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3년 7월 7일 | ISBN 9788932014289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04쪽 | 가격 14,000원

수상/추천: 한국일보 문학상

책소개

[작가의 말]

풍금이 있던 자리에 붙여

93년 봄에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 초판본을 2003년 여름에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바라봤다. 그사이 십 년이 흘렀다. 어떤 관계는 더 깊어지고 어떤 관계는 끊어졌다. 깊어질 땐 내가 막 태어난 무슨 새끼 같았고 끊어질 땐 맨발의 아기를 업고 있는 어미 같았다. 그러면서 마흔이 되었다. 서른에 낸 책에 대고 마흔이 되어 ‘작가의 말’을 한 번 더 쓰려니 많은 생각이 밀려든다. 그러나……

십 년을 보내는 중의 어느 해인가 바닷가에서 얼마간 혼자 지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해변에서 푸른 구슬을 하나 주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슬이 아니라 깨진 병 조각이 물과 모래에 쓸려 다니고 다니다가 모난 데가 둥그러워져 구슬처럼 된 것이었다. 얼마나 쓸려 다녔기에 이리 되었을까 싶어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오래 넣고 다녔다.

어째 그 구슬 생각이 자꾸 난다.

2003년 6월
신경숙

목차

풍금이 있던 자리
직녀들
멀어지는 산
그 女子의 이미지
저쪽 언덕
배드민턴 치는 女子
새야 새야
해변의 의자
멀리, 끝없는 길 위에

초판 해설: 추억, 끝없이 바스라지는 무늬의 삶 _박혜경
신판 해설: 나는, 나를…… 그리고 너를…… _김예림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신경숙 지음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겨울 우화』(1991), 『풍금이 있던 자리』(1993), 『오래 전 집을 떠날 때』(1996), 장편소설 『깊은 슬픔』(1994), 『외딴 방』(1995)과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1995) 등을 펴냈다. 제2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1회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제40회 현대문학상, 제11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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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 =

  1. portishead
    2005.05.01 오후 10:17

    풍금이 있던 자리 – 공허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작가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그 어떤 작품보다 신경숙이란 작가의 성향을 짙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섬세한 필치가 드러나는 그녀의 글을 따라서 읽어가다 보면 그녀가 형상화한 풍경 속에 나 자신이 서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신경숙의 이 작품은 서서히 다가와 나를 매료한 것처럼 서서히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신경숙에 대한 일련의 비평들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내면성의 도피로 인한 폐쇄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가 깊이 있는 현실 의식 아래에서 세상과 작가의 고민을 담아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신경숙의 작품은 일방적인 폄하도, 격찬도 아닌 제자리 찾아 주기가 필요하다.
    내가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주목한 것은 작가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가 작품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과 남자의 관계를 사랑으로 볼 것인가? 불륜으로 볼 것인가? 라는 논의를 생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사랑에 관한 인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남녀관계의 어지러운 정쯤’ 으로 여겨지는 깊지 못한 사랑과 작품 전반에서 흐르는 주인공의 깊은 사랑을 대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위와 같은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데 이것은 작가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체가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형상화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경험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사랑은 현실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신경숙의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실제로 행하여지는 사랑의 모순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풍금이 있던 자리」에서의 사랑은 내가 흔히 접하는 드라마나 통속소설 속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사랑과 별반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형상화의 방법에 있어서는 남성 주류의 문체가 문단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작가만의 개성적인 내면적 글쓰기로 90년대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만 했다. 하지만 신경숙의 작품과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이 작품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풍금이 있던 자리」는 슬프도록 아름답기도 하지만 공허하게 아름다운 것이다.
    작품은 홀로 작품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작품을 쓴 작가, 그리고 그 작가가 속한 사회의 복합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경숙이라는 작가에게 주목한다. 작가 신경숙과 그녀의 일련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 현대 소설사에 징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90년대 여성작가들의 문학적 가치를 자리매김하는데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90년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비평 수준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문학 에콜들의 스타 만들기와 주례사 비평, 그리고 그것이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들은 문학 작품과 별개의 문제가 아닌 바로 문학 그 자체의 문제이다. 여기서는 「풍금이 있던 자리」의 단상 정도의 성격을 지니는 글이므로 여기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