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장편소설

신경숙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2월 18일 | ISBN 978893201059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82쪽 | 가격 13,000원

분야 장편소설

책소개

작가의 새로운 문학적 세계를 여는 전환적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기둥 줄거리 삼아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들려준다. 특히 감성적 문체에다 비의적인 문체를 접합시키는 새로운 시도는 신경숙 문학의 또 다른 매력과 긴장감을 펼쳐 보여준다.

[작가의 말]

좀 먹먹하다.

곧 봄이 온다는 것도, 올해가 20세기의 마지막 해라는 것도, 반지를 잃어버린 것도, 이 소설을 붙잡고 시름에 겨워했던 시간들도…… 아닌가? 그저 지난 밤, 잠이 모자란 탓인가?

서른이 되면서 너무 허전해서 내 손가락에 내가 끼어주었던 18케이 반지를 잃어버렸다. 그 동안 자존심이 상할 때나 마음이 불안할 때면 만지작거리던 것이었는데…… 자국만 남아 있는 손가락이 너무 허전하다.

예전의 나는 소설이 뭘 움직일 수 있겠느냐 생각했다. 뭘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여기고 있을 때는 오히려 소설의 힘이 셌던 때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소설을 통해서 사람이 되는 과정을 걸어왔으니. 소설의 힘이 전혀 없어 보이는 요즘 나는 좀 변한 것 같다. 지금에야 나는 소설의 효용가치를 믿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우리들 생의 모랄에 끼여들어 새 인사를 하고 싶고, 인간이 지닌 친밀성에 대해서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만 변화시켜놓고 싶다. 그래서일 것이다. 한 독자가 외로울 때는 내 소설을 안 읽는다고, 그럴 때 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더 외로워진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참 반가웠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구나, 그녀를 외롭게 했구나, 싶어서. 변한 건 또 있다. 사람들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하면 그전의 나는 영 괴로워서 저이와 어서 헤어져야지, 했는데 이젠 꽤나 귀기울여 듣는다. 물론 엇나간 비판을 당하면 속이 상한다. 그때처럼 진심으로 속이 상할 때는 드문 것 같다. (살아 있는 것 같다!)

날도 덜 새었는데 까치 두 마리가 창문 바로 앞 빗물받이 홈통에 앉아 있다.

새…… 새가 저기 앉아 있구나.

며칠전에, 부친을 병원에 두고 홀로 시골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오신 어머니가 무슨 얘기를 하시던 중에 갑자기 목소리가 나직해졌다. 무서워서 혼났어야. 뭐가요? 지사 지내구 새복참에 아침밥 지을라다 보니까는 지사상 앞에 놓여 있던 멥쌀 위에 새 발자국이 찍혀 있지 뭐냐. 어머니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헌 사람만이 새가 된다더라. 어머니 말씀은 멥쌀 위에 찍힌 그 발자국은 그날 제상을 받으신 분이 남긴 것이라는 거다. 어머니두, 그런 게 어딨어? 누가 멥쌀에 손을 짚었겠죠. 어머니는 꼭 그렇게 믿는 눈치였다. 손을 짚으면 다섯 개가 찍히야지 왜 세 개라냐? 난 그 발자국을 안다. 새 발자국이라니까 그러는구나. 전에도 본 것이야. 그때 본 그 발자국여. 대꾸할 말이 없어 어머니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에에…… 하면서 손바닥으로 어머니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어머니는 굴하지 않고 끝끝내 말씀하셨다. 너거 아부지가 저러구 지시니까 염려가 되어서 다녀가신 거여…… 그렁게 곧 나을 것이다!

나는 익명의 개개인이 지닌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오묘한 힘을 느낀다. 그 힘이 사랑과 만났을 때의 파장이 내 주인공들을 탄생시켰다. 하진이보다는 미란이가 세상에 나가 잘 지냈으면 한다. 소설을 쓰는 동안 미란이 또래의 그녀들을 보면 나는 몇 살인가, 몇년생인가를 물었다. 스무 살, 80년생…… 이런 대답을 들을 때 80년생이라구? 혼자 되뇌었다. 80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어여쁘고 발랄한 그들이 내성을 길러 자기 본능에 이끌리는 다채로운 인생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였나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미란에게 폭발할 것 같은 애정이 솟아나서 나는 하진으로 하여금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빗기고 손을 잡아주고 업어주고…… 상심한 미란의 머리맡을 지키게 했다. 대신 미란을 하진이가 상처를 찾아가는 길에 동행시켰다. 스킨십으로, 동행자로 나는 그들을 닿게 하고 싶었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원고를 밉다 않고 기다려준 문학과지성 식구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미안해요. 어느 날 오래된 노트에서 보르헤르트의 시를 찾아 건네준 당신, 고맙다! 언젠가 네가 썼을 그 오래된 글씨…… 우리, 가까이 있자.

– 1999년 2월, 신경숙

작가 소개

신경숙 지음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겨울 우화』(1991), 『풍금이 있던 자리』(1993), 『오래 전 집을 떠날 때』(1996), 장편소설 『깊은 슬픔』(1994), 『외딴 방』(1995)과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1995) 등을 펴냈다. 제2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1회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제40회 현대문학상, 제11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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