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남짓의 생애를 살았던 천재 소설가 라디게가 19세 때 쓴 소설.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해서 전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냉정한 평가, 부르주아 계급의 가치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담성 등으로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짧지만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기획의 말]
문학사에 깊고 굵은 족적을 남기는 다른 많은 작가들에 비해 레이몽 라디게Raymond Radiguet(1903∼1923)는 짧은 이력과 네댓 편의 작품을 남겼을 뿐이다. 그에게는 따라서 길게 토를 달아 설명할 생의 궤적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작품 세계의 변모 과정이랄 것도 없다. 초기의 시선집 『달아오른 뺨』에서 마지막 작품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가 나오기까지, 이른바 창작기라고 할 수 있는 세월은 불과 2, 3년 간의 생애 마지막 시기이다. 작가와 더불어 그 작품들은 같은 순간에 태어나 거기 정지함으로써 인간의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라디게의 문학 선배이자 친구 이상의 관계였던 콕토 J. Cocteau는 그의 존재를 두고 탄생과 죽음이라는 말 대신 나타남apparition과 사라짐disparition이라는, 요절한 천재에게나 허락되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나이의 벽을 뛰어넘어 마치 단번에 문학의 중심부로 달려들어갔으며, 자신의 뒤에 가능성이라는 젊음의 은혜로운 약속만을 남긴 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작가를 두고 찬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신화들 중 하나, 즉 랭보를 정점으로 하는 영원한 아이로서의 작가의 신화를 떠올렸으리라.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어떤 방면에 일찍 재능을 보였다거나 일찍 종사하기 시작했다는 화제성을 넘어서서, 라디게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음미하게 만드는 것들은 작품들이 내포한 문제 의식이나 깊이이다. 그것들은 또한 역설적으로 독자들의 뇌리에서, 그리고 작품 그 자체에서 18세라는, 작가의 나이의 흥미 유발적 요인을 지워버린다.
라디게는 불문학사에서 흔히 양차 대전기라고 일컬어지는, 말 그대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 끼인 시대에, 앞서 말한 시인 콕토 그리고 상업적 감각과 더불어 그에 필수적인 문학적 혜안을 지닌 출판인 그라세 B. Grasset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들에 의해 키워졌다는 표현도 가능한즉, 일화에 의하면, 소년의 첫 소설에서 천재의 빛과 아울러 아직 서투른 점들을 발견한 두 아버지들은 그것을 다듬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입김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를 한 호텔 방안에 들이밀어 탐탁지 않은 초고의 부분부분들을 며칠 동안이고 다시 고쳐 쓰게 했다는 콕토의 증언이나, ‘에마뉘엘 혹은 미숙한 마음Emmanuel ou le coeur vert’으로 제목을 바꾸려는 라디게에 대해 (한결 충격이 강한) ‘육체의 악마’를 고수하길 강요하며 그보다는 소설의 결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끝맺어 완벽한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1923년 1월 31일자 그라세의 편지(“친애하는 나의 라디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결말이 시작과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하오. [……] 당신은 이 책을 걸작으로 만들 능력이 있으니,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따위가 그 간섭의 예들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창작이 독자적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이 과정들을 거쳐 갈고 닦인 『육체의 악마』는 같은 해 삼월에 빛을 보았다. 라디게는 이 작품으로 르 누보 몽드le Nouveau-Monde 상을 수상하면서, 그라세가 예견한 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배경이 1차 대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육체의 악마』가 펼치는 세계는 사뭇 의외이다. 거기에는 피비린내나는 전투도, 고통의 아우성도 없다. 한가로운 자연을 터삼아 펼쳐지는 이른바 불륜의 사랑이 불거질 뿐이다. 그러나 일견 시끄러운 바깥 세상사에는 무심한 듯한 이 세계를 접하면서 역설적으로 독자는 전시에 전쟁의 포화를 비껴간 도시의 풍경과 풍속이라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또 다른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시대와 사회의 차이를 넘어, 해묵은 질서의 변화하는 듯 여전한 끈질김과 그 속에서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성장의, 그에 필적하는 끈덕진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경박하고 오만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모험은 실은 진지한 비판과 반성의 여정이어서, 그는 부르주아들의 어리석음과 위선이 조용한 소도시를 저기압처럼 숨막히게 내리누르고 그들의 편견이 둔중한 몰이해의 벽으로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라고 배우며 깨닫는다.
짧지만 매력적인 이 소설에는 불문학사의 주요한 흐름들이 교차하고 있다. 그 시대가 구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인간 본성의 깊이를 분석하는 전체적 시도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고전적 감수성이, 여행이나 산책처럼 일종의 무상성gratuit으로서의 문학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에서는 곧 성가를 이룰 초현실주의의 울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기적이고 위반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적 행복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부르주아 문물의 마지막 표현인 전쟁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시대의 불안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반항이 강력한 윤리적 성찰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라디게는 영락없는 양차 대전기의 작가이다.
– 1999년 3월,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