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에 대한 기존의 실재적 정의와 제도적 정의를 분석 검토하고, 이어, 다각적이고 철학적인 여러 이론들을 포용하면서 보다 포괄적이고 참신한 관점의 제시를 통해, 예술에 대한 해석의 논리를 정리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내가 다니던 벽촌의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에서 편연(片淵)이라 쓰고 가다부찌라고 부르던 일본인 여선생님이 나의 담임이었다. 두터운 로이드 안경을 쓰고 음성이 특한 편인 그 분은 한때 만삭이 된 둥근 배를 안고 교단에 선 때도 있어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고 추측되는데 가끔 시골 꼬마들을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어앉혀놓고 좌선 같은 것을 시켜서 그 당시엔 이상한 선생같이 보였다. 그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교정에서 흔히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 나는 그 분의 캔버스 위에 형상을 나타내고 생생한 색깔로 칠해지는 교사(校舍)며, 화원 등에서 무한한 신기함과 매력을 느끼곤 했었다. 얼마 후 석천탁목(石川啄木)의 시, 유도무랑(有島武郞)의 소설 등에서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었고, 해방 직후 서울 부민관에서 유치진의 연극을 보고 예술이 주는 감동을 체험했고, 그 후 음악회 등을 통해서 예술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 중학 시절에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었고 대학에서 불문과를 택하게 된 것은 결국 내가 무의식적으로 예술에 알 수 없는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슬프게도 타고난 재주가 없어 예술가의 길에서 벗어나 딴 직업을 갖게 되었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나의 막연한 향수는 버릴 수 없었으며 예술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아름답고 가장 멋있는 것으로만 느껴진다.
예술이 갖는 신비로운 힘은 무엇일까,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답을 찾으려고 나는 지난 약 10여 년 간 예술 철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가르쳐왔다. 이런 물음에 대해 일관성 있고 통일된 대답이 찾아질 듯 느끼게 된 것은 1977년 여름 ‘인문과학 국가 연구비’를 받고 단토의 주도하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열렸던 12명의 예술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들의 두 달 간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난 후였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단토나 디키의 새로운 이론에 접하게 되었고 그 후 대충 그런 테두리에서 예술에 대한 총괄적인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1980년 가을에서 1982년 여름까지 풀브라이트 교환 교수 자격으로 서울에 있는 동안 이대와 서울대에서 각각 한 학기씩 예술 철학의 강의를 맡으면서 예술 철학의 윤곽을 대충 정리한 다음 1982년 1월초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82년 3월에서 12월까지 그것을 『문학사상』에 연재하게 됐었다. 이 책은 이것을 한데 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