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1990년대 이후의 문명과 컴퓨터 문화에 관해 발표한 저술 모은 것이다. 날카로운 시선과 정교한 서술, 해박한 비평적 관점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어 단문(短文) 읽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책머리에]
이 책은 현대 문명과 문화에 대해 최근 5년 동안 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글들의 상당수는 『씨네 21』 『HOW PC』, 그리고 일간지의 칼럼으로 띄엄띄엄 발표된 것들이다. 이 책이 한 일은 그 글들을 모아 체제를 부여한 것뿐이다. 그 체제는 지형학적이지 않고 위상학적이다. 영역별로 분류하지 않고 덩어리진 관념들의 구면체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데에는 오늘의 새로운 문제들, 즉 이미지 문화의 쇄도, 정보화 사회로의 돌입, 신세대의 부상, 문화 산업의 창궐 등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것을 그렇게 총체적으로 볼 때에만 문제의 심연에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작용하였다. 나는 이 문제의 심연에 ‘지식’ 혹은 한국 지식인의 위기를 비추고 싶었으나, 그것을 읽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또한, 이 글들이 세상을 비추는 각도는 한 사람의 문학평론가가 세상 속에 위치하는 지점과 방식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을 독자들께서는 유의해주시기를 바란다. 이 글들은 그러니까,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을 다시 쓰자면, 낡은 문화의 심장이자 새 문명의 잠재적 헛간인 곳에 갇힌 자가 문구멍을 통해 바깥 세상에 송신하는 메시지, 혹은 어떤 소음들이다. 그것들이 대화의 빈터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도 역시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산일적으로 발표된 글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씌어질 당시의 정황에 의해 다양하게 굴절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각 글의 말미에 씌어진 때를 명시한 것은 그 때문이다.
– 1998년 11월, 정과리
[책머리에]
[구멍]
깬 채로 홀리지 않기
[풍경들]
문화 산업이 아니라 문화가 문제다 / 오늘의 미래 편식증 / 미래 정책은 없었다 / 영어=국제어를 둘러싼 고통스런 잡음들 / 대한국인이 갓길을 침범할 때 / 밀리터리 룩, 혹은 압제를 그리워하기 / 검열을 곱씹기 / 신세대 문학과 혼성 모방 / 문학 제도에 대한 단상
[가상들]
영화는 기술 문명의 동반자인가? / 사람들이 이미지를 향해 간 까닭은? / 이미지냐 현실이냐는 잘못된 문제다 / 움베르토 에코가 착각한 것 / 영화의 미래에 대한 영화인들의 공포 / 미래의 영화에도 심연이 있다 / 이미지로 이미지를 쏜다 / 지독한, 지긋지긋한 그것 / 허무로 난 길
[기관들]
컴퓨토피아는 장미빛인가 / 하이퍼텍스트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 텍스트에 관한 아주 다른 생각들 / How PC 속의 Why PC / 컴퓨터에는 낭만이 없다? / 나는 ‘그날’을 부르고 싶었다 /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 몸, 혹은 사람과 컴퓨터 사이 / 가상은 실제의 반대말이 아니다 / 하이퍼텍스트의 불안 / 컴퓨터식 사유에는 조사가 없다
[자국들]
문학의 크메르 루즈 / 영도의 공간, 유형의 체제들 / 뉴미디어 문화의 엉덩이 / 어느 항해자의 심심하고 쓸쓸한 명상
[군살]
투명한 기억을 위하여
[원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