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펴내는 시집 『아니리』에서 그는 그 특유의,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진실을 되돌려 다시 한번 따져보는, 비판적 정신을 한층 깊이 있게 보여준다.
[시인의 산문]
역마살이 끼었다는 표현은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1970년대초에 고향을 떠나면서 비롯된 이 역마살은 지금까지 나를 쫓아다니고 있다.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여섯 해 동안, 밤에는 울산에서 자고, 낮에는 부산에서 일하고, 주말은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세 도시의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나는 국내 이산 가족의 선구자가 되었다. 1980년 서울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도, 안산으로 출퇴근하기에 왕복 이백여 리의 일정을 어느새 십 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울산에서 부산 가는 길이나, 서울에서 안산 가는 길이나, 모두 교통사고의 빈도로 전국에서 손꼽는 산업도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역마살이 십육 년에 아직도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흔들리는 찻간에서 책을 읽느라고 눈을 많이 버렸다. 다음에는 차를 타면 졸거나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지, 몇 시간씩 계속해서 낮잠을 즐기는 재능이 내게는 없다. 결국 망연히 창밖을바라보거나, 시선을 차단하고 부질없는 상념에 머리를 맡겨버리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돈을 벌고, 이권을 붙잡고, 명성을 날리는 사십대 중반에서 사십대 후반에 이르는 인생의 황금기를 나는 대부분 교통 체증의 심한 산업도로의 버스 속에서 멍청하게 보낸 셈이다. 본의 아니게 혼자서 멀거니 보낸 이러한 시간이 역설적으로 나의 삶과 문학에서 차지한 몫도 없지는 않다. 독문학 연구에 전념할 실제의 시간을 빼앗아간 대신 몇 줄의 시를 갈고 다듬을 상상의 여유를 주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