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시에서 일상시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놓은 그의 세 번째 시집 『크낙산의 마음』에서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의식의 이중 구조를 날카롭게 직시하면서, 그것이 드러내는 타락하고 왜곡된 모습들을 반어적 시선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이 아이러니는 상투적인 현실 인식을 거부하는 시인의, 집요한 정신이 표현된 것이다.
[시인의 산문]
[……] 유교를 믿는 보수적인 집안에 태어나서 소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예술가 기질이란 것이 없다. 예술가나 문인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과는 어딘가 좀 다르고 희한한 에피소드도 남기는 수가 많은데, 나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전혀 없다. 그렇다고 남다른 감수성이나 창조적 상상력, 또는 빼어난 글재주를 지닌 것도 아니다. 사십대 중반에 이르도록 그저 고지식한 훈장 노릇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왔을 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범하고 심오한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 덕분에, 소박하고 평범한 나의 글이 때로는 눈에 띄기도 하는 모양이다.
[……] 그런데 나는 평범하게 살면서 평범한 글을 쓰고 있으니, 결국 생활 문학도 모두 보잘것없는 꼴이다. 하지만 타고난 체질을 고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므로, 주어진 대로 나답게 살면서 나다운 글을 써보려고 한다. 혹시 내게도 어떤 글쓰는 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오전에 시를 쓰는 버릇일 것이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이 남에게 쉬운 말로 똑똑하게 전달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쓴다. 그리하여 누구나 읽어서 알 수 있는 시를 한편 끝맺은 날은 기분이 좋아서 술을 한잔 마시기도 한다.[……]
-1984년 5월 「평범한 시인의 자서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