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이 드디어 200권에 이르게 되었다. 1990년 12월에 100권째를 기념하는 시선집을 낸 뒤 7년 만에 200권째를 간행하게 된 것이다. 이 시선집은 각 시집에서 서시의 성격을 띤 작품들을 골라 모은 것으로, 서시란 “영원한 시작으로서의 역사의 뜻이 시의 내면에 새김된 자리”이기 때문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가장 많은 백넘버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양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시인들이 다양하게 추구하는 시적 작업을 가장 뛰어나게 성취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사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선집은 한국 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개척해온 개성적인 언어와 참신한 감수성의 시집들, 그 중에서도 그 시집들을 여는 ‘문턱’의 시들을 모은 것이라서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시의 역동적인 흐름을 생생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시인의 산문]
역사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작한다는 것, 순환의 원점은 오직 솟아나기만 하는 영원한 시원의 샘이라는 것. 그것은 또한 시의 본래적 정신과 만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200권째를 기념하면서 아흔여덟 권 시집(연변 시인들의 시선집인 113번 『두만강 여울 소리』는 제외되었다)의 ‘서시’들만을 모아놓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서시란 곧 영원한 시작으로서의 역사의 뜻이 시의 내면에 새김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서시」는 그것을 암송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하는 상투화된 계기로 작용해왔고, 여전히 그러하다. 서시란 새벽 수탉의 외침이고 신세계의 열림이며 새 태도의 청원이다. 서시를 펼치는 순간의 독자는 원튼 원하지 않든 광속의 텔레포팅을 체험한다.
– 정과리의 해설 「아흔여덟 개의 검은 凹와 한 개의 하얀 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