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시집인 『게 눈 속의 연꽃』에서 그는 현실의 방법적 재현이라는 그전 시의 일관성 속에서 조심스러운 변모를 탐색하는데, 그 변모는 현실과 초월 사이의 갈등을 끌어안으면서, 그 갈등을 뛰어넘어 이르는 화엄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는 피안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분노, 싸움과 갈등의 이 세계 속에서 연꽃과 같은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를 치열하게 피워올린다. 그의 시는 진흙탕 속에서 화엄의 꽃이 피듯이 현실의 세계와 화엄의 세계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과정 속에 어느 순간 그 두 세계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
사람들은 희망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거짓말한다. 나는 폐인이 되고 싶다. 나는 완성하고 싶다.
희망의 대답은 대개 둘 중의 하나다, 즉 길흉 중의 하나이다. 이 사람을 다시 살고 싶다고 후회할 때, 그때는 이미 삶을 상당히 살아버린 뒤이다. 거짓말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후진 골목 끝에는 대개 점치는 집이 있다. 나는 철학자를 경멸한다. 그러나 어떤 유행가 가수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
그대 몸 속 한가운데에 내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입에서 항문까지 그 꾸불꾸불한 길은 외부이다. 그러니까 삶은 거듭되는, 커다란 ‘빵꾸’이다. 구린내도 자주 맡으면 향기롭지 않는가, 된장처럼. 혼자 엎드려 토할 때의 그 많은 회환 : 다리 난간을 부수고 강물에 꼴아박은, 종이처럼 구겨진 버스를 기중기가 들어올린다. 물을 줄줄 흘리며 검은 개가 하늘에 매달려 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나는 허수아비의 허수아비까지 보고 싶어한다. 쇼 윈도 속의 캐피탈, 허공꽃. 유리창의 허공꽃을 보고 찾아온 호박벌, 투명한 한계에 날개를 때리며 잉잉 운다.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나는 이 무질서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