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서는 희귀한 의사의 체험, 시인으로서는 가장 큰 갈등인 외국 생활이 기본 모티프가 되는 그의 시들은 그러나 격렬한 체험들을 아름답고 따뜻하며 착한 서정으로 수용, 맑은 지성과 세련된 언어로 승화시킨다. 이 시집은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오히려 더욱 참신해지는 이 같은 시세계의 결정체이다.
[시인의 산문]
1.
종교적 사고 방식이 곧 퇴행성이라고 속단해버리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2.
극심한 생활고와 어떤 종류의 버림받음에 대한 절망적 상태가 그에게 훌륭한 예술이나 문학의 출산에 큰 도움이 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훌륭한 시문학이 결코 생활고와 절망적 상태를 필요로 하고 거기에서만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이 근래 특히 한국의 문학인 사이에 회자하고, 빈곤과 버림받음에 대한 극적이고 과장된 아우성만이 가장 긴장되고 절실하고 절정감을 주는 예술이라고 믿는, 맹목적이고 잘못 인도되는 행진은 멈출 때가 왔다고 믿는다. 이런 착각의 교정은 특히 세계 속에 한국의 시문학을 하루 속히 확립시키기 위해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3.
어쩌다가 나는 고국을 떠나 흘러다니는 이민자가 되었다. 떠나 살면서 더욱더 아름다운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지니게 되고, 내 모국의 이리저리 뚫린 골목길의 조그만 입김들이 만들어놓은 조그만 풀잎까지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오래 버려두었던 길고 파란만장한 한국의 역사를 다시 한장 한장 정성들여 읽어가면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자기가 믿는 지식이나 정확성이나 엄정한 판단보다는 사랑과 이해와 조건 없는 포옹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