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면서, 그것도 부유한 미국에서 여유있는 중산층 생활을 하면서, 그럼에도 쉼 없이 생산되는 그의 시들은, 그 글쓰는 행위 스스로를 통해 진정한 삶의 확인과 새로운 인식에의 열망을 내포한다. 그 확인과 열망은 자신의 생활이 안온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부끄럽다는 자각과, 고국의, 그리고 자신이 고국을 떠나던 상태와 유사하게 빈곤하고 억압받는 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의 이 자각과 관심은 이 시집에서 모여 사는 것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꿈으로 돋구어지고 있다.
[시인의 산문]
나는 아직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든가 화해 같은 것을 믿고 싶다. 화해라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보다는 실제의 생활에서 화해에 응하거나 화해를 청하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어려운 길을 한 고개 한 고개 넘으면서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잎이 무성한 가을 나무를 보면 그 참한 색깔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무 잎사귀 하나를 들고 볼 때, 피할 수 없이 보이는 찢어진 더러움이나 주름살이나 피곤한 색깔이, 몇 발짝 뒤에서 무더기로 보는 것과는 엄청 다르다. 그러나 그것도 아예 한참 떨어져 건너편 산등성이에 있는 수백·수천의 가을 나무를 한꺼번에 보면 그 온갖 색깔의 조화와 아름다움이 훨씬 더 선명하고 강하게 몰려온다. 그렇다, 아주 멀리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통째로 보면 그 많은 굶주림도·살인도·시기심도 지워진 채 영롱하게 아름다운 옥색 구슬로 보인다지 않는가. 그래서 외국에 떨어져나와 사는 내가 보는 먼 고국은 아름답기만 한 것인가. 그러나 이제는 아름답게 보는 것만이 사랑의 전체가 아닌 것 같다. 같이 살결을 맞대고, 냄새를 맡고, 눈과 눈이 만나고, 말을 나누고 또 기쁘고 슬픈 속사정을 서로 털어보이는 그런 끈끈함이. 그것이 좀 칙칙하고 거추장스러울지라도 내게는 더욱 아쉽고 값지게 느껴진다.
내 시는 내 편견이리라. 나도 모르게 내 편견에 내가 잡착하듯이 남의 편견을 나쁘다고 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