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람을 불러 바람을 불게 하고』라는 길고도 굼실대는 제목의 이 첫 시집을 통해, 그는 경상도의 토속어뿐만 아니라 비어·속어·은어를 충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직하고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엇나가 뒤틀려지고 있는 삶에 대해 통절한 아이러니를 던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비진정한 것들에 비진정한 언어로 훼방함으로써 진정함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
이삼십 년의 각고 끝에 겨우 꽃피우는 꽃나무가 있는가 하면, 일생에 단 한 번 울음을 울기 위해 살아가는 새가 있다고 들었다. 이런 아름다운 극기의 꽃과 새울음에 비기면, 나는 얼마나 누더기 같고 시답지 않은 시를 쓰고 있나 여겨질 때가 있다. 기워도 기워도 끝이 없이 뚫린 데가 보인다. 썩 굵은 돗바늘 하나 오지랖에 찼다고 할까?
나의 경우, 시는 치부를 가리기 이해 어쩔 수 없이 걸친 누더기다. 나는 그 뚫린 구멍으로 바람과 내통하고, 한 떨기 붙박이별과 수작하나. 간간한 교신 속에서 오만을 쓰러뜨리고 다시 오만을 세운다. 자유자재하고 또 아파한다.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사실은, 누더기 속에서 기실 나는 많은 것들을 감추었거나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속이고 있는 자신까지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이런 말을 맨처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얼마나 가짜인지, 진짜 거지(시대가 거들떠보지 않는, 혹은 시대를 거들떠보지 않는)를 만나더라도 하등 탄로 나는 법이 없다.
나는 날마다 허물을 벗듯 힘 안 들이고 누더기를 벗고 출근한다. 또 다른 정갈한 가면이다.
시인, 완벽한 사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