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무림 세계에 빗대어 풍자한 첫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 그는 정치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 성적 욕망이 뒤엉켜 타락한 산업 사회의 실상을, 그것에 가장 밀접한 리듬과 언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꼬집고 비틀고 희화화시켜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런 한편 산업 사회의 대척지로서 ‘하나대’라는 훼손되지 않은 원형적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굴절되지 않은 본래의 욕망의 모습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해 열망하고 꿈꾼다.
[시인의 산문]
자연이 ‘비어 있음’의 공간이라면, 도시는 하나의 ‘채움’의 자리이다. 인간의 욕망은 허(虛)를 보존하는 쪽보다는 허를 채우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 ‘채움’의 욕망 때문에 드러나는 결과가 ‘막힘’이다.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하수구가 막힌다. 그 ‘막힘’의 결과가 ‘넘침’이다. 인간이 채움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이상 대홍수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넘친다는 것은 지구의 절멸을 의미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의 도시를 건설했으나, 그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그 도시들이 사람들을 때로는 파괴한다. 르네 지라르나 일리치식으로 말하자면, 병원이 환자를 만들고, 자동차가 교통을 마비시키고, 식품이 모든 것을 못 먹게 만든다. 학교는 교육을 파괴하고, 공장은 생산을 저지한다. (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때로는, 인간의 작위(作爲)처럼 무서운 게 없다.
그것에 반해, 자연의 공간, 허의 공간은 막힘이 없는 순환이 가능한 세계이다. 나는 압구정동 위에서 순환이 가능한 공간을 꿈꾼다. ‘순환성’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당 만 구천 원 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의 기회비용에 대해 꼼꼼히 생각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웃음소리 왜 허-허-허-인줄 아느냐,고 유하시인이 묻는다 바람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다 만성의 공허와 생의 주름살 마음에 이고 전 생과 시나브로 다가오는 후 생의 중간 즈음에서 있는, 할아버지의, 국화향 웃음소기가 왜 허-허-허-허-허-허-허-인줄 아느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섬진강에 들려 아래로,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본다 할아버지 고요한 웃음소리에 흘러가는 생활의 조급함도 본다 마음의 강에 허를 싣고 눈물이 나도록 살아야 한다,는 유하시인의 낭랑한 충고 압구정 바람 꼬리 붙잡고 예 섬진강까지 놀러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