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9월 16일 | ISBN 9788932011028

사양 · 173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블랙 유머의 작가, 카프카가 작가의 아버지에게 썼으나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 독문학자 이재황의 수준 높은 번역으로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 깃들여 있는 그만의 주제적 특성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될 것이다.

[머리말]

카프카가 이 ‘편지’를 쓴 것은 그가 폐결핵에 걸려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5년 전인 1919년의 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였고 그의 창작 활동은 절정에 달해 있던 때였다. 장편인 『실종자』(『아메리카』)와 『소송』은 집필이 완료된 상태였고 「판결」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 의사」 등 그의 대표적인 중·단편소설은 책이나 잡지를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이처럼 삶과 문학에서 원숙한 경지에 이른 시기에 그가 장문의 편지글을 통해 아버지를 상대로 이런 전대미문의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이 아버지를 향해 쓴 한 통의 편지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이지만 그는 이 글을 결코 아버지에게 보낸 적이 없으며 한 통의 편지로 읽기에는 글의 분량이 너무도 방대하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단순한 편지일 수만은 없고 오히려 편지글 형식의 색다른 문학적 시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제 면에서도 이 글은 카프카 문학의 중심적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부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또한 이 편지는 그가 남긴 그 어떤 글에서도 볼 수 없는 풍부한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편지나 일기 등에서도 그는 간간이 자신의 삶과 과거를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대부분은 단편적이고 에피소드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을 뿐, 이처럼 포괄적이고 상세하게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은 없다.

카프카 문학의 난해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언급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 곳곳에는 수수께끼 같은 형상이나 사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도무지 전체를 알 수 없는 미로들이 끝도 없이 깔려 있어서 그 속을 헤매며 걷고 있노라면 마치 꿈속을 가고 있는 듯하고 머릿속엔 크고 작은 물음표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래서 ‘수수께끼’ ‘미궁’ ‘신비’와 같은 말들은 그의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늘 따라다니는 상투적인 용어가 되어 그의 문학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한테나 익숙해진 그의 창백하고 메마른 얼굴과 그 안에서 커다랗게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진지하고 고독하고 몽상적인 눈빛은 그의 문학 세계에 신비감을 더해주는 또 다른 요소가 되어 그가 만들어낸 그로테스크한 형상들과 더불어 우리의 뇌리에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문학은 명백히 현실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현실과의 긴장을 계속 유지한 채 현실의 주변적이고 표면적인 현상들을 넘어서 끊임없이 그 한복판의 본질적 핵심을 겨냥하는 존재론적 통찰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속했던 현실은 20세기 초반 서구의 자본주의적 현실이었다. 그는 자본주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종속의 체제이다. 즉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되는 온갖 종속 현상들의 체제이다. 모든 것은 종속적이고, 모든 것은 사로잡혀 있다. 자본주의는 세계와 영혼의 한 상태이다.” 카프카는 바로 이 ‘종속의 체제’가 개인의 영혼 속에 내면화되는 것에서 자본주의적 권력의 본질을 본 것이다. 이 내면적 종속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개인은 세계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갖게 되며 그 결과 필연적으로 세계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고립되어가는 체험을 반복하게 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도피하는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결코 총체적으로 인식될 수 없고 개인의 주관적 경향과 충동이 투사된 상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 결과 개인의 의식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발견하고 자신의 내면 속에 갇혀 출구 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하고 만다. 거기에서 바로 현대인의 위기가 시작되고 카프카의 문학은 그로부터 비롯된 온갖 위기의 현상들에 대한 형상화이며 그 본질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런 위기 속에서 무기력하게 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송」의 요제프 K.나 「성」의 측량사 K.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각기 ‘법’과 ‘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부단히 접근해가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도중에서 좌절과 절망을 겪게 되고 목표에 의해 거부당한 채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때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인 ‘법’과 ‘성’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개인들을 맹목적으로 지배하는 거대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상징적 형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공허한 목표를 향한 그들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카프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는 바로 그런 현실의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거인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늘 모든 사물의 척도였으며 가부장적 세계 질서의 대변자로 여겨졌다. 그는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지배-종속 메커니즘의 실체를 거듭 체험적으로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은밀히 모색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어왔다. 발터 벤야민도 이와 관련하여 ‘부자 갈등의 모티프’는 카프카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불변의 상수(常數)”이며 카프카에게서 “관료 세계와 아버지의 세계는 동일한 세계”라고 지적하였다. 한편 정신분석학적 연구의 대변자들 역시 카프카와 그의 아버지간의 이 독특한 관계에 주목하여 카프카의 문학 전체를 소위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분석해내고자 하였다. 그들은 이 부자 갈등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이론을 적용할 매우 적절한 모델을 보았고 누구도 풀 수 없었던 카프카 문학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결정적인 열쇠를 손에 쥐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어쩌면 카프카 자신도 그런 해석의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저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씌어졌습니다. 글 속에서 저는 평소에 직접 아버지의 가슴에다 대고 토로할 수 없는 것만을 토로해댔지요.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습니다”(『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그러나 이 편지를 그가 원숙한 나이에 자신의 삶 전체를 반성적으로 굽어보며 썼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때 그 해석의 방향은 거꾸로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그의 작품 전체를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인과적으로 도출해내어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그의 작품으로부터 해석해내어 그것이 작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개인적 의미를 갖는 것임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어야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다.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길을 꿈꾸었다. 그것은 곧 ‘결혼’의 길이었는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그 자신도 아버지처럼 가장이 되어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결혼이란 분명 더없이 통렬한 자기 해방과 독립에 대한 보장입니다. 결혼을 하면 저도 가정을 갖게 될 텐데, 가정이란 제 생각에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것이지요”(『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그러나 그는 ‘결혼’에 대해 이런 환상을 품는 동시에 그 안에 잠복해 있을 위험스러운 요소들도 함께 감지하고서 금방 부정적인 자세로 바뀐다. 이런 식으로 그의 갈등은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두 가지의 마음에서 비롯되어 그 둘 사이에 머무른 채 선뜻 어느 한쪽으로의 결단에 이르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져 절망으로 증폭된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결국 세 번에 걸친 그의 결혼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마는데, 그 이유를 그는 자신의 ‘결혼 무능력’ 때문으로 판정한다. “그것은 제가 결혼할 수 있기에는 명백히 정신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점입니다. 그 점은 제가 결혼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납니다. 밤낮으로 머리가 화끈 달아올랐고, 더 이상 생활이란 것을 할 수 없었지요.”

