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 썩고 있는 문명의 세계에 주목한다. 그는 삶의 도처에서 부패한 죽음의 이미지를 길어올리는데, 그러나 그 죽음은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시인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의 시가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문명 세계를 비판하는데 있지 않고 그 유혹에 끌려들어가면서 그것의 함정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러한 그의 단순하지 않은 시적 통찰력은 또한 이 세계 안에 때묻지 않은 순결함과 신성함이 남아 있다는 강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시인의 산문]
예언자 에스겔이 본 환상: 神의 기운이 그를 이끌어 어떤 골짜기 가운데 세웠는데, 그 골짜기 지면에 마른 뼈들이 잔뜩 널린 광경을 그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神은 그에게 묻는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나는 神의 기운에 接하지 않고도 마른 뼈들이 잔뜩 널린, 그러나 휘황한, 골짜기를 본다. 환상도 아니고 현실이다. 바깥 풍경만도 아니고 내 안의 풍경이다. 뜨거운 눈망울로 그 속을 들여다보지만, 神의 숨결을 불어넣어줄 통로는 모두 막혀 있는 듯싶다. 그 내면에 그윽한 빛을 간직한 예언의 칼들도 버얼겋게 녹슬고, 이미 쑥밭으로 변해버린 언어의 寺院—- 나는 왜 이 사원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가. 내 詩 속에 아직 채 피지 않은 초봄의 작디작은 잎눈 같은 生氣라도 남아 있는가. 혹 邪氣 따위가 깃들여 있지는 않은가. 사심불구(蛇心佛口)의 파렴치는 없는가.
이윽고, 내 안의 파렴치가 무거운 입을 떼어, 당신에게도 묻는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 自序
Ⅰ
病
용연향
고압의 시간
껍질만으로 눈부시다, 후투티
천국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이 좀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나무와 기계의 마음
파리떼
동굴
소금 기둥
大頭兒
붉은 스카프
죽음의 사원에서 온 전송 사진
훨훨 불새가 되어 날아가게
날마다……聖戰?
大株主 태양도 빛의 주식을 털린 채
연등연등연등을 후후, 불얼 끄고
괄태충
웃음 소리
雪人은 목계단을 자꾸 헛딛고
일어나라, 죽음의 꽃을 들고!
Ⅱ
굴뚝의 정신
푸른 콩잎
프란체스코의 새들
연꽃을 든 또 한 세상 무저갱 속으로
느티나무
노새를 위한 진혼곡
고골
어떤 同行
겨울 우화
訃音
藤, 등나무 아래 휘묻이하고 싶은
논폭풍의 덫에서 풀려난 뒤
겨울 억새
雲頭嶺에서
Ⅲ
허물
木製 십자가 앞에서
눈동자
화이트 칼라 강도
비단개구리
허술한 사냥꾼
태풍의 눈
동굴 탐사
도둑괭이
성묘
연화암
붉은 가재
놀람을 살다
불꽃나무의 산채에 들어
아침 산맥
▨ 해설·’견성(見性)의 시학·이경호