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 달하다』는 거대한 것에 대해 미세한 것으로 대응하는 특이한 미학의 시집이다. 시인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자신에게도 들릴락말락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 작아져서 단단한 곳에 상처와 견딤과 그리움과 사랑, 저주와 위로의 말들이 확대경 없이는 해독할 수 없도록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거대한 형상에 감추듯 새겨진 도공의 이름처럼 그 말들을 읽지 않고는 거대한 것, 남성적인 것, 혹은 중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시인의 말, 시인의 육체가 그 세계의 자물통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산문]
즐기다가, 매혹되다가, 홀려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에 나는 행복했다. 그 행복 때문에 몸이 아팠었다.
세상의 자질구레한—-그러나 나에게는 위대했던—-변죽들에게, 황홀하게 흡입되고, 또한 침식되는 것. 침식된 자들이 다시, 자발적으로 이 세상을 침윤하고 침식하는 것.
이것은 새롭게 망가져가는 세계에서, 이끌려 망가질 수밖에 없는 자들이 체득한, 어쩌면 유일한, 접신술이다.
그저 ‘호흡’하다가 내 몸 속에 빨려들어온 것들. 그리하여 나를 만들어버린 것들. 무너지고, 쏟아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 그 불순하고 찰나적인 것들이 나에게 위로한다.
“너는 내 자식이다. 그래서 내 젖을 빨게 한 것이다.”
그러니 어쩌랴. 착하고 지고지순한 노래들이 아무 의미 없이 여겨지는 이 천성을.
내가 이 시대에서 얻었던 傷處들을, 그 傷함의 居處들을 ‘ 迹’으로 환치시키기 위하여 나는 시를 썼다. 배고팠다.
오늘도, 여전히, 끝이 보이는 맑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