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절약의 언어 속에 전래의 숙명적인 인과(因果), 토속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깊이 은닉되어 있는 한국어의 서정을 바로 그 서정적 구조 속에 용해하면서 응혈의 시학을 전개하는 독특한 힘으로 주목받아왔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이 시집은 이러한 시의 경향을 잘 드러낸다.
[시인의 산문]
새벽이었다, 나는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 밖은 찬바람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부엌으로부터 한 줄기 불빛과 함께 가느다란 중얼거림이 새어나오는 불빛을 밀어넣으면서 무슨 일인가 하고 부엌 안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부엌 벽에 조그만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정한수 한 그릇과 촛불을 켜놓고 비슷비슷한 말은 따라 계속해서 손바닥을 비벼대는 어머니의 무릎 꿇은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조왕신께 내 무병장수를 빌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이 아는 가장 순수한 말, 그런 말이 아니면 조왕신은 알아들을 수 없기나 한 듯이 어머니는 마음속 깊숙이서 그런 말들을 꺼내어 조왕신께 바치고 계셨던 것이다.
문학에 뜻을 두고, 그것도 詩라는 걸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마음속 후미진 곳에 제단 하나를 만들어놓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 어렸을 때 부엌문 틈으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내 제단 위에 소중한 것들을 올려놓고 내가 배운 말 가운데서 가장 순수한 말을 그것들 앞에 바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살아가는 이유이고 아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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