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의 첫 시집 『또 다른 별에서』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시는 도회적인 세련성과 연금술적인 어휘력으로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 속에 풍요한 서정을 부어넣고 투박해져가는 것들 속에 싱싱하고 섬세한 감각을 불어넣어 사물과 감정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독창적인 수법으로 주목되고 있다.
[시인의 산문]
한 구멍에서 또 다른 구멍으로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도망가다 잠시 생각하면 뺨을 맞은 느낌, 또 빨리빨리 도망가다 잠시 생각하면 까닭없이 얻어터져 널부러진 느낌, 또 빨리빨리 도망가다 머뭇머뭇 생각하면 능욕당한 것만 같은 억울한 기분이 된다. 여기저기 널린 구멍속에서 책속에 음흉하게 엎드렸던 조상들, 바위 밑에 숨어 있던 조상들이 낄낄거린다. 손가락질한다.
나는 나를 언제나 굴복시킨다. 세계에게, 사람에게, 시간에게. 내 오장육부와 아픔을 총동원하여 나는 나를 굴복시킨다, 언제나 너에게. 내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그들뿐이다.
이렇게 詩는 굴복의 소산이다. 역시 그들의 것인 말과 이미지를 빌려서 잠시 고통스러워하거나, 황홀해하거나, 과연 모든 것이 그들 소유로구나 하는 사실을 재확인하거나 하는 것뿐이다. 그 다음 詩人에게 거지 같은 관념과 진실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확신이 남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나에게는 남는 것은 오직 눈물나게 억울한 생각뿐이다.
작가 소개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