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의 토속적 문화 가치 체계와 문명 비판의 시선을 통해서 한국인의 근원적 심성을 그린 작품.
[머리말]
개정판을 내면서: 고려인삼과 그물 이야기
육이오 전쟁 뒤에 한국의 관리 한 사람은 어느 미국인 의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약품과 물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때에 그에게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기도 하였다. 그 미국인 의사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관리는 그 의사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하고 고심을 했다.
그는 동양의 신비스러운 명약인 인삼을 가장 크고 좋은 것으로 구하여 공항을 떠나는 미국인 의사에게 주었다. 포장지 속에다가 그 명약의 신통한 효능과 복용 방법을 소상하게 적어 넣었다. 그 의사가 돌아간 지 몇 달 뒤에 그 의사한테서 소포 하나가 날아왔다. 관리는 그 의사가 자기의 선물을 고맙게 받아서 잘 복용했으며 많은 효험을 보았다는 편지와 함께 그에 대한 답례로 선물을 보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소포를 뜯어보았다.
한데 소포 속에는 그가 의사에게 준 인삼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속에 넣은 편지에는 그 인삼들을 되돌려보낸 까닭이 씌어 있었다. 그 의사는 자기 병원의 실험실에 의뢰하여 얻어낸 ‘인삼에 함유된 성분과 그 함유량’을 도표로 그려놓았다.
관리는 눈앞이 아찔했다. 그 ‘함유된 성분과 함유량’에 의할 것 같으면 인삼이라는 것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었다. 탄수화물이 몇 퍼센트, 수분이 얼마, 철분이 얼마, 섬유질이 얼마……
‘나는 이걸 먹고 싶지 않으니 당신이나 많이 잡수십시요.’ 그 의사가 미개한 나라의 관리를 향해 이렇게 빈정거리는 듯싶어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어부들만 그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대로 고기를 잡아먹고 살(사냥할) 자기만의 그물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그 그물 가운데는 코가 작은 것이 있고, 큰 것도 있고 중간쯤 된 것도 있다. 평면으로 된 그물이 있는가 하면 이중으로 된 것도 있고 삼중으로 된 것도 있다.
평면으로 된 그물은 고기를 어떤 공간에 가두어 잡지 않으면 안되므로 그물 통을 만들어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삼중망은 세 겹으로 된 그물이므로 그냥 한 줄로만 쳐놓아도 고기가 얽히고 설킨 세 겹 그물 속에 감겨 잡히도록 된 것이다.
일정한 자리에 그물 통을 막아놓고 해류를 따라 지나가는 고기를 유인하여 잡는 정치망도 있고, 고깃배 뒤에 그물을 달고 속력을 세차게 내어 끌어서 고기를 포획하는 저인망도 있고, 밤바다 한가운데에 휘황한 불을 켜고 고기들을 유인한 다음 가장자리에 그물을 둘러쳐서 잡는 방법도 있다. 또 낚싯바늘에 미끼를 꿰어 한 마리씩 낚는 방법도 있고, 줄에다가 수백 개의 낚시들을 달아 많은 양의 고기들을 낚는 주낚질도 있다.
그물코가 큰 그물을 쓰는 어부들은 잔고기들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큰 그물코 사이로 다 빠져나가버리므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다. 또 그물코 작은 그물을 쓰는 어부들에게는 큰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 잡히더라도 어부들은 그 큰 고기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잔고기를 노리는 어부들은 큰 고기를 잡고기로 취급하여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냥 횟감 매운탕감으로 써버린다.
그 미국인 의사는 자기가 사용한 그물이 인삼 속에 들어 있는 신통한 약효를 잡아낼 수 있는 그물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있었을 터이고, 자기의 그물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떠한 고기든지 다 잡아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터이다. 인삼 속에 들어 있는 신통한 성분들은 그 합리주의자의 착각과 오만을 비웃으며 그의 그물을 유유히 빠져나갔을 것이다.
초판본을 내놓은 지 13년 만에 세세히 읽으면서 문장들과 내용들을 많이 손보았다. 개정판을 내준 문학과지성사 여러분께 감사한다.
1996년 10월, 장흥 해산토굴(海山土窟)에서 한승원
작가의 말
우리들의 바짓가랑이, 옷섶, 머리숱 사이사이, 수백 수천의 털구멍들 속에 앞장서간 사람들의 넋가루들이 먼지나 습기처럼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흰구름 저편의 그윽한 하늘 자락 속에서, 나무숲 사이의 음침한 그늘 속에서, 실지렁이 하늘거리는 웅덩이의 뱀미나리와 독새풀 뿌리 근처 어디쯤에서, 먼지 가루 같은 별들 까물거리는 도회의 밤하늘 저쪽 어디쯤에서, 바람깃 너울 따라 스멀거리거나 손짓하는 검은 얼굴들.
전율에 놀라 눈뜨면 심장의 박동이 관자놀이와 뒤통수를 달리고 있다. 한밤중, 마당으로 나온다. 하늘과 땅과 내 가슴에 연결되어 있을 끈 같은 것.
나른하다. 갈빗대, 어깻죽지, 허리, 뒷목이 묵지루하다. 무기(巫氣)인지도 모른다. 그 울렁거림과 전율은 비와 바람과 안개를 예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상들 가운데 무당이 있었을까. 차라리 무당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뛰고 춤추며 노래하며, 피멍 같은 한의 어둠 속을 내내 울며 떠도는 죽은 넋들을 풀어주고 달래주며 신들려 흥청거리고 살아가게 말이다.
도자기 공장을 쫓아다니면서 가마에 불 지피는 것을 보고, 바슐라르를 기웃거리고, 무당들을 만나면서 불의 자궁과 불의 생명력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것이 내 뼛속에 어떻게 와서 닿아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목처럼 싱싱하고 질긴 악마적인 힘과 불의 의미를 천착해갔다.
이 소설에 대하여 쇼비니즘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소설들을 쓰면서 문화의 균형 감각을 생각했다.
이 소설들을 머릿속에 뒹굴리기 시작한 80년초부터 「불배」(『문학사상』, 1981. 1), 「불곰」(『한국문학』, 1981. 6), 「불의 딸」(『문예중앙』, 1981. 가을), 「불의 아들」(『현대문학』, 1981. 11) 「불의 門」(『한국문학』, 1982. 5)을 잇달아 써내기까지의 두 해 동안을 나는 숫제 불 속에서만 신이 들려 살아온 셈이었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은 낱낱이 떼어놓으면 중편소설의 모양새가 되지만, 한데 묶어놓으면 얼마쯤은 장편소설로서 뜻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다시 쳐낼 곳은 쳐내고 덧붙일 곳은 덧붙이어 책으로 묶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문학과지성사의 동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1983년 4월, 우이동에서 한승원
개정판을 내면서-고려인삼과 그물 이야기
작가의 말
불배
불곰
불의 딸
불의 아들
불의 문(門)
[해설] 샤머니즘은 한국인의 정신인가·김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