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철학

김영민 이왕주 공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7년 3월 25일 | ISBN 9788932008905

사양 · 242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김동인 이상 이청준 장정일 등 국내 작가들과 도스토예프스키, 포, 사르트르, 카프카 등 국외 작가들의 작품 48편에서 철학적 의미를 짚어내며 문학과 철학의 뜻깊은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책.

[손가락들의 변명: ‘작품으로 하는 글쓰기’: 책머리에]

이 조그만 책으로 시류를 거슬러 무슨 대단한 물꼬를 트는 일을 욕심내자는 것도 아닌데, 벌써 양쪽으로부터 힐난과 시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작품 평론도 아니라느니, 그렇다고 철학 논문도 아니라느니, 편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의 트집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난 따위보다 그 비난이 자리잡고 서 있는 저 완강한 고정관념이 더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작품에 대한 글쓰기’가 아니다. 애초에 특정한 작품이나 특정한 글쓰기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령 이것은 평론, 저것은 논문, 이것은 허구, 저것은 사실, 이것은 문학, 저것은 철학 등으로 영역을 나누고 틀을 고정시키며 완결된 가치 서열을 고집한다면 영영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작품과 장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모든 담론들은 결국 같은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작품에 대한 글쓰기’의 경우, 이것은 피하기 어려운 숙명처럼 보인다.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은 ‘작품으로 하는 글쓰기’다. 그것은 작품 뒤에 숨겨지기를 원하지 않는 글쓰기다. 우리는 작품들에 대한 권위 있는 판관이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그것들 뒤에 숨은 얼굴 없는 목소리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작가의 명성을 권위의 척도로 삼지도 않았으며, 위대한 이론의 후광을 진리의 징표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이 책의 저자들은 누구이며, 대체 그들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글쓰는 자들이다. 이 책의 화제로 선택된 작가들과 더불어 글쓰는 자들, 그 손가락들이며, 그 손가락들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서 작품과 나란히, 그리고 작가와 나란히 서기 위해서 우리는 철학자들이 누려왔던 ‘메타’라는 그 특권의 공간을 잠시, 그리고 겸허히 유예한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다고 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반드시 뭍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뭍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가령 물 위의 삶을 꿈꾸는 모험과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베네치아에 있는 저 현란한 물의 미로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더러 들리는 철학과 문학의 과장된 불화는 근거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는 기왕 만나고 있는데, 왜 글에서는 서로 만나지 못하는가. 그 배당된 자리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운명적 해후’의 거창한 의식을 마련하지 못해서인가. 만약 이 불화가 게으름이나 타성, 혹은 자존심 같은 조잡한 원인에서 생긴다는 소문이 나돈다면 그것은 모두 우리 인문학도들의 책임일 것이다. ‘작품으로 하는 글쓰기’는 아직 그러한 책임을 만족스럽게 수행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책임의 강박에 직면하고 그 긴장을 좀더 정직하게 버티어내려 했을 따름이다. 결국 그러한 몸부림으로는 그 책임의 현장에서 우리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데에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이란 언제나 그런 게 아니던가. 그리고, 인문학이란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던가.

– 1997년 3월, 글쓴이들

목차

손가락들의 변명: ‘작품으로 하는 글쓰기’


광인과 미인 / 운수 좋은 날의 운수 / 백치의 축구 골대 / 장미와 주판의 싸움 / 살며시, 도시의 그늘에서 날개를 펴며 / 소외된 순교 / 혀끝의 삶, 손끝의 사랑 / 뱁새의 월권 / 독로(讀老), 지혜와 성숙의 텃밭 / 눈길과 물길 / 초식과 민초 / 떠도는 말들의 복수 / 시뮬라시옹의 폭력 / 안개 속의 실존 / 하얀 색은 모든 색이 어울린 것이다 / 백화의 진리 / 물화의 폭력 / 매판 지식과 우리 철학의 과제 / 광대의 방패 / 동경, 그 흐릿한 거울에 비친 진리 / 앎·힘·삶 / 책 읽는 당신, 당신에 대해서 / 만남과 스침 / 인식보다 먼저 흐르는 무관심의 강 / 지식의 선(線), 체달의 경(境) / 담배도 남편도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
그러나, 재즈 속에서 살 수 있는가? / 현상학적 사랑 / 꽃을 위한 변명


데카르트 뒤집기 / 타자의 이중성: 그 위협과 매력 / 변신(辨神)과 반신(反神) 사이의 긴장, 혹은 성숙 / 존재와 글자 / 주판의 그늘 / 운명으로 그리는 상징과 신화의 세계/ 우연, 필연보다 앞서가는 명운(命運)의 틈 / 심청(心淸)과 사달(事達)의 거리, 혹은 배리 / 번뇌를 끊지 않고도 열반을 얻는다 / 개 같은 심판의 심판 / 조르바와 함께 춤을 / 행동의 깊이, 혹은 삶의 깊이 / 역사의 다른 얼굴, 불한당들의 세계사 / 구토, 그 신성한 거부의 힘 / 해석의 깊이, 혹은 진리의 뒤안 / 칼 끝에 맺히는 이치 / 네 이웃의 차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느림의 철학, 삭힘의 지혜 / 좀머씨, 해방을 꿈꾸는 영혼

작가 소개

김영민

부산대학교와 미국의 워싱턴 대학교, 그리고 드류 대학에서 철학으로 학위 과정을 마쳤다. 저서로는 『철학과 상상력』 『서양 철학사의 구조와 과학』 『현상학과 시간』 『신 없는 구원·신 앞의 철학』 『철학으로 영화보기·영화로 철학하기』 『고전평설』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컨텍스트로, 패턴으로』 『소설 속의 철학』(공저) 외 여러 권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과 평문을 발표했다. 현재 전주 한일대학 인문사회학부 교수이며, ‘한국인문학연구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왕주

경북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윤리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철학과 현실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의 모임인 ‘해석과 비판을 위한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풀이, 철학살이』 『소설 속의 철학』(공저)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하이데거에 있어서 존재의 진리와 예술의 본질」 「철학적 해석학의 실천 개념」 「해석학을 위한 변론」 「기술과 예술」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이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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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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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3 =

  1. killbrick
    2000.12.17 오전 12:00

    소설속의 철학이라는 다소 경직된 책 제목이 맘에 안들고 이들이 읽어내려간 책과 그 철학의 이어맞춤이 제단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여태껏 생경했기 때문에라도 앞으로 이런 종류의 글쓰기가 많은 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경직된 우리나라 글쓰기의 토대를 조금은 풍성한 것들로 채울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근래에 볼 수 있는 좋은 글쓰기가 ‘책세상 문고’시리즈를 통해 조금씩 낙관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 저자들은 더욱 다양한 시각과 유연한 사고로서 구체적인 작품들을 되집고 넘어가는 일을 계속 해주었으면 한다.
    어설픈 논술고사 답안지보다는 글쓰는 사람의 진정한 철학이 담긴 책들이 그들의 문체를 확립하는 면에 있어서도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