한 움직임에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에도 휩쓸려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진정한 문화란 이러한 정직한 태도의 소산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신을 안일하게 하는 모든 힘에 대하여 성실하게 저항해나갈 것을 밝힌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폐쇄된 국수주의를 지양하기 위하여, 한국 외의 여러 나라에서 성실하게 탐구되고 있는 인간 정신의 확대의 여러 징후들을 정확하게 소개, 제시하고, 그것이 한국의 문화 풍토에 어떠한 자극을 줄 것인가를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폐쇄된 상황에서 문학 외적인 압력만을 받았을 때 문학을 지키려고 애를 쓴 노력이 순수문학이라는 토속적인 문학을 산출한 것을 아는 이상, 한국 문학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알려져온 것에만 한정시킬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한국 문학은, 한국적이라고 알려져온 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보편적 인식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노력마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태도는 한국의 문화 풍토, 혹은 사회 정치 풍토를 정확한 사관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취할 또 하나의 태도는 한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의 제반 분야에 관한 탐구의 결과를 조심스럽게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라고 우리는 썼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그것에 쉽게 빨려들어가 한국 우위주의란 패배주의의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이 잡지는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비평을 주 대상으로 한다.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모든 글을 자세히 객관적으로 조사 분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문제가 될 만한 글을 전문 재수록한다. 그것은 그 글이 주는 문제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다시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며, 거기에서 추출된 문제가 과연 타당성 있는 문제인가를 필자 여러분과 ‘함께’ 다시 반성해보기 위한 것이다. 그 수록 대상은 시, 소설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론 전 분야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여러 인문 사회과학 부분의 논문까지를 포함한다.
{수록 글 소개 생략}
1970년 8월
김병익, 김치수, 김현 씀
창간호를 내면서
|비평|
김현승 60년대 시의 방향과 한계 – 시와 생명력
김병익 정치와 소설 – 어떤 파리에 발단하여
김 현 한국소설의 가능성 – 리얼리즘론 별견
김치수 풍속의 변천
노재봉 한국의 지성풍토
김철준 한국사학의 제문제
하길종 영화 미디엄의 변화 – 영화의 순수화와 개인화
롤랑 바르트(번역) 작가와 지식인
김윤식 비평·의식의 문제·천부·수련
최창규 시대구분의 문제점 – 경제사학회변 : 한국사시대구분론 / 한 탁 근 저 : 한국용사
|시|
송욱 바다 외 1편 (+안개)
정현종 소리의 심연 외 1편 (+사랑 사설 셋)
윤상규 얼음산 외 1편 (+홀로 들을 가며)
이성부 철거민의 꿈 외 1편 (+나를 닮은 사내)
조태일 털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외 1편 (+어메리카)
|소설|
강준식 증세
홍성원 즐거운 지옥
박순녀 어떤 파리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