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인간이 미물로 추락하고 혹은 기계로 사물화하는 비인간화된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전망을 드러내면서, 사람다움의 근원적 존재성에 대한 탐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의 정신 뒤에 숨겨진 진정성에의 추구로서, 그에게 부여된 시적 작업의 영역으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의 산문]
오늘 점심때 회사 부근 은행 소파에서 묵은 잡지 세 장을 몰래 찢어왔다. 무인고도 홍도를 하얗게 뒤덮은 괭이갈매기떼의 컬러 화보-이게 아무래도 시가 될 것 같기에 북! 찢었는데 창구 아가씨가 눈치챘는지 눈웃음쳤다. 며칠째 사무실 칠판에 적힌 표절 가요의 제목과 가수 이름이 퍼뜩 머리속을 스쳤다. 제기랄
이름 모를 포구를 멀리서 아름답게 수놓는 괭이갈매기떼를 가까이 다가가 볼라치면 선창가의 썩은 생선 찌꺼기며 오만 쓰레기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소문난 청소부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범우주적인 생명수 같은 아름다운 시보다는 삼라만상의 번잡하고 헛된 것들 죄다 쓸어 없애는 청소부 같은 때묻고 고단한 시를 쓰고 싶다.
絶海의 갈매기섬으로 부단히 시간을 물어나르는 텃새들. 하지만 나는 수직암벽에 마른 풀잎만으로 시의 둥지를 틀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지난 봄 홍해집에서 우연히 처마 끝에 매달린 제비집을 올려다봤는데 제비란 놈, 진흙과 지푸라기에 플라스틱 쪼가리도 섞어가며 집을 짓고 있지 않겠는가. 들녘에서 본 쇠고삐는 또 어떻던가. 침 흘러 반질거리는 단단한 나무결이 아니라 비닐이 벗겨진 채 드러난 강철이 소의 코를 꿰뚫고 있었다.
강철의 비정함과
플라스틱의 무관심.
–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