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먼지의 집』에서 시인은 사물들을 통해 절망·고통·갇힘·묶임·죽음 등을 본다. 그가 세계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의 상상력은 대상을 찢고 가르며 그 자리에 그런 우울한 심성들을 새겨 놓는다. 그의 시는 어둡지만 대상을 통해 그 어둠의 물질성을 확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는 않다.
[시인의 산문]
측백나무의 열매는 녹색이다. 그 짙은 녹색의 열매들은 가지 끝에 달려 있고, 나무의 연륜에 의해 세력 안으로 들어가 흙색으로 변했다. 입을 벌리고 불임의 씨를 뱉었다. 그 아래엔 검은 흙이다. 아니 그 흙은 애초 보이지도 않았다. 떨어진 열매의 껍데기와 나무의 부스럼이 덮고 있다. 검은 흙을 뚫고 올라온 키 큰 잡풀들은 일 년 뒤에 더 많은 씨를 뿌렸고, 그곳은 불모의 땅이 되었다. 희망의 저 밑에서 고개 쳐들고 일어나는 고통, 그러나 그 침엽수 몇 그루는 세력이 왕성했다. 그것은 일종의 불안이었다. 손 벌리는 희망의 세력…… 작은 손안에는 터지고 싶은 녹색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살아감, 그것은 거대한 고통의 뿌리였다. 어른들은 그 나무의 가지를 톱질했다. 매해의 톱질은 그러나 부질없었다.
달빛이 그 침엽수의 촘촘한 그늘을 방안까지 쓰러뜨렸고 나는 치통을 앓고 있다. 날이 밝으면 해청의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썩은 이빨을 뽑는다. 痰과 癌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담이 결려 며칠씩 누워 있다. 담담함과 암담함의 차이를 나는 안다. 이제, 주머니 속에 콩을 넣고 문지르던 육체의 아픔을, 그 고달픔을, 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열매들은 저 혼자 떨어진다.
뜨거움을 참지 못할 때, 뜨거운 곳에서 콩은 튄다. 나는 튀는 콩의 온도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