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나 호박처럼, 한 그루의 나무나 한 송이 꽃처럼 식물들의 생애는 그것 자체로 완전히 아름답다. 시집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은 식물들의 삶에 편입해 한 생을 살고 싶다는 여리고 애틋한 욕망의 개화이다. 그래서 시인은 식물의 주위를 서성거리며, 식물과 따뜻한 햇빛을 나누면서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다스린다. 시인은 사람과 식물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삐걱거리며 생명들에게 밝은 꿈의 시선을 비추고, 그 꿈에 의해 세상을 환히 밝힌다.
[시인의 산문]
무당이 작두를 타듯 합기도 선수가 손목에 氣를 모아 벽돌을 깨듯 내 몸과 마음에 비축된 순수와 사랑을 털어 詩를 쓴 세월이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종교였다. 한 줄의 詩를 얻기 위한 내 기도에는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열정이라 부르기에는 많이 부끄러운 , 그와 나만이 알고 있는 섬뜩함도 있었다. 식욕 성욕과는 아주 다른 욕망의 웅덩이, 차고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오들오들 떤 적이 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다간 者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몹시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시와 더불어 살아온 모든 것들을 세월이 흐른 다음에 펼쳐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별처럼,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뭉클한 피가 배어 있는 보드라운 사슴의 뿔을 다 베어내 詩와 바꾸어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분간 내 머릿속엔 녹각일 뿐일 것이다. 어디에 처음 같은 그 길이 있을까. 이제 나는 내 마음속 정원에 밭, 시의 밭을 만들고 싶다. 붉고 푸른 채소, 성벽처럼 서 있을 과일나무들을 심어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싶다. 그들은 어느 날 보드라운 사슴의 뿔이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