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에서 그는 현실에 좀더 가까이, 좀더 깊이 파고들면서도 감성과 지성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그 균형은 현실을, 정황과 함께 전형적으로 묘사해내는 그의 시 정신에서 획득되는데, 그런 그의 시는 날카로운 쐐기처럼 현실의 거짓되고 모순된 틈에 정밀하고 꼼꼼하게 박혀든다.
[시인의 산문]
얼마 전에 다섯 살 난 아들을 재우기 위해 가슴을 토닥거리는데 아이의 입에서 불쑥 “아빠, 지나간 건 모두 꿈이야”라는 말이 튀어나와 그 말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잠들면 무슨 꿈을 꾸게 될지 궁금한 이 아이에게 꿈이란 단어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현재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꿈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과거의 일은 꿈처럼 쉽게는 아니지만 세월을 두고 잊혀져간다. 다섯 살 이전의 일들은 대부분 되새길 수 없는 것으로 꿈처럼 잊혀질 것이다. 자신의 직접 체험이거나 주워들은 이야기거나 한 개인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사는가. 또한 자신의 직접 체험까지도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잊게 되는가. 그리고 결국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감겼다 풀렸다 하던 온갖 이야기의 실꾸리를 땅에 묻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홀로 되새기거나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일종의 문학 행위를 함으로써 이야기가 꿈처럼 잊혀지는 것을 막는다. 이야기의 생성 변형 및 교류는 인간에게 원천적이고도 보편적인 문학 행위이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 「이야기 시론」에서
▨ 自序
Ⅰ
샘터에서
성에꽃
만남에 대하여
눈길
담양장
추석 성묘길에
산길
안양천
안양천 메뚜기
다시 한강을 건너며
귀향
강아지풀
무좀과 곰팡이
Ⅱ
파라티온
영산포 고모
연봉이 아재
유촌댁
누룩바위
옥수수
고순봉
김영천씨
빈 집
지하실 아주머니
김기섭
귀가
어떤 문상
Ⅲ
달팽이
전길수씨
오리
한재영
고창득
인천 자유공원에서
타잔
미국병
동두천 민들레
심봉사
한장수
농섬
낙지와 뻘밭
전만규
시목국민학교
교과서와 휴전선
여우고개
Ⅳ
고슴도치
지리산 찔레꽃
무등산과 삼인산
매화나무 앞에서
고인돌
채석강
전태일
서호빈
권인숙
항심
무등산
▨ 해설·우렁이의 시학·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