아버지로부터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이렇게 무산되었고 카프카는 끝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었고 그의 작품 속 곳곳에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아버지’는 그가 평생을 두고 극복하고자 했던 깊은 상처인 동시에 그의 정신 세계를 끊임없이 엄습하였던 커다란 화두로서 그의 문학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그에 대해 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카프카 자신의 생생한 고백과 증언을 전하고 있다.
-「옮기고 나서」 전문

목차

아버지께 이 글을 올립니다
옮기고 나서

작가 소개

프란츠 카프카

■저자 역자 소개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는 1883년 7월 3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1년 프라하의 왕립 독일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8년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법률가로 입사하여 1922년 은퇴할 때까지 14년간 이곳에서 근무했다. 1904년 단편 「어느 싸움의 기록」을 시작으로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소설과 『실종자』 『심판』 『성』 『소송』 등의 장편소설, 그리고 산문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과 서간문과 일기에 이르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 키얼링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하여, 프라하 슈트라슈니츠 유대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카프카 작품의 대다수는 그의 막역한 벗이자 편집자였던 막스 브로트에 의해 카프카 사후에 정리, 출간되었다.

이재황

1961년 충북 출생,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안나 제거스의 망명기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이후 서울대·한양대·건국대 등에서 독문학을 강의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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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두영
    2000.04.18 오전 12:00

    저는 독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독문학하면 괴테,토마스 만 등을 떠 올리시겠지만 저에게 있어 독문학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다름아니라 카프카라는 작가입니다. 고등학교때 카프카의 작품을 처음 대한 후 저는 덕분에 실존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학평론가가 카프카를 실존주의 문학의 효시라고 하던군요. 그의 작품을 읽어 보신다면 이런한 의견에 수긍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카프카의 작품은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었지만 그의 진솔한 삶이야기는 그동안 읽을 수 없었는데 지난 겨울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예쁜 제목을 가진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여행을 갈 기회가 있어 버스안에서 읽게 되었는데 감동이 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 카프카의 문학은 대립의 문학이라고 하더군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대립……이 책을 읽으며 저는 또 하나의 대립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와의 대립. 그래서 왠지 모를 억압감을 카프카의 문학에서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생긴 카프카의 얼굴을 시기별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독문학에 관한 많은 책을 출